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디지로그 축구’로 AGAIN 2002!

한국 축구의 힘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입력2006-05-10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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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로그 축구’로 AGAIN 2002!
    그랬다. 2002년 한국축구는 정말 대단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보도한 대로 한국 땅은 ‘거인들의 무덤(The Grave of the Giants)’이었고, 한국은 강호들만의 잔치에서 유럽 축구의 콧대를 꺾으며 월드컵의 진정성을 회복했다.

    “이제까지 우린 남미식·유럽식 축구를 봐왔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게 바로 엄청난 스피드와 체력을 앞세운 코레아식 축구입니다. 우린 새로운 축구의 형태가 탄생하는 걸 보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런 엄청난 경기를 치러낸 한국. 이 대회 최고의 경기입니다.”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한국이 승리를 거두자 세계적인 스포츠채널 ESPN의 해설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니콜이라는 이 해설가는 단지 한국이 ‘아주리군단’ 이탈리아를 깼다는 사실보다 이탈리아를 깬 한국 특유의 투혼과 경기 방식에 주목하고 있었다.

    한국축구의 ‘아우라(aura)’가 전 세계에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비쳐진 한국축구의 ‘아우라’는 우리는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한국축구의 아우라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유럽에 비해 힘과 조직력이 달리고, 남미보다 기술이 모자라는데도 무엇을 강점으로 삼아 세계를 향해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것일까?

    ‘한국축구의 아우라’는 디지로그(Digilog)에서 나온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말로, 단편적인 기술용어가 아닌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다. 디지로그의 힘은 정보와 데이터로 요약되는 디지털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접목해 제3의 창조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에메 자케 전 프랑스 감독은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힘은 단단하고 균일화된, 파괴할 수 없는 팀 정신에서 나온다. 이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한국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들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함께 싸웠으며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한국은 수비를 바탕으로 안정되게 경기를 이끌어나갔으며 충만한 의지로 모든 것을 흔들어놓았다. 이는 98년 내가 경험했던 프랑스 팀을 떠올린다. 나는 강력하게 부상한 이 팀의 재능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월드컵 때마다 한국축구는 강인한 정신력과 근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날로그적인 요소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었다. 히딩크가 전파한 정교한 데이터와 과학이 겸비된 ‘디지털 지도법’에 의해 한국축구는 비로소 세계 축구의 중심을 뒤흔들 수 있는 우리만의 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디지털 요소가 가미되자 한국축구는 강인한 투혼과 서로 간의 신뢰가 더해진 ‘휴먼 축구’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맹목적으로 열심히 뛰던 그 이상의 위력을 지닌 디지로그의 힘이었다. 여기에 한 번 불붙으면 무섭게 번지는 신바람 정신 역시 한국만이 지닌 고유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디지로그 축구’로 AGAIN 2002!

    거스 히딩크 감독은 ‘디지털 지도법’으로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한국축구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를 마쳤다. 아드보카트, 베르 베크, 홍명보, 압신, 고트비, 정기동 등 코칭스태프는 2002년 때보다 업그레이된 디지털 요소로 한국 선수들을 단련시켰다. 또 박지성, 이영표 등이 유럽 빅리그에서 겪은 경험은 2002년 때는 기대하지도 못했던 장점이다.

    한국축구의 ‘디지로그의 힘’은 2002년보다 더욱 위력을 가미했다. 붉은 6월과 푸른 3월(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이어 또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열광해도 좋은 명확한 이유다. 모두가 꾸는 꿈★은 이미 현실이다.

    꿈★은 ‘유로포비아(유럽공포증) 탈출’에서 시작된다. 유독 유럽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오욕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첫 월드컵 도전이었던 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90년 이탈리아월드컵, 98년 프랑스월드컵 등 유럽에서 열린 3차례 대회에 출전했지만 성적표는 최악이었다. 스위스월드컵에서 헝가리와 터키에 16골을 내주며 2패를 기록했고,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벨기에·스페인·우루과이에 3전 전패를 당했다. 프랑스월드컵 때도 네덜란드에 0대 5로 패하는 등 1무2패를 기록했다.

    ‘디지로그 축구’로 AGAIN 2002!
    왜 한국축구는 유럽에서 유독 약했을까?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는 유럽팀들이 마치 홈에서 경기를 치르듯 강세를 보여온 데다 일종의 텃세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큰 경기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 선수들이 일방적인 응원에 압도당하며 제 기량의 80%도 제대로 보이지 못했던 탓이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필드 컨디션도 크게 좌우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축구장의 필드는 딱딱한 편이지만 유럽은 눅진눅진하다. 어릴 때부터 딱딱한 땅에서 축구를 해온 한국 선수들은 버릇처럼 한 발로만 무게중심을 잡는 습관이 있다. 한 발에만 힘을 싣다 보면 발이 깊이 빠지는 유럽 축구장에서 자주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스피드를 활용하기도 힘들다.

    반면 유럽 선수들은 두 발로 보디 밸런스를 맞추는 데다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 동작에 익숙해 한국 선수들이 속기 쉽다. 김호 전 수원 감독은 “월드컵 경기장의 잔디와 필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 잔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축구화 스터드(일명 뽕)의 숫자도 신경 써야 한다.

    ‘유럽공포증’을 깨기 위해선 뭐니 뭐니 해도 자신감이 중요하다. 어느 상대에게도 주눅들지 않는 배짱을 갖춰야 한다. 3월21일 보름간의 유럽 구상을 마치고 입국하던 아드보카트에게 ‘유럽공포증 탈출법’에 대해 물었다. 그는 “유럽팀을 이기기 위해 전지훈련 동안 원정평가전을 치른 것이다. 승리에 집착하기보다는 매 경기 5∼6명의 변화를 주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제 선수들은 유럽팀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2002년 6월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따라 제압하며 얻은 자신감과 4년간 꾸준히 쌓아온 경험은 유럽이라고 해도 한국이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을 이유다. 독일월드컵에서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팀을 상대로 거둘 승리는 한국 월드컵 도전 역사에 길이 남을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호랑이,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다”.

    신발 밑바닥 스터드의 과학

    파워·순발력에 큰 영향 ‘막강 뽕’


    ‘디지로그 축구’로 AGAIN 2002!
    한국 축구대표 선수들의 가방에는 최소한 두세 켤레의 축구화가 구비돼 있다. 화려한 패션감각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일 필드의 상태와 포지션, 전술 형태에 따라 일명 ‘뽕’이라고 하는 신발 밑바닥의 스터드(stud)가 다른 축구화를 신기 때문이다.

    스터드가 잔디에 박혀 체중을 지탱해주는 ‘견지력’에 따라 파워와 순발력의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선수들은 스터드를 중요하게 여긴다. 스터드는 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서독대표팀(현 독일)이 처음으로 신고 나와 우승한 이후 일반화됐다.

    일반적으로 축구화는 필드 컨디션에 따라 △길고 푹신한 잔디(5∼7월 잔디)에 신는 SG(soft ground)형과 △짧고 단단한 잔디(가을철 잔디)에 적합한 FG(firm ground)형 △인조잔디나 아주 짧은 잔디에 좋은 터프(turf)형 △맨땅에 쓰는 HG(hard ground)형 등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프랑스 대표팀의 지네딘 지단은 FG와 SG형을 혼용한 스타일을 사용하며,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보통 이용되는 짝수로 스터드가 박힌 축구화 대신 13개짜리를 신었다. 스터드 길이도 일반 FG형보다 2mm 길게 한 FG-SG 중간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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