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3

2006.07.11

월드컵이 끝났다고? 누가 그래!

  •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6-07-06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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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신문을 펼쳐보니 랍 휴스라는 영국 축구칼럼니스트가 쓴 글이 눈길을 끈다. ‘오심은 잊어라…. 배울 것이 아직 많지 않은가’. 그래, 빨리 잊고 싶다. 스위스전 억울한 패배의 쓴맛을. 아니, 잊고 싶지 않다. 밤잠 설치며 응원에 몰두한 행복했던 기억을. 여론조사 결과 한국 국민의 77.9%가 월드컵 덕에 행복했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월드컵은 딜레마였다. 출판사마다 월드컵 기간에 매출이 40%씩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니, 한국이 16강까지 가지 못하고 예상보다 좀 빨리 탈락한 걸 눈치껏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축구책을 기획한 편집자의 생각은 다르다. 2002년 4강 신화의 재현은 언감생심이라도 한국이 8강까지는 가서 축구책의 유효기간을 늘리고,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이 길게 길게 가기를 바란다.

    이러니 출판사 경영자는 짚신 장수, 우산 장수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 월드컵을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결과는 짚신 장수의 판정승? 우산 장수는 장마가 길어질 거라고 굳게 믿고 우산을 잔뜩 준비했다가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일기예보에 뒤통수를 맞았다. 이제 저 많은 우산(축구책)은 어떡하나.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자 분위기에 편승한 한탕주의 마케팅으로 보는 눈도 있었다. 단순히 종수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4년 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을 앞뒤로 나온 축구책이라야 유명 스타의 자서전과 월드컵 후일담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CEO 히딩크-게임의 법칙’이 축구를 소재로 리더십을 다뤄 화제를 모은 정도였다.

    4년 뒤, 축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책으로 나왔다. 한국 축구 124년 역사를 정리한 ‘한국은 축구다’부터 ‘축구의 문화사’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사커 비즈니스’처럼 축구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책들, ‘축구 바보 탈출기’ ‘2006 독일월드컵 10배 재미있게 보기’ ‘월드컵 100배 즐기기’처럼 순수하게 축구 상식과 월드컵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 그밖에도 축구 마니아를 위한 책, 여자들을 위한 책, 어린이를 겨냥한 만화책까지 없는 게 없다. 이런 책을 기획한 출판사들은 “판매부수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골라 볼 수 있는 축구팬들은 행복할 것이다.



    어느 기사를 보니 골수 축구팬들은 한국 경기만 목 터져 응원하고 사라지는 ‘무늬만 붉은 악마’와 다르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이 16강에 올라가느냐 마느냐에 관계없이 축구를 사랑하고, 감독의 작전과 선수들의 플레이를 분석하기 위해 공부하면서 축구를 관전한다. 그래서 월드컵은 끝났어도 축구는 계속된다. 이제 K리그와 박지성, 이영표가 뛰는 프리미어리그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 많은 축구책들이 다음 월드컵 때까지 계속 사랑받기를 바라는 우산 장수의 마음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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