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외국계 은행 반만 닮아라!

주간동아 금융사고 현황 단독입수 … 지난해 24건 723억원 국민은행 최다 ‘불명예’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5-10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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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계 은행 반만 닮아라!
    A은행에서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다루는 K 과장은 최근 “하루 동안 휴가를 다녀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직원을 휴가 보낸 뒤 이들이 맡은 업무를 점검하는 외국 은행들의 ‘불시 휴가 명령제’를 A은행이 벤치마킹한 것. K 과장은 “문제 될 일을 한 적이 없어 부담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과거 금융사고가 지점에서 푼돈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 들어선 IT 기술을 이용하는 등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금융감독원 관계자)

    고용불안 가중, 지난해 2175억원 횡령 및 유용

    고용불안이 가중되면서 ‘간 큰 금융인’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 금융사고 액수는 2003년 857억원에서 2004년 1302억원, 지난해 2175억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다. 금융사고의 대부분은 임직원의 횡령 및 유용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금융기관이 고객이 맡긴 돈을 가장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을까? 반대로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금융기관은 어디일까?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금융사고 현황’(2001~ 2005년) 자료에 따르면 은행 중에선 국민은행이 24건, 723억원으로 ‘금융사고가 가장 많은 은행’(옛 조흥은행 제외, 이하 2005년 기준)으로 꼽혔다(표1 참조). 금감원이 작성한 이 자료에 따르면 보험사군에선 교보생명, 증권사군에선 동부증권이 금융사고 액수가 가장 많았다(표3, 그림1 참조).

    외국계 은행 반만 닮아라!
    4월1일 신한은행에 합병된 조흥은행은 금융사고가 24건, 967억원에 달해 현존했다면 국민은행을 밀어내고 1위다. 신한은행(14건 133억원), 하나은행(18건 106억원)도 ‘성적’이 좋지 않았으며 우리은행(18건 62억원), 기업은행(22건 44억원), 외환은행(9건 26억원)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반면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은 금융사고가 전무했으며, 한국씨티은행은 11건 9억원으로 집계돼 순수 국내 은행들과 대조를 이뤘다. 다만 산업은행은 금융사고가 1건, 0원으로 외국계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산업은행은 2003년, 2004년에도 각각 1억원의 금융사고를 기록했을 만큼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롭다.

    자산규모 197조원으로 국내 1위인 국민은행에서 금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은 의외다. 이 은행 관계자는 “대형 금융사고가 있었고, 은행 규모가 크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산규모 3위(140조원)인 우리은행에서 62억원의 금융사고가 일어난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해명엔 다소 무리가 있다.

    국민은행은 2003년, 2004년에도 금융사고 액수가 각각 138억원, 204억원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만 2004년엔 외환은행(454억원)이 국민은행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는데, 2004년은 이 은행이 론스타에 인수된 직후다. 은행이 넘어가면서 직원들이 불안감을 느껴 금융사고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계 은행 반만 닮아라!
    국회 정무위원회 전병헌 의원(열린우리당)은 “금융사고가 갈수록 대형화하고 있어 충격적이다. 은행이 살아남으려면 ‘전문성’ 못지않게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한다”면서 “금융사고는 직원 개개인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외국계 은행들이 도입한 금융사고 예방책을 우리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의 감시체계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운용한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인 C&C그룹(그룹장은 부행장급)의 인원은 50여 명에 달한다. 순수 국내 은행들은 10명 안팎의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가지고 있다.

    IT 기술 이용 갈수록 교묘한 수법

    한국씨티은행의 ‘감시 시스템’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주주가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는 감사위원회를 꾸린다. 경영진은 경영을 맡고, 감사위원회는 경영진을 감시 및 견제하며, 경영진은 내부통제 기능을 맡는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두고 상시감사 기능을 수행한다. 감사위원회는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포함해 은행 전체를 다시 감사한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씨티그룹의 철저한 감사 시스템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며 “한국씨티은행에서 금융사고가 적은 이유는 모 그룹의 시스템을 들여와 운용하기 때문이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상시 감시 기능을 갖는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경우에도 토종보다는 외국계가 금융사고로부터 자유로웠다. 금융사고 액수가 많은 보험사는 교보생명(17억원 3건), 삼성생명(9억원 25건), 대한생명(7억원, 15건) 순(표3 참조). 반면 외국계 보험사인 ING생명, 매트라이프, 푸르덴셜생명은 최근 3년(2003~2005년) 동안 금융사고 액수가 ‘0’원이었다.

    전병헌 의원 “금융사고는 구조적 문제”

    외국계 은행 반만 닮아라!
    특히 ING생명은 3월8일 국가청렴위원회로부터 반(反)부패유공자(단체 부문) 표창을 받았을 만큼 내부통제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ING생명은 내부통제 기준이 법으로 제정되기 전인 1998년부터 준법감시인 제도를 채택하는 등 윤리경영을 강조해왔다. 이 회사는 높은 윤리성을 디딤돌로 고속 성장을 거듭해 토종 보험사들을 제치고 업계 4위권에 올라섰다.

    증권사 가운데는 동부증권이 300억원으로 금융사고 액수가 가장 컸다. 그 다음은 ABN암로아시아(77억원), 동양종합금융증권(52억원), 신영증권(36억원), 랜드마크자산운용(28억원) 순이었다. 반면 세종증권과 서울증권은 최근 3년 동안 금융사고 금액이 없어 임직원의 도덕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사고가 빠르게 늘자 금융기관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 달에 두 번꼴로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국민은행은 ‘사이버 자물쇠’를 도입했다. 직원이 5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로그아웃 된다. 동료 직원의 컴퓨터를 이용해 은행 돈을 횡령하는 사고를 막겠다는 것이다.

    외국계 은행 반만 닮아라!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월례조회 때마다 “도덕성, 윤리성을 유념하라. 엄중 처벌하겠다”며 직원들에게 엄포를 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준법감시실에서 직원의 비리를 적발하면 곧바로 은행장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추어놓았고, 지점에서 거액이 입출금 되면 ‘감시자’에게 내역이 통보되는 장치도 마련했다.

    이밖에도 내부고발자가 행장에게 직접 신고하는 ‘신문고 제도’를 도입한 은행이 있는가 하면, ‘암행 점검반’ ‘기동감시대’를 운영하기 시작한 곳도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금융사고 ‘제로’가 목표다. 후손에게 떳떳한 삶을 보여주겠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달라”고 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금융기관은 윤리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한다. 내부통제 강화와 윤리의식 고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은행들이 앞 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금융사고 예방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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