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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회사 로비야 갤러리야

도심 빌딩 로비 행인들 위한 공간으로 변신 … 기업 이미지 구축 큰 역할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어, 회사 로비야 갤러리야

어, 회사 로비야 갤러리야

금강오길비그룹의 팬시한 사옥. 발랄한 아이디어로 ‘즐거운 회사’ 기분을 느낄 수 있다(좌).
주류 판매회사라는 점을 이용한 ㈜디아지오 코리아의 리셉션. 트렌디한 바 분위기다(우).

“여기가 회사예요? 술집이에요?”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32층에 입주한 ㈜디아지오 코리아를 찾은 사람들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과 술병들이 햇빛 속에 떠 있는 듯한 리셉션에서 먼저 취기를 느낀다.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로비 바에서 에스프레소와 맥주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이곳이 조니워커와 딤플 등을 판매하는 주류 판매회사이기 때문은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건축주의 권위와 사세를 과시하던 빌딩들이 바뀌고 있다.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공간으로 이용되던 빌딩 로비는 행인들이 심리적·실질적 장애물 없이 들어와 쉴 수 있는 ‘가로’의 연장이 되고, 상품을 전시하던 공간은 갤러리로 바뀌고 있다. 사옥을 팬시한 W호텔 객실처럼 리노베이션한 회사도 있다. 임대수익을 올리던 공간을 소극장으로 바꿔 새로운 지역 문화를 낳기도 한다.

인간적인 곳으로 탈바꿈

성장이 최고의 미덕이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같은 면적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포개어 넣느냐가 건축가의 능력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이라는 말로 건축물의 가치가 평가됐다. 20년대 미국 맨해튼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건축주들의 욕망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올라갔다.

그 결과 초고층 빌딩과 대형 빌딩들이 이루는 도시의 마천루는 새로운 ‘자연’이 됐다. 비로소 사람들은 거대한 빌딩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점에서 최초의 센세이션은 미국 건축가 시저 팰리가 설계한 광화문 교보빌딩(1980준공)이었다. 교보빌딩은 로비에 ‘그린하우스’라는 아트리움을 설치해 햇빛과 녹색식물이 어우러진 ‘환경친화적’ 공간을 만들었다.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놀리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이후 투명한 유리빌딩 안으로 과감하게 가로를 끌어들인 포스코 사옥이 등장했고, 로비 공간 전체를 설치미술품화한 흥국생명 사옥, 미디어아트 전시를 위해 건물 외벽에 LED(발광 다이오드)를 설치한 SK텔레콤의 ‘T-타워’ 등이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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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오길비그룹의 팬시한 사옥(좌).
광화문 KT 사옥 로비가 ‘T샘’으로 변신했다. 매일 점심때 공연이 열린다(우).

최근엔 빌딩이 기업과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비인간적인 도시 기능을 상징하던 빌딩이 ‘인간적인 집’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4월3일 서울 역삼동에 문을 연 LIG손해보험(옛 LG화재) 신사옥은 1, 2층 로비에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 이상남의 작품과 비디오아티스트인 고(故)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고, 로비 밖에 거대한 색유리벽과 의자가 놓인 서비스 공간을 마련했다. 지하에는 LIG아트홀을 만들었으며 8월25일 개관기념으로 현대 댄스 공연 ‘더 월(The Wall)’이 펼쳐졌다.

바깥 세계와의 단절은 심화

LIG아트홀은 기업 미술관의 컨셉트를 빌딩 전체로 확대하고, 가깝게 위치한 LG아트센터와 연계해 강남의 문화 중심공간이 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홍보팀 내 3명의 전문가들이 현대 댄스와 재즈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구성 중이다.

“그동안 LIG가 비인기 장르인 무용을 후원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큰 도움이 돼요. 뉴욕의 실험적인 소극장 컨셉트를 따왔으니 공연도 젊고 실험적인 아티스트 중심이 될 겁니다.”(장진아, LIG공연팀)

올해 국내 광고회사 금강기획과 다국적 마케팅회사 오길비앤드매더의 통합으로 출범한 금강오길비그룹의 서울 신사동 사옥은 요즘 촬영장소 1순위로 꼽힌다. 한국과 다국적 기업의 통합을 상징하듯 훈민정음과 조각보, 샘물과 좌식 라이프스타일을 시각적 요소로 차용하고, ‘오길비레드’라는 빨간색 CI컬러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트렌디한 호텔에 들어온 듯 즐거운 느낌을 준다. 거대한 누에고치를 닮은 회의실, 명상과 낮잠 자기에 안성맞춤인 움푹한 ‘구멍’들이 아이디어를 파는 광고회사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홍보팀 채은 차장은 “가장 최근엔 ‘내 생애 최악의 남자’라는 영화 촬영을 했다. 사옥 리노베이션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도 좋지만, 클라이언트들이 회사를 다시 본다. 사옥을 빌려 쓰는 클라이언트들도 있다”며 자랑했다.

서울 광화문의 KT 사옥도 7월13일 로비를 ‘T샘’으로 리노베이션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통로로만 쓰이던 로비 공간에 먼저 욕심을 낸 건 한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였다고 한다. 월 1억원 이상 임대수익이 가능했지만, 시민에게 사옥 공간을 환원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홍익대 김주연 교수가 설계를 맡은 로비는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으로 바뀌었고, 매일 12시20분부터 40분 동안 공연이 열린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비보이 공연이 열릴 땐 무려 400명이 입장하기도 한다. T샘의 이희승 팀장은 “기업 홍보관을 넘어서겠다는 게 우리 목표다. 결과가 좋은 만큼 이후 신축이나 리모델링에도 광화문 사례가 반영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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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 같은 LIG손해보험 신사옥.

또 백화점 매장부터 쇼핑백까지 공간과 서비스 전체를 고낙범이란 미술작가의 프로젝트로 선보인 갤러리아 백화점 수원점이나 1, 2층을 서비스와 갤러리 공간으로 내놓고 5, 6층을 매장으로 사용하는 서울 논현동 인피티니 자동차 매장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건축평론가 전진삼 씨는 “사옥은 기업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빌딩 로비는 점점 더 공공 영역으로 인정되는 추세”라고 말한다.

최근 기업들의 인수 합병과 지분 변화 등이 잦아진 것도 세계적 ‘스탠더드’와 트렌드에 맞춰 회사의 ‘얼굴’을 고치는 기업들이 많아진 이유다. 그래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빌딩이 대중에게 더 많은 공간을 내주고 인간과 문화를 배려하면 할수록 각종 첨단기계 장치가 출입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건물은 가로를 내부로 끌어들이고 로비는 공공에게 열려 있지만, 바깥 세계와의 단절은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현대 도시 건축물의 숙명이다.

그러나 누구도 과거의 권위적인 빌딩으로 되돌아가길 원하진 않는다. 적어도 이것이 인간적인 ‘집’을 향한 한 걸음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552호 (p64~6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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