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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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괴물 ‘모기’ 경계경보

농촌선 중국얼룩날개모기, 서울선 빨간집모기 기승 … 방역 대책 시급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8-17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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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소형 괴물 ‘모기’ 경계경보
    길이 0.5mm, 체중 3mg의 가냘픈 몸으로 1억년 넘게 진화해온 생태계의 강자. 에스트로겐 분비가 왕성한 미녀(美女)를 ‘사모’하고 향수 냄새와 분 냄새를 좋아하는 미식가(美食家)인 동시에 땀에 절은 피부와 발 냄새를 ‘즐기는’ 악취미의 소유자. 누굴까? 게다가 열(사람 및 동물의 체온)을 감지하는 고성능 안테나와 개도 울고 갈 후각(嗅覺), 180도 곡예 비행술로 밤을 주름잡는 이 불청객은?

    모기의 공습이 시작됐다. ‘모기’는 ‘파리목 모깃과’의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2500여 종). 그중 흡혈을 하는 고약한 종(뇌염모기, 중국얼룩날개모기 등)이 사람에게 일본뇌염,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 등을 옮긴다. 모기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는 장마가 끝나고 2주일 후. 도시생활에 맞춰 진화한 빨간집모기는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 8월23일)가 지나서도 활개 친다.

    미국, 캐나다선 웨스트나일로 5년간 821명 사망

    모기 알이 성충으로 자라는 데는 2주일 정도 걸리는데, 가마솥 더위 때는 일주일 만에 어른이 돼 공습에 나서기도 한다. 보통 8월 초에 무더위가 시작되니 8월 중순이 모기의 전성시대인 셈이다. 문제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말라리아 환자 수도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라리아 환자는 333명.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늘어난 수치다.

    말라리아는 대표적인 후진국형 전염병. 1970년대 말에 박멸됐다가 93년 다시 나타난 뒤 2000년 정점(4142명)에 올랐다. 환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2001년 ‘말라리아 퇴치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퇴치에 나섰으나 성과는 시원치 않다. 지난해 1324명(해외 유입 제외)의 환자가 발생하면서 다시 급증세(2004년 대비 60% 증가)로 돌아선 것(표1 참조). 말라리아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은 8월이다.



    말라리아의 매개체는 숲모기로 불리는 중국얼룩날개모기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일본뇌염 예측조사를 위해 우사에서 모기채집 기구인 유문 등을 이용해 모기를 채집한 결과, 중국얼룩날개모기는 한국에서 우점종이 된 지 오래였다(전체 모기 중 39.8%). 특히 7~8월에는 중국얼룩날개모기가 전체 모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도 있다(표2 참조).

    전국의 매개모기 채집 비율 (단위 : 마리)
    * 자료 : 질병관리본부, 2006년 4월
    종류 빨간집모기 작은빨간집모기중국얼룩날개모기금빛숲모기 총계
    강원 865 319 26,401 18,618 46,203
    경기 768 1 1,232 773 2,774
    충북 17 1,774 833 1,486 4,110
    충남 1 2 4 3 10
    경북 704 4,804 3,848 1,078 10,434
    경남 105 9,919 20,523 3,157 33,704
    전북 553 84,830 50,521 5,907 141,811
    전남 13,405 8,108 15,368 12,086 48,967
    부산 11,026 36,173 27,754 1,570 76,523
    제주 3,101 1,571 719 0 5,391
    합계 30,545 147,501 147,203 44,676 369,916
    % 8.3 39.9 39.8 12.1 100.0


    모기를 피하려면…

    초소형 괴물 ‘모기’ 경계경보
    ▲모기는 땀 냄새, 특히 발 냄새를 좋아하므로 잠자기 전엔 반드시 샤워를 한다.

    ▲야외활동을 할 때는 향수를 뿌리지 말고 짙은 화장도 삼간다.

    ▲모기는 땀과 열이 많은 뚱뚱한 사람을 좋아하므로 살을 빼는 것이 좋다.

    ▲모기는 어두운 색을 좋아하므로 가능한 한 밝은 색 옷을 입는다. 그리고 달라붙는 옷보다는 헐렁한 옷이 좋다.

    ▲말라리아가 발생한 지역에서 캠핑 등 야간·야외 활동을 할 때는 곤충 기피제를 바른다.

    ▲가렵더라도 긁지 말아야 한다. 2차 감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파스를 바르는 것도 좋지 않다.

    말라리아 환자발생 보고 현황(2002~2006년 6월) (단위 : 명)
    * 자료 : 질병관리본부, 2006년 7월
    연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상반기합계
    국내발생 민간인 885 560 424 769 226 2,864
    전역자 472 274 244 322 83 1,395
    현역 군인 406 273 158 233 9 1,079
    소계 1,763 1,107 826 1,324 318 5,338
    해외 유입 36 64 38 45 15 198
    합계 1,799 1,171 864 1,369 333 5,536


    초소형 괴물 ‘모기’ 경계경보

    한국의 모기 방제책은 1950년대와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왼쪽).일본뇌염은 백신을 이용해 예방할 수 있다. 뇌염 예방접종은 오전에 하는 것이 좋다.

