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2006.05.23

서구인들이 맛본 ‘혼돈과 공포’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6-05-22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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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인들이 맛본 ‘혼돈과 공포’

    ‘인도로 가는 길’

    “우리(영국)는 셰익스피어 한 사람과 인도를 결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인도의 자존심을 이렇게 송두리째 짓밟는 말을 무신경하게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고 해도 이 정도면 10억 명 인도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만했지만, 우리는 내심 인도를 그 정도로 미개하고 보잘것없는 나라로 여기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최근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중국과 나란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친디아(Chindia)’라는 합성어까지 만들어 인도의 엄청난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기술(IT) 분야의 뛰어난 인재 풀에, 세계 유이(唯二)의 10억 이상 인구를 갖춘 ‘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일하게 중국을 따라잡을 나라는 인도뿐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인도의 성장세는 1991년 경제 개방과 자유화 정책에서 비롯됐다. 해마다 7~9%씩 뜀박질하는 경제성장률에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국 직접투자(FDI)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구매력지수 기준 국내총생산(GDP)도 세계 4위로 도약했다.

    하지만 ‘역동적인 인도’에 대한 경탄과 찬사 속에 5세 이하 어린이 중 체중 미달자가 47%에 달하는 나라라는 또 다른 ‘얼굴’이 존재한다.



    이 같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인도를 바라본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인도는 미지의 나라, 수도자와 은둔자의 신비한 나라, 가난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다. 우리가 인도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1980년대에 국내에 개봉된 영화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에서 그려진 인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데이비드 린 감독이 1984년에 만든 이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대다.

    이 영화는 영화 이전에 원작 소설로 이미 유명했다. 영국 작가 E. M. 포스터가 1924년에 발표한 소설은 ‘타임’지 등에 의해 ‘현대 100대 영어소설’에 꼽혔다.

    아델라라는 영국 처녀가 인도에서 판사로 일하는 약혼자를 만나러 갔다가 겪은 일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식민지 인도와 식민 모국 영국인들 간의 충돌 및 갈등을 그렸다. 인도인을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아델라는 친절한 이슬람 의사 아지즈와 친교를 맺지만, 마라바르 동굴 소풍에서 둘 사이의 우정은 파국을 맞는다. 동굴 속에서 알 수 없는 어지럼증으로 정신을 잃었던 아델라가 아지즈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한 것이다. 결국 아지즈는 천신만고 끝에 무죄판결을 받고 아델라와 아지즈는 화해하지만, 이 작품은 엇갈리는 정치적 비평을 받았다. 영국에서 처음 출간됐을 당시 “인도 식민통치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평을 들었지만, “제국주의의 인간적 얼굴을 강화하는 소설”이라는 비판이 새롭게 제기됐다.

    이 같은 정치적 해석을 떠나 이 작품 속에 그려진 인도의 이미지는 아델라에게 까닭 없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던 마라바르 동굴 속의 분위기와 겹쳐진다. “몽환적이고 불가사의한 공간으로서의 마라바르 동굴은 바로 서구인에게 혼돈과 공포를 갖게 한 인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이영순,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이 마라바르 동굴 안에 머물면서 ‘친디아’라는 갑작스런 반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계속 인도에 대한 반쪽짜리 인식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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