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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가평성지 보호 민원 관철 … 노선 설계 변경으로 혈세 420억원 낭비할 판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노선으로 예정된 함형욱 씨 소유의 임야 일대. 무성했던 잣나무 숲이 베어져 황량한 벌판으로 변해 있다. 산 위쪽으로 통일교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함형욱 씨는 2004년 8월 중순경, 난데없는 한 통의 통지문을 받았다.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선산 임야 중 일부가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돼 수용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근에 도로가 난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신과 무관할 것이라고만 생각해온 함 씨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수용 예정지는 함 씨 본인 및 가족 명의의 임야 1만6000여 평 가운데 4200여 평으로 약 26%에 해당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도로가 아무 쓸모 없는 잡목만 무성한 곳은 그냥 두고 가평군이 수십 년간 보호림으로 묶어뒀던 울창한 잣나무 숲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는 점이었다.

함 씨는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2004년 2월 한 지역신문에서 보도한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조기추진’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실린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발언에 주목했다. “그동안 문제 됐던 가평지역 부지 문제는 소유주와 완전히 해결을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소유주와 어떻게 해결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뜻밖의 토지수용 알고 보니 통일교

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함 씨는 뒤늦게 강원도 홈페이지를 통해 김 지사의 발언 배경을 질의했고 곧바로 답변을 받아냈다. 강원도의 답변 내용 중 일부다.



“가평 부지 문제는 통일교 측에서 제기한 민원으로 통일교 성지에 대한 고속도로 노선 및 선형을 성지로부터 이격해 우회노선으로 변경하거나, 지하화해 성지 지역으로 고속도로가 관통되는 것을 반대한 사항이었으나, 통일교 측과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일부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터널 연장 등으로 원만히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함 씨와 그의 가족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진행하는 사업이니 적정한 보상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 씨는 땅 수용을 위해 찾아온 사업시행자인 현대산업개발 측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노선 변경도.

하지만 2005년 5월 말 의정부지방검찰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진정 결과를 통보받으면서 함 씨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고속도로 노선에 대한 기본설계 당시의 노선이 통일교 박물관(궁) 등과 근접해 있었던 사실과 실시설계 당시의 노선이 박물관에서 떨어진 위치로 변경된 사실은 인정됨.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의 총괄팀장인 정덕추는 기본설계 당시에는 통일교 측의 민원 제기를 예상하면서도 공사비를 최소화해 설계했다가 통일교 측의 민원제기가 있자 이를 반영해 설계한 것임.”

의정부지청의 통보대로라면 통일교의 민원 때문에 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됐고, 당초에 포함되지 않았던 함 씨 일가의 임야가 수용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함 씨를 더욱 공분하게 만든 것은 통일교의 민원이 수용되면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공사비가 더 들어가게 됐다는 사실이다.

함 씨는 올해 4월 감사원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재차 확인한 통지문을 받았다. 감사원 건설물류감사국 제1과 임대현 부감사관은 4월6일자로 처리된 민원처리 결과 통지문에서 “통일교 측 민원 수용으로 설계가 기준 416억원이 증액된 사실은 있으나 민간사업자와 협상을 통해 266억원만 사업비에 포함시켜 실시설계에 반영했고, 나머지 150억원은 사업시행자에게 자체 부담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는 현대산업개발과 현대건설, 한국도로공사, 롯데건설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 ‘서울춘천고속도로㈜’(주간동아 553호 기사 참조)가 건설 중인 민자고속도로. 하지만 민간사업자의 투자금은 18%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공사비가 정부 보조금과 정부의 보증에 의한 금융기관 대출금인 만큼 정부 예산으로 건설 중인 도로나 마찬가지다.

울창한 잣나무 숲 가로질러

또 사업시행자가 자체 부담하기로 했다는 150억원도 공사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영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결과적으로 특정 종교의 민원 때문에 416억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가 낭비될 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문제의 구간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창의리에서 마곡리까지 제6공구 9.5km 공사 구간 중 송산리 일대 3km 남짓한 곳이다. 함 씨가 확보한 2001년 기본설계 당시 노선을 보면 장락산 산허리를 지나는 대부분의 도로가 외부 노선으로 처리됐고, 송산1교와 송산2교를 지나 그 뒤로 송산터널(1.154km)이 뚫리도록 돼 있다.

