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8

2006.06.06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 입력2006-06-05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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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번 주 논술 주제
    • 다음 제시문은 아름다움의 가치 기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지난 시대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를 참고하여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오늘날 요구되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나), (다)를 근거 삼아 1500자 내외로 논하시오.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b><가></b><br>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 구석기시대(오스트리아) 석회암, 높이 11.1cm<br>② ‘크니도스’의 비너스 / 기원전 350년 대리석, 높이 203.2cm 원본은 사라지고 로마시대에 모각<br>③ ‘밀로’의 비너스 / 기원전 2세기 후반 대리석, 높이 204cm 미의 상징, 밀로섬에서 출토

    돌아보건대 나의 모습은 심히 어리석고 졸렬해서, 사람들이 진실로 나를 기특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이인상(李麟祥)만이 홀로 나의 독특함을 좋게 여겨서 반드시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나, 내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나를 보지 않고, 나 또한 나로써 나를 보니, 나는 본디 나일 뿐이다. 어찌 초상으로써 나를 그리겠는가? 이목구비(耳目口鼻)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지만, 오직 그 정신은 은은히 감도는데, 이는 또한 그림이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한 장의 그림으로써 나를 온전히 나타낼 수 있겠는가? 무릇 초상은 거울에 비친 꽃이나 물에 비친 달과 같아서 겉으로 드러난 외양은 같게 할 수 있으나 그 속의 뜻은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볼 때는 반드시 하찮은 형상의 밖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니, 한 가닥의 터럭 같은 것으로 어찌 나의 일생을 알 수 있겠는가? 오직 그 음양(陰陽)에 구애받지 않고 천지(天地)의 밖으로 초연해야만 거의 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조(曹操)가 스스로 추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여 칼을 차고 상 아래 서 있었지만 북사(北使)는 그가 영웅임을 알았으니, 그것은 이미 조조에게 뛰어난 풍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이인상이 사람을 잘 알아보는데, 나를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아 내가 과연 스스로 남과 다른 것이 있으리니,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어찌 상심하겠는가?

    ‘고양이’라 불리는 화가가 초상화를 잘 그려 사대부 사이에 이름이 높지만, 나같이 냉랭하고 거슬리는 사람은 돌아보려 하지 않고, 나 또한 구하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하루는 그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가 나를 곁눈질로 한참 동안 보다가 이르기를, “간단히 쉽게 그릴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혀를 내두르며 이르기를, “모습은 그러하나, 기상(氣象)은 내 어찌하랴” 하고 탄식하였다. 이 화가 또한 이인상이 나를 알아보는 것과 같은 눈이 있어서인가, 어찌 나를 눈썹과 터럭 밖에서 논하는가?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전에 고개지(顧愷之)가 배해(俳諧)를 그리면서 뺨 위에 터럭을 덧그리자 그 활발한 정신이 더욱 뛰어나게 되었고, 주방(周昉)이 조종(趙縱)을 그리면서 그 모습보다는 정신(精神)을 나타내는 데 힘썼으며, 유진(惟眞)이 증노공(曾魯公)을 그리면서 눈썹 밑에 주름을 덧그려 그 인물됨의 특징을 잡아냈었다. 내가 지금 광대뼈는 좁고 얼굴은 누래서 비록 사람들도 나를 기특하게 여기지 않으니, 감히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정신의 광채가 은은히 피어나는 것은 혹 배해나 증노공과 비슷한 점이 있을지 모르니, 이 화가 또한 고개지의 유방과 유진이 했던 것에 뜻을 둘 것인가? - 권헌, 전신론(傳神論)

    어떤 거사가 거울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리운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가다듬곤 하였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굴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맑고 아른아른하는 거울을 좋아하지만, 얼굴이 못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맑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만일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추한 얼굴을 보기 싫어할 것인즉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깨쳐 버릴 바에야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 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이를 어찌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

    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이규보, 경설(鏡設)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 주제 분석

    ‘용모가 제1의 경쟁력. 성격 나쁜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얼굴 못생긴 것은 참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잘못된 아름다움의 기준 때문에 초등학생에서 주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얼짱, 몸짱’이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할 태세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지금 내면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상업화로 포장된 아름다움만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움’은 더 이상 정신적인 가치가 아닌 외면적인 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물론 외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내실이 없다는 방증이다. 아름다움이란 표피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외모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나 개성, 그리고 내적 아름다움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오랜 기간 호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이 논제를 계기로 외모만 중요시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 문제 및 제시문 분석

    문제는 제시문 (가)~(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시대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 비판하고, 오늘날 요구되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전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제시문 (가)~(다)의 내용에 대한 독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의 견해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밝혀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제시문을 분석해보자.

