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한국 탐정들 셜록 홈스 뺨치네!

20~30개 업체, 산업스파이·해외 도피자 추적 등 맹활약 … 해외 공조로 경찰 못하는 일도 ‘척척’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09-21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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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탐정들 셜록 홈스 뺨치네!
    지난해 3월 유통업체 J사의 직원 2명이 상품권 판매대금 100억원을 횡령해 중국으로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J사는 수사기관의 ‘느긋한’ 국제 공조수사를 기다리는 대신 사설탐정업체 ‘에스앤에프’의 최승호 대표를 찾아갔다.

    최 대표는 곧장 중국 현지의 ‘탐정 네트워크’를 가동했다. 유일한 단서는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의 발신번호. 한 달 만에 칭다오(靑島)에 머물고 있는 1명의 소재가 파악됐다. 최 대표도 직접 현장으로 날아가 횡령 직원의 동향을 확인했다. 이 정보는 J사를 거쳐 수사기관으로 넘겨졌고, 정식 외교 절차를 거쳐 10월 이 직원은 국내로 소환됐다.

    현행법상 ‘탐정’ 용어는 사용 못해

    바바리코트와 파이프 담배, 그리고 예리한 눈매. 셜록 홈스 같은 사설탐정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범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설탐정들이 있다. 현재 에스앤에프 같은 사설탐정업체는 20~30곳으로 추정된다. 이들 업체는 흥신소, 심부름센터와는 명확한 선을 긋고자 한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남의 뒤를 캐거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유괴 및 살인 등 범죄행위를 대신 해주는 일은 일절 수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탐정들은 동시에 ‘탐정’이 아니다. 현행법(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6조)에서 ‘탐정’ ‘정보원’ 등의 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 탐정들의 활동 반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탐정(detective)’보다는 ‘민간조사(private investigate)’라는 용어를 선호하면서 조사 권한이 있는 변호사의 위임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탐정이 될까? 경찰이나 검찰,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 출신, 기업이나 정부기관의 리스크 담당자들, 법학과·경찰행정학과·경호학과 졸업자, 그리고 ‘셜록 홈스의 꿈’을 가진 일반인이 탐정이 된다. 에스오에스서치 대표이사이자 한국민간조사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는 유우종 씨는 “탐정은 너무 잘생겨도 예뻐도, 키가 너무 커도 작아도 안 된다”고 말했다. 현실세계에서는 바바리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탐정은 없다. 주택가, 공장, 백화점 등 처한 상황에 따라 탐정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텍티브’의 서진호 대표는 “잠복할 때는 멋진 검정색 세단 대신 마티즈나 중고 소나타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차를 탄다”고 말했다.

    산업스파이, 지적재산권, 기업의 회계부정, 교통사고 범죄, 해외 도피사범, 이산가족이나 미아 찾기, 재판 증거자료 수집…. 탐정들의 활동 영역은 다양하다. 자체 조사인력을 갖춘 보험회사도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탐정사무실을 찾는다.

    지적재산권 조사·미아 찾기도 주된 업무

    국가 수사기관에 속한 공무원이 아닌 개인이 남을 미행하거나 사생활을 조사하는 행위는 현재 불법이다. 그래서 한국 탐정들은 불륜 남녀의 뒤를 쫓는 일을 꺼린다. 대신 이들이 주력하는 분야는 지적재산권 침해 사건. 사람이 아닌 사물의 뒤를 쫓는 일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텍티브는 자동차회사 벤츠와 계약을 맺고 2년째 벤츠 로고의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벤츠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노래방, 단란주점, 중고차 매장, 자동차 수리점, 양복점 등을 파악해서 벤츠에 보고하는 것. 서 대표는 “그동안 서울에서만 300여 곳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또

    한국 탐정들 셜록 홈스 뺨치네!

    경찰에 압수된 ‘짝퉁’ 명품 가방들. 탐정들은 명품업체로부터 의뢰를 받아 짝퉁 제조 공장을 찾아내는 일도 수행한다.

