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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근 특파원의 파리 산책

르펜이 돌아온다

르펜이 돌아온다

2002년 4월21일.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날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이날은 지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치러진 날로, 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극우파 후보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가 당당히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중도 우파인 자크 시라크 후보가 19.88%의 득표로 1위를 차지했고, 2위인 르펜은 16.86%를 득표했다. 프랑스인들은 마치 쓰나미를 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反) 르펜 시위를 벌였다. 오죽하면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지네딘 지단이 기자회견까지 자청했을까. 지단은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겠다”며 르펜에게 표를 주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민자들을 프랑스에서 모두 몰아내자고 외치는 르펜에게 지단이 반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르펜의 과격한 발언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지단만이 아니다.

르펜은 낙태를 금지시키고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행위에 대한 발언은 더욱 기가 막히다. 그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독일이 특별히 비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단언한 바 있다. 또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는 프랑스인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으며, 대량 학살은 고의적인 게 아니라 실수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2차 투표에서는 82.21%를 득표한 시라크가 17.79% 득표에 그친 르펜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지난 대선의 ‘진정한 승자’는 르펜이었다.

그가 돌아온다. 2007년 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르펜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2002년과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르펜의 2차 투표 진출의 가장 큰 원인은 후보의 난립이었다. 무려 16명이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당연히 이리저리 표가 분산됐다. 이번 대선에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은 벌써 40명에 이른다. 좌파에서도 트로츠키파, 공산주의동맹, 아나키스트 등이 제각각 후보를 내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당수는 좌파 지지자들에게 단결을 호소하며 후보 난립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르펜이 이번 선거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권자들은 똑같은 치욕을 반복해선 안 된다며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지난해 이민 2세에 의한 소요 사태를 거치면서 극우파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주간동아 554호 (p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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