    제시문 (가)는 각각 빌렌도르프, 크니도스, 밀로의 비너스상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하게 마련이다. 우선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얼굴 윤곽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시되어 있다. 반면 젖가슴과 배, 엉덩이가 풍만하게 강조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아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숭배물의 하나였던 듯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평가한다면 4등신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품이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움의 평가 기준은 변하여 ‘크니도스 비너스’와 ‘밀로 비너스’ 시대에 와서는 신체 비례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즉, 그리스인들은 인체에 수학적, 기하학적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살덩이에 불과한 인간의 육체적 의미를 뛰어넘어 영원한 아름다움의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예컨대 체중을 오른편 다리에 싣고 왼쪽 다리는 마치 움직이려는 듯이 살짝 구부려 S자를 좌우로 뒤집어놓은 듯한 리듬을 줌으로써 자연스러운 균형과 조화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동물적 본능을 신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제시문 (나)는 권헌의 전신론(傳神論)이다. 이 글은 글쓴이가 당대의 초상화가 변상벽(글 속에 등장하는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면서 썼던 것으로, 18세기 중반의 사대부들이 지녔던 초상화에 대한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즉, 초상화를 그릴 때는 현상의 묘사보다 정신의 표현이 더욱 강조되었다. 본 논제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아름다움의 가치 기준으로 확장시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초상화를 그릴 때 정신의 표현이 중요하듯이,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에도 외양(겉모습)보다는 정신(본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모습으로 사람을 취하면 잘못을 범하나니, 군자는 모습으로 사람을 취하지 않느니라”라고 말했듯 외모보다는 정신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제시문 (다)는 이규보의 경설(鏡設)이다. 이 글은 거울을 통해 대상의 본질적 측면을 소홀히 여기는 현실(형식적인 면만 중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다. 거울은 모습을 비춰보는 데 사용되는 물건이기에 맑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거사는 거울의 흐림을 취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못난 사람의 추한 모습을 비추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따라서 거울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깨뜨려질 것이라는 역설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는 아름다움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나그네처럼 고정된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거사처럼 다양한 관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외모 하나만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그야말로 아집이다. 다양한 측면(개인의 능력, 개성, 내적 아름다움)에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다른 사물이나 현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서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 학생 답안 분석 및 첨삭

    ① 아름다움의 정의를 내리면서 서론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이 내린 정의는 문장이 성립하지 않을 뿐더러, 논제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명확히 짚었다고 보기 어렵다. 서론에서는 정확한 어휘를 사용하여 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좋다.

    ② ‘따라서’라는 접속어를 사용하여 앞 문장과 연결하고 있으나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은 인과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변한다’는 말을 두 번 중복해 사용하고 있어 의미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③과 ⑤, ④와 ⑥의 문장은 같은 구조(~는 ~이다. 이것으로 보아 ~이다)로 되어 있다. 제시문 분석은 상당히 잘했지만, 논술에서 이러한 반복적인 구조의 문장은 지양해야 한다. 때로 균형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참신성이 떨어져 지루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대상을 한데 아울러 비교 대조하는 것이 구성이 더욱 알찬 문장을 만들 수 있다.(→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풍요와 다산을 중요시한 반면에, 크니도스와 밀로의 비너스는 신체의 수학적 분석을 중요시했다.)

    ⑦ 논술에서는 반복적인 표현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아름다움을 판단함’과 ‘미의 요건’은 의미상 다르지 않다. (→ 오늘날 사회에도 외모는 미의 중요한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⑧ 의미가 명확해질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진정 중요한 것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기 때문이다.)

    ⑨의 문장은 불필요한 사족(蛇足)이다. 삭제하는 것이 좋다.

