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욕망의 주체, 그/그녀의 팬터지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6-09-11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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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주체, 그/그녀의 팬터지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젊은 여성이라면, 적극적인 여성 주체가 된다는 것에 많은 팬터지를 부여하게 된다. 그런 팬터지 중에는 강렬한 섹스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며, 그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과 규율의 억압적인 측면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자유에의 의지’라는 생각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욕망과 팬터지, 그것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길을 안내해주고 있는 것일까.

    여성 작가 박희정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과 그녀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적나라한 섹스의 주인공으로 보이며, 옷을 풀어헤치고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는 때로 지루한 모습으로, 때로 결연한 결심을 한 듯, 열정과 일상이 혼재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고독해 보이고, 우울하며, 의심에 가득 차 있고, 욕망하는 동시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의 여성은 자신이 성적 욕망에 충실하며 적극적인 욕망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팬터지가 현실에서 출구로 기능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팬터지란 우리에게 그것의 극적인 실현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인 실망만을 유지한다는 증거일 뿐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충동과 불만족 속에서 끊임없이 팬터지를 만들어낸다. 팬터지는 지속적으로 생산되지만 어떤 출구도 보여주지는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우연과 오해, 의심과 불만들로 가득 차 있으며, 팬터지와 뒤범벅돼 있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출구를 찾아 헤매게 하는 답답함의 터전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현실에 갇혀서 불안을 지속시키고, 욕망을 키워나간다. 그곳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일상 속에서 만나는 어떤 주체, 그/그녀는 매 순간 더할 수 없는 불안과 의심, 심지어 공포에 가까운 욕망과 맞부딪치며, 강렬한 충동을 표출하고, 또한 불만에 가득 차서 살아간다. 강한 충동과 욕망의 주체로서의 그/그녀라면, 그 주체의 팬터지는 지속적으로 현실을 현실로서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9월6~12일, 덕원갤러리, 02-723-7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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