    말라리아 환자의 증가는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 강원도 일부와 인천 강화군, 경기 김포시·파주시·고양시 등 휴전선에 가까운 지역에서 환자가 주로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화살을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북한에 돌리기도 한다. “북한 모기가 휴전선을 넘어 날아와 남한 주민을 감염시킨다”는 것. 수해가 발생한 북한 해주와 개성에서는 현재 중국얼룩날개모기로 인한 말라리아가 유행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말라리아 발생은 북한의 말라리아 발생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체 수가 늘어난 중국얼룩날개모기와 북한의 말라리아가 복합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사정이 이런데도 모기 방제 대책은 1950~60년대와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중국얼룩날개모기는 주로 농촌 지역에 서식하는 시골모기다. 숲모기에 물리면 집모기에 물렸을 때보다 더 빨리, 더 넓게 피부가 부어오른다. 시골모기는 해 질 무렵에 주로 활동하고, 서울모기는 밤에 흡혈하는 야행성이다.

    동물 감염으로 축산, 양계 산업에 타격 줄 수도

    대표적인 서울모기는 빨간집모기. 도시생활에 잘 적응해 도시의 우점종(전체 모기 중 8.3%)이 된 이 모기는 최근 100년 동안 혁명적으로 진화 혹은 발달했다. 흡혈을 하지 않고도 아파트 정화조 등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면서 겨울에도 번식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다발생(多發生)인 이 모기는 하수구와 정화조, 지하실 등에서 연중 알을 낳는데, 여름철에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서해안의 간척지에선 이나도미집모기 및 등줄숲모기 떼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 신이현 박사에 따르면, 이들 모기는 염분이 약간 섞인 물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원래는 발생 밀도가 낮고 매우 드문 종이었다. 그런데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서식처가 생겨나자 개체 수가 빠르게 늘어나게 됐다. 사람과의 접촉이 적었던 모기 종이 늘어나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질병이 모기를 통해 매개될 수 있다.

    1999년부터 미국과 캐나다를 괴롭히고 있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예다. 웨스트나일은 금세기 들어서야 그 위협이 제대로 알려진 질병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선 2000년부터 2005년 11월까지 2만1574명에게 발병해 821명이 사망했다(표3 참조). 웨스트나일은 감염 조류와 접촉한 모기를 통해 인체에 감염된 뒤 일주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과 두통, 발진, 근육통 등의 증세가 나타나는 병으로 치사율이 높은 데다 동물 감염으로 축산 및 양계 산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로 인한 발병 및 사망 현황(단위 : 건수)
    1. 미국 질병통제센터 : www.cdc.gov/ncidod/dvbid/westnile/surv&control.htm

    2. 캐나다 질병통제센터 : www.phac-aspc.gc.ca/wnv-vwn/index.html, www.who.int/csr/don/archive/disease/west_nile_fever/en/ ,www.cbc.ca/news/background/westnile/#wn2
    연도 미국 캐나다 총계
    / 발생 사망 발생 사망 발생 사망
    2000년 21 2 - - 21 2
    2001년 66 9 - - 66 9
    2002년 4,156 284 329 20 4,485 304
    2003년 9,862 264 1,388 14 11,250 278
    2004년 2,539 100 25 - 2,564 100
    2005년 1~11월 2,949 116 239 12 3,188 128
    합계 19,593 775 1,981 46 21,574 821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웨스트나일을 막기 위해 조류인플루엔자(AI)에 버금가는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방역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보건당국은 올여름에도 인간 감염자가 발견되자 웨스트나일에 대한 비상 경고문을 거리 곳곳에 붙이는 등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우루과의 접경 지대에서 웨스트나일이 발견되자 “웨스트나일이 드디어 중남미에 나타났다. 사람뿐 아니라 축산, 양계 등 관련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 안전지대 아닌데 아직도 ‘남의 일’

    한국도 웨스트나일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웨스트나일을 매개하는 모기가 바로 서울의 지하 공간에 똬리를 튼 빨간집모기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웨스트나일이 한국에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웨스트나일의 공습’은 더 이상 태평양 건너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님에도 보건당국의 대응책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말라리아가 발생하는 도시들은 중국얼룩날개모기를 잡기 위해 하천에 모기 유충의 천적인 미꾸라지를 방류하고 있다. 중국얼룩날개모기의 경우엔 생태계의 자동조절 기능을 되살려 개체 수를 줄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계절 지하집모기’로 진화한 빨간집모기는 도시화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벗어나 도시에서 기생하는 이 괴물을 자연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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