그러나 최종 실시설계안에는 외부 노선이 모두 사라지고 터널화됐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길이 1.348km의 신천터널이다. 또 노선이 장락산 정상 쪽에 위치한 통일교 박물관으로부터 산 아래 방향으로 300 ~400m 정도 떨어진 위치로 밀려 내려왔다. 박물관은 사실상 통일교의 본당이며, 미국 백악관을 연상케 하는 흰색 건물로 먼발치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왼쪽 사진은 기본설계 당시 고속도로 예정 부지로 잡목만 무성하다. 오른쪽은 노선 변경으로 도로에 포함된 잣나무 조성 보호림 지역.

결과적으로 송산교(옛 송산1교) 120m와 함 씨 소유의 임야를 가로지르는 200~ 300m 구간이 외부로 드러난 유일한 구간으로 남았다. 이 구간에서는 통일교의 박물관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 임야가 가평군이 34년 전인 1972년에 잣나무와 낙엽송으로 조림해 ‘보호림’으로 묶어놓은 곳인 데다, 98년에는 군 예산을 들여 간벌작업까지 하며 관리해온 지역이라는 것. 당초 도로 예정지는 잡목만 무성했던 지역이었는데, 노선이 변경되면서 보호림이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오랜 세월 행정력만 낭비한 꼴이 됐다.

사업자와 건설교통부 등 정부가 외부 도로를 터널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30년 넘게 가꿔온 숲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노선을 변경하도록 한 통일교의 민원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일대에는 100여 가구가 사는데 이 중 80가구 정도가 통일교 가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 일대에 산재해 있는 통일교 관련 시설과 기관에서 일한다. ‘통일교회 성지보호 신도비상대책위원회’(이하 통비위)는 바로 이들이 만든 조직이다.

통비위는 사업자인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도로개발에 앞서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공청회 개최를 원천적으로 무산시킨 바 있다. 이 일대가 성지이기 때문에 도로가 지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들이 건교부 장관에게 제출한 청원서 내용 중 일부다.

“송산리 일대는 통일교 신앙의 성지다. 종교의 성역 침해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업을 대책위와 협의 없이 정부와 현대가 강행한다면 신앙생활 침범행위다. 세계 191개국 신도들은 충격 및 분노와 함께 눈물로 기도하며 성지 훼손을 반대하고 있다. 집단행동으로 인한 모든 불상사는 정부와 사업자인 현대산업개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관철시켰다.

통비위 “목숨 걸고 막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사업시행자인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통일교 측과 협의하면서 최대한 지하화해 달라고 요청해 터널화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협의 과정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이 사패산터널 공사처럼 집단 민원제기였다. 정부 측에도 리스크고, 사업시행자로서도 리스크지만 결국 감수하기로 하고 통일교 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통일교 앞에 무릎 꿇은 고속도로

함형욱 씨가 고속도로가 지나갈 예정인 노선을 설명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끝지점에서 (신천)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번 민원은 사패산터널 공사로 인한 환경 훼손을 우려했던 환경단체 및 종교집단이 반발했던 사패산터널과는 차원이 다르다.

감사원 한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검토해봤는데 종교적 성지라는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고 반영된 전례가 없다”면서 “민원에 의해 행정이 뒤틀린 경우가 적지 않은데, 국가사업이 민원에 흔들려서야 되겠느냐”며 우회적으로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통일교 측은 그러나 오히려 분통을 터뜨렸다. 통비위 측 한 관계자는 “재단에서 합의를 해줘 우리(통비위)와 큰 싸움이 날 뻔했다. 우리는 지금도 반대다. 성지가 유린당한 꼴을 보고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느냐”면서 “성지를 목숨 걸고 막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하터널로 길이 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외곽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함 씨는 올해 3월과 5월 두 차례 ‘토지수용재결처분 취소’ 소송을 재기해놓은 상태다. 특정 종교의 민원에 의해 뒤틀린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공사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555호 (p66~70)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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