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2006.08.22

영화처럼 일본은 침몰 않는다

일본 주변 판 가라앉지 않는 저각도 섭입형 … 지구 있는 한 크고 작은 고통은 계속

  • 김원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sboys@donga.com

    입력2006-08-16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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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처럼 일본은 침몰 않는다
    ‘정확히 338일 뒤면 일본은 침몰한다.’7월 일본에서는 200억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일본침몰(日本沈沒)’이 개봉됐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그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각본을 쓴 히구치 신지 감독의 감각과 스타워즈 특수효과 팀이 만들어낸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일본이 가라앉는 게 아닐까’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일본침몰’은 원래 문학가인 고마츠 사쿄가 1973년에 쓴 소설로, 그해에 4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같은 해에 영화로도 제작돼 6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33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다시 한 번 깊은 바다 속으로 자신의 땅을 가라앉히려 한다. 일본인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공포감을 이용한 영화산업의 마케팅인가, 아니면 실제로 다가올지 모르는 재앙에 대한 경고인가.

    ‘사케가시라’ 심해어 근해에서 발견

    지난해 7월 일본 아사히 방송에서는 ‘거대지진은 반드시 온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최근 들어 ‘사케가시라’라는 심해어가 근해에서 발견되는 등 이상한 조짐이 보여 지진을 예고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2005년 3월20일 후쿠오카에서 강도 7.0의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같은 조짐이 있었다. 이에 도호쿠(東北)대학 이마무라 후미히코 교수를 비롯한 일본 지질학 원로들은 조만간 일본에 거대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주장을 폈다. 정말 그들의 예상대로 일본에 거대지진이 일어날까. 그리고 일본은 언제까지 지진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일본에 지진과 화산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판 경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거대한 여러 조각의 판으로 돼 있고, 이 판 위에 우리가 밟는 땅덩어리가 놓여 있다. 지구 속 용광로에 있는 맨틀의 대류에 의해 판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데, 판의 경계면에서는 서로 부딪쳐 안으로 파고들기도 하고 서로 비껴가기도 한다. 지진은 이런 판의 충돌로 인해 생기는 일종의 충격파다.



    일본 주변에는 판이 4개나 모여 있다. 일본열도는 크게 유라시아판에 속하는 서남일본과 북아메리카판에 속하는 동북일본으로 나뉜다. 서남일본은 필리핀해판이 비껴서 들어가기 때문에 지층과 지층의 변이가 수평으로 어긋나는 단층이 많다. 반대로 동북일본은 태평양판이 정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압축력으로 상반(上盤)이 위로 밀려 올라가는 역단층이나 충상단층이 대부분이다. 이들 판은 맨틀의 대류가 끊이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움직이며 서로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은 지구가 사라지기 전까지 지진의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만일 거대지진이 발생한다면 일본열도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을까.

    영화 ‘일본침몰’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대량의 박테리아가 태평양판의 움직임을 가속화해 결국 열도 전체가 가라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일본 주변 판의 움직임은 구조상 다르다.

    현재 태평양판은 일본을 지나 동해 아래로 낮은 각도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이런 구조를 ‘저각도 섭입(攝入)형’이라 하는데, 그 위에 놓인 지각은 가라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융기한다. 태평양판의 섭입은 동북일본을 비롯해 동해까지 동서 방향으로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위해서는 마그마 열기둥인 ‘맨틀플룸(mantleplume)’이 형성돼 지각이 늘어나면서 얇아져야 한다. 이런 현상은 주로 해양판이 급한 경사를 이루며 대륙지각 아래로 들어가는 고각도 섭입형에서 생긴다.

    생활 깊숙이 담긴 공포 표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윤수 박사는 “1700만년 전 유라시아 대륙에 맨틀플룸이 올라오면서 지각이 늘어나 한반도와 한 덩어리를 이루던 일본열도가 분리됐다”고 밝혔다. 이때 분리된 틈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동해가 만들어졌는데, 지각의 일부가 침몰하면서 지금 동해 바닥에 잠겨 있다는 얘기다. 지각 침몰의 예는 가까운 동해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결국 영화에서처럼 동북일본열도가 남북으로 길게 갈라질 수도 없거니와 열도 전체가 침몰한다는 것은 지질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지진망 관측사업을 벌인 미국지질조사소(USGS)는 지구에서 발생하는 지진에너지가 대략 일정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구는 지진을 일으켜 에너지를 방출시키는데, 지구 전체에서 일어나는 지진에너지의 합은 매년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강도가 낮은 지진이 많이 발생할수록 큰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적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을 분석한 결과,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같은 거대지진의 발생주기는 대략 200년으로 예측된다. 또한 서남일본의 지진주기는 100년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일정한 지구에너지의 분출이니만큼 지진이 어떤 주기를 가지고 발생한다는 것은 통계적, 지질학적으로 충분히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소설 ‘일본침몰’이 발표된 1973년 당시에는 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주가가 폭락하고 실제로 이주민이 늘어나는 등 사회적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까짓 소설 하나라고 할지 모르지만 세계 지진의 10%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규모 7.9에 14만3000명이 사망한 1923년 관동대지진과 5500명의 사망자를 낸 1995년 고베지진 같은 악몽은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일본침몰’은 단순히 화려한 SF 기법으로 치장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패닉 상태에 빠진 일본 사회를 자세히 그렸다. 해외로 도주하는 갑부들,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정치인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사랑.

    원작자 고마츠 사쿄가 말하고 싶은 거대지진은 우리의 목을 조여오는 그 무엇일 수 있다. 어려움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과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해양판의 섭입 형태해령에서 만들어진 해양판은 컨베이어벨트처럼 이동하다가 대륙지각 아래로 들어가 소멸한다. 대륙지각으로 들어가는 형태는 저각도 섭입형과 고각도 섭입형으로 나뉜다.
    저각도 섭입형

    해양판이 대륙지각을 밀어붙이는 형태다. 화산호 뒤편(대륙 쪽)의 지각은 압력을 받아 대륙 침강이 일어날 수 없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태평양판(해양판)과 유라시아 대륙(대륙지각)의 구조가 이에 속하며 일본열도는 화산호, 동해는 뒤편 지각에 해당한다.

    영화처럼 일본은 침몰 않는다
    고각도 섭입형

    해양판이 급한 경사를 이루며 대륙지각 아래로 들어가는 형태다. 지각이 바깥쪽으로 늘어져 얇아지면서 침몰하기도 한다. 필리핀해판이 유라시아 대륙의 오키나와제도 아래로 들어가는 구조가 이에 속한다. 현재 화산호 뒤쪽으로 새로운 해양분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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