    디텍티브는 지난해 8월 국내 런칭을 앞두고 있던 고가의 청바지 브랜드 ‘트루릴리젼’의 의뢰를 받아 인터넷 쇼핑물과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유통되는 가짜 트루릴리젼 제품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짝퉁업자’를 찾아내는 일은 상당히 아날로그적이다. “상인으로 가장해 동대문시장 등지를 돌아다니며 유통업자를 알아냅니다. 그 다음 유통업자의 뒤를 쫓아 물류창고를 알아내죠. 이 경우 청주까지 쫓아가 물류창고를 파악했습니다.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오더군요. 저희 직원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현지 공장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뒤 의뢰인에게 넘겨줬습니다.” 서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가장 전망이 밝은 시장으로 각광받는 업무는 해외 도피사범의 소재 파악이다. 매년 해외 도피사범의 수는 증가하지만, 국제 공조수사의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주간동아’ 552호 참조). 또한 해외에서의 활동은 국내법의 저촉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롭다. 해외 도피사범 소재 파악의 수임료는 1억원 내외.

    에스앤에프가 지금까지 소재를 파악해 국내 송환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사건은 모두 10여 건. 지난해 위조 CD를 발행하는 수법으로 수백억원을 횡령, 중국으로 달아난 조흥은행 직원 김모(40) 차장의 중국 내 소재를 찾아낸 것도 에스앤에프다. 최 대표는 중국으로 날아가 김 차장을 만나 자수를 권유한 뒤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 도피사범의 소재 파악 업무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현지 탐정들과의 끈끈한 네트워크다. 무작정 현지로 날아가 조사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한국 탐정들은 외국의 사설탐정들에게 업무를 위탁해 공동으로 소재 파악에 나선다. 에스앤에프 오 총괄본부장은 “현지에 있는 탐정들이 해외 도피사범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한 자료를 보내오면 의뢰인과 동행해 현지로 날아간다”고 했다.

    한국 탐정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탐정협회(WAD) 회원인 디텍티브의 서 대표는 WAD 소속 100여 명의 탐정과 제휴하고 있다(경호원 출신인 서 대표는 ‘르윈스키 스캔들’을 들춰낸 스타 검사에 대항하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고용했던 국제사설탐정 잭 팔라디노의 추천으로 WAD에 가입했다).

    7월 디텍티브는 WAD 회원인 독일 탐정을 통해 국내 무역회사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한국인의 소재를 파악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가방을 보내준다며 7억원을 받아낸 뒤 가짜 제품을 보내고 독일로 잠적한 인물. 독일 탐정은 소재 파악에 그치지 않고 그가 소유한 호텔까지 찾아냈다. 서 대표는 “피해 무역회사는 독일 현지에서 변호사를 선임, 재산 가압류 등 재판을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실제론 고된 일

    경찰도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해결해내는 탐정의 세계. 하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고되고 ‘폼도 나지 않는’ 일이라고 한국 탐정들은 입을 모은다. 에스오에스서치의 대전지국장 김진규 씨는 일반 회사원 출신으로 2001년부터 탐정으로 활약 중이다. 그가 가장 보람된 일로 여기는 사건은 34년 전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달라는 중년 여성의 간곡한 부탁이다. “6세 때 큰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길을 잃어 미국으로 입양된 분이었습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탄광촌에 살았고, 오빠가 있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8개월 동안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의 탄광촌을 모두 다 뒤졌습니다.” 김 씨는 탄광촌마다 돌아다니면서 노인들에게 34년 전 장마로 딸을 잃어버린 가족을 아는지 물었다. 초등학교에 들러 34년 전 학생기록부를 뒤지며 여동생을 잃어버린 소년의 기록이 없는지도 찾았다. “안쓰러워서 시작했는데, 오기가 돼 후배 직원들이 말려도 강행했습니다. 결국 찾아내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게 해줬죠. 그 보람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웃음)

    한편 외국 탐정들도 국내에서 활동 중이다. 20~30개로 추정되는 외국계 탐정회사들은 현재 탐정업이 불법임을 감안해 ‘기업 컨설팅업체’ 형태로 들어와 있다. 한국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들 업체는 구체적인 활동사항을 공개하고 있진 않지만, 주로 외국기업의 의뢰를 받아 투자나 거래 대상인 한국 기업에 대한 조사,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한국인을 조사원으로 고용해 인맥을 통하거나 공개입찰 등에 참여해 기업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美 LA에서 활동하는 한인 탐정 미스터 임

    “경찰도 급하면 탐정 찾아온다”


    탐정업이 불법인 국내를 떠나 해외에서 공인탐정 자격을 취득한 뒤 활동하는 한인 탐정들이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올해로 25년째 사설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스터 임(59)도 그중 한 명. 그는 가족과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사설탐정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얼굴이 알려지면 탐정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실명은 공개하지 않겠다.‘미스터 임’으로만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떻게 미국에서 사설탐정으로 활동하게 됐나.