    ⑩의 내용은 논술의 전개에 불필요한 요약에 불과하다. 제시문을 그대로 옮겨 요약하는 것은 단순히 분량을 채우기 위한 의도로만 느껴진다. 제시문에 관한 내용은 한두 문장으로 줄이고, 아름다움과 결부시킨 내용으로 일관하는 것이 좋다.

    ⑪의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즉, 아름다움의 기준을 고정된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을 외모 한 가지만으로 보는 것은 아집이므로 개인의 능력, 개성, 내적 아름다움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다른 사물이나 현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서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⑫ 결론에서 예시를 드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결론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제언을 하는 것이 좋다. 다만 단순한 요약, 강조가 아닌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피력해야 한다. 자기주장이 가지는 사회적, 심층적 의미를 밝혀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⑫의 내용은 본론 (다) 뒤에 위치하는 것이 좋겠다.

    ● 학생 글 총평

    전체적으로 볼 때 문제가 요구하는 핵심을 잘 파악하여 개요를 작성했고, 글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문제에서 요구한 대로 제시문 (가)의 비너스 사진을 참고하여 과거 시대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비판하려고 노력했으며, (나)~(다)의 내용을 논거로 삼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시돼야 함을 제시했다. 이런 점에서 학생의 문단 구성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본론 (1)을 제시문 (가)에 대한 분석에 그치지 말고 비판적으로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본론 (2)는 제시문 (나)와 (다)를 묶어서 분석하고, 본론 (3)에서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피력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물론 학생이 문제의 핵심을 놓친 것은 아니다. 문제에서 요구한 대로 제시문 (가)의 비너스 사진을 참고하여 과거 시대 아름다움의 기준을 미약하나마 비판했고, 제시문 (나)와 (다)의 내용을 논거로 삼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시돼야 함을 제시했다. 다만 제시문 (다)의 분석에서 ‘본질’의 속성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어 ‘다양성’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본론을 전개함에 있어 제시문 이외의 논거를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이는 창의성과 직결되는 부분인데, 이 글에는 제시문에 나와 있는 내용 외에 창의적인 논거가 거의 없다. 단순히 제시문에 나온 논거를 보완 설명하는 정도에 그치는 논술문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서론과 결론이다. 서론은 문제 제기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학생의 글은 단순히 개념만 정리하고 있어 무엇에 관해 글을 쓰고, 왜 쓰려고 하는지가 빠져 있다. 명료하게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면 더욱 좋은 글이 됐을 것이다.

    결론 역시 마찬가지다. 글에서 마지막 부분의 요약이나 강조는 되도록 짧은 것이 좋은데,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시를 든 것이 오히려 분량이 늘어나 논리의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준다. 구체적인 자신의 견해를 최종적으로 피력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단순하고 추상적인 결론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논의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출제자의 의도를 나름대로 파악하여 제시문에 적용했으나, 창의적인 사고가 부족하고 단순히 제시문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서론과 결론의 내용도 더욱 공을 들여 쓴다면 좋은 논술문이 되겠다.

    ● 배경 지식 키우기

    - 전신론이란?

    전신론은 단순히 인물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성품, 인격과 기질까지도 그림에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 사람들은 정신이 외모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초상화가들은 겉모습을 똑같이 그리는 동시에 내면의 깊이를 얼굴에 표현해야 했다. 한국의 초상화 가운데 조선시대 작품들이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이유도 이를 위한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燕巖集)’에 실린 사의론(寫意論)도 유사한 논의를 다루고 있다.

    - 법정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 낯모르는 누이들에게’엮어 읽기

    이 글은 논제인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법정 스님은 종로의 한 제과점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거죽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말에서 나온다고 설파한다. 즉, 얼굴이란 말의 근원(根源)이 얼의 꼴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은 곧 그 사람의 영혼(靈魂)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얼을 아름답게 가꿔와서 그럴 것이고, 추한 얼굴은 추한 행위만을 쌓아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논리다. 결국 법정 스님은 언행이라는 단적인 예를 통해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말한다.

    * 이번 호 논술지도에는 서울 오산고등학교 국어담당 하성욱 선생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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