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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명품 골목을 찾아서

코네서와 ‘고급 콜걸’의 사랑

  • 파리=김현진 패션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코네서와 ‘고급 콜걸’의 사랑

코네서와 ‘고급 콜걸’의 사랑

IWC의 파일럿 워치와(위) 파텍 필립 시계.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프랑스인 M은 오드마 피게 시계와 에르메스 벨트를 늘 차고 다닌다. 비가 오거나 쌀쌀한 날 즐겨 입는 묵직한 헤링본 무늬 코트는 내가 잘 모르는 브랜드지만 비싼 것임이 틀림없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는 마제라티. 전혀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온몸에서 럭셔리가 줄줄 흐른다.

왜 당신은 명품을 좋아하는가.

“유명한 브랜드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단지 나는 질이 나쁜 제품을 참을 수 없어하는 스타일인데, 마침 명품이라는 것들이 품질이 좋아서 구매한다.”

그렇다면 왜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 제품은 좋아하지 않는가.

“글쎄… 남들이 다 아는 건 재미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가 덜하다.”



M 같은 사람을 유럽에서는 럭셔리 브랜드의 ‘코네서(connoisseur)’라고 부른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방면의 전문가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브랜드를 꿰고 있는 엘리트 소비자를 가리킨다. 브랜드에 대해 훤할 뿐만 아니라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나 부를 나타내기 위해 럭셔리 브랜드를 찾는 단계를 지나, 브랜드가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소량 생산하는 비싸고 희귀한 브랜드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시계로는 파텍 필립, IWC, 오드마 피게가 코네서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 옷이나 보석, 주방가구에도 코네서를 위한 명품이 있다. 1908년 파리에서 만들어진 ‘라 코뉘’라는 주방가구 브랜드는 집이 크고 아름답지 않으면 절대 어울릴 수 없는 클래식한 싱크대와 오븐 및 조리대를 만들어 부르주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고야’라는 가죽 및 액세서리 브랜드는 디자인이 매우 단순함에도 끊임없이 팬을 끌어들이고 있다.

코네서들은 엘리트주의에 기반해 있다. 다음은 ‘잘나가는’ 남편을 둔 프랑스인 친구 엘자의 말이다.

“내가 아끼는 파텍 필립 시계의 디자인만 보고 누군가가 ‘아, 그 시계 파텍 필립이군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과는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번은 사교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내 시계를 보고 ‘까르티에인가요?’라고 물어와 속으로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에르메스나 롤렉스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을 뿐 아니라 코네서들에게도 각광받는 브랜드다. 품질이나 혁신성에서 각 부문별로 최고로 꼽히는 브랜드들은 대중화가 이뤄진 뒤에도 여전히 코네서들의 사랑을 받는다. 코네서가 가장 많다는 일본 시장에서 “당신이 가장 꿈꾸는 브랜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1등이 롤렉스, 2등이 에르메스로 나왔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소량 생산 희귀 브랜드 통해 밀접성 공유

대륙별, 국가별로 사회 변화와 이에 따른 소비자 심리를 조사하는 리서치 기관 RISC의 애널리스트 모니카 홀른 그라버는 “전 세계적으로 럭셔리를 희구하는 이른바 ‘럭셔리 무드’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가 아닌 스스로의 쾌락을 위한 소비도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하지만 코네서들의 목표가 일본에서는 스타일을 중시하는 ‘패셔니스타’로, 미국에서는 기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로, 유럽에서는 독특함과 지적인 우수성을 나타낼 수 있는 ‘우아함(글래머)’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M씨의 코멘트는 이렇게 이어졌다. “코네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는 그 밀접성과 욕구라는 측면에서 ‘고급 콜걸’과 그를 찾는 ‘단골손님’과 같다”고.

“그녀는 대중에게 ‘봉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만의 것’은 아니지. 그래도 그녀를 안다는 사실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뭔가를 의미하거든. 그 정도의 ‘공유’는 오히려 즐거움이야.”



주간동아 2006.06.06 538호 (p91~91)

파리=김현진 패션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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