    “고려대 법대 졸업 후 경찰에 입문해 수사 분야에서 15년간 근무했다. 이후 미국 LA로 이민을 와 미국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했다. 미국 변호사가 내 경력을 알고 사설탐정이 될 것을 권유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4년 이상의 수사관 경력이 있어야만 사설탐정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본인이 사설탐정임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이유는.

    “미국 한인사회라는 게 참 좁다. 또 한인들은 ‘탐정’ 하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떠올리는 등 탐정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얼굴이 알려지면 탐정으로 활동하기도 매우 불편하다. 지금은 사설탐정 일만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편의점이나 공장을 운영하는 등 투잡스를 했다.”

    -주로 어떤 사건을 맡는가.

    “50%는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처럼 간통죄로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혼 법정에서 자신에게 좀더 유리하게 재산분할을 받으려는 목적에서다. 30%는 특정인의 소재 파악이다. 범죄자나 가출한 자녀 등을 찾는 일이다. 나머지 20%는 법정에 제출할 증거자료를 찾는 일이다. 은닉된 재산 찾기, 교통사고 목격자 진술 확보 등이다. 한국의 사설탐정들로부터도 사건 의뢰를 많이 받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탐정의 위상은.

    “서부개척 시대부터 미국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있다. 탐정은 이러한 활동을 대리로 해주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미국인들은 탐정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이 없다. 또한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니면 경찰이 절도범이나 사기꾼을 나서서 잡거나, 교통사고의 증거물을 직접 찾아오지 않는다. 증거물 수집은 변호사가 직접 나서서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러한 일은 모두 사설탐정에게 의뢰된다. 법정도 필요한 경우 사설탐정을 불러 수집한 증거자료가 진실된 것인지를 증언하도록 하고 있다.”

    -인정받는 탐정의 조건은.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인포메이션 브로커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포메이션 브로커란 돈을 받고 은밀하게 전화번호, 은행계좌 등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뜻한다. e메일이나 편지로 접근해오기 때문에 탐정들도 이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모른다. 유능한 탐정이라면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곳 경찰들도 급하면 사설탐정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사람, 그것이 바로 탐정이다.”


    탐정업 합법화 가능한가

    1998년 발의됐지만 실패 … 양성화 공감대는 확산


    한국 탐정들 셜록 홈스 뺨치네!

    2005년 신생아를 납치해 팔아넘긴 혐의로 구속된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탐정업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1998년 하순봉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인탐정업법’은 법제화에 실패했지만, 현재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된 ‘민간조사업법’은 법제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경찰은 “기본적으로 민간조사업의 도입을 찬성한다”는 검토 의견을 국회에 보냈다. 국회 행정자치위 전문위원도 검토보고서에서 민간조사업법의 입법 필요성을 인정했다.

    민간조사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탐정업이 허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심부름센터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3000여 개의 심부름센터가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잘 알려진 대로 심부름센터의 불법행위는 심각한 상태다. 경찰은 2005년 2~4월 심부름센터를 대상으로 기획수사를 벌인 결과 모두 655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해 1017명을 입건, 129명을 구속했다. 청부살인, 불법 도청, 사생활 침해, 불법 채권 추심 등 불법행위의 내용은 다양했다. 심지어 의뢰인을 협박하거나 추가 수임료를 받아내는 일도 자행됐다.

    형사정책연구원 나영민 경정은 “현재는 국가가 사법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시스템인데, 이는 국가기관에 업무 과부하를 가져와 오히려 사법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고소된 사건의 85%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형사사건이 아닌 단순 채무 불이행 등으로 불기소 처리되고 있다. 탐라대학 황정익 교수(경찰행정학과)는 “공판중심주의로 법정 시스템이 옮겨가는 점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탐정업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앞으로는 조서가 아닌 증거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증거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증거물 수집은 수사기관도, 변호사도 해줄 수 없는 일이다. 한국민간조사협회 유우종 협회장은 “무엇보다 민간조사원 스스로가 양심과 도덕성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며, 국가도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만 우려할 것이 아니라 탐정업을 제도적으로 양성화하여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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