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2006.04.04

한방 항암처방 ‘가미계격탕’ 미국에서 인정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04-03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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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방 항암처방 ‘가미계격탕’ 미국에서 인정
    한방(韓方)이 ‘한 방’ 터뜨렸다. 경희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김성훈(50) 교수가 개발한 한방 항암 처방인 ‘가미계격탕(加味啓膈湯)’에 관한 연구 내용이 국제적으로 저명한 암 연구지인 ‘암 연구(Cancer Research)’에 게재된 것.

    국산 당귀와 백급, 동과인 등 10가지 한약재로 만들어진 가미계격탕은 전립샘암 및 폐암 치료를 위한 처방이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산하 호멜연구소 소속 중국계 미국인 루준쑤완 박사팀과의 공동 연구로 개발됐으며, 시험관 내 실험과 동물실험에서 전립샘암 및 폐암 치료에 효과가 있음이 입증됐다. 특히 동물실험에서는 가미계격탕을 주입할 경우 전립샘암 세포를 이식한 생쥐의 68%, 폐암 세포를 이식한 생쥐의 86%에서 암세포 억제 효과를 보였다. 더욱이 일반 항암제를 사용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탈모나 체중감소 등의 부작용도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처방 약재 가운데 국산 당귀에만 존재하는 ‘데커신(decursion)’이라는 성분이 전립샘암의 발생원인 중 하나인 전립샘 특이항원(PSA)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고, 암 발생을 이끄는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기능 또한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이처럼 한방 처방의 효과가 의료선진국인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 특히 과학적 결과로 뒷받침함으로써 한의학이 ‘증거에 입각한 의학’으로 나아가는 데 초석을 놓았다. 가미계격탕 연구는 보건복지부 한방치료기술 과제의 하나로 이뤄졌다.

    “가미계격탕의 큰 특징은 정상세포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암 치료에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쯤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다만 부작용 없이 말기 암환자의 생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역할은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동의보감’ 등 우리 한의서와 중국의 옛 의학서적 50여 권을 독파하는 과정에서, ‘암’이란 용어는 쓰지 않았지만 ‘종양’ ‘반위(反胃)’ ‘적취(積聚)’ 등의 병증으로 기술된 내용이 암 치료와 관련된 부분이라는 점에 착안해 한약재의 고유한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항암제 개발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뒤 그 병증들에 처방된 것으로 기록돼 있는 약재들을 배합하는 실험을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가미계격탕을 만들어냈다.

    가미계격탕 처방은 2005년 미국 특허출원과 동시에 미국 전립샘암연구재단으로부터 10만 달러의 연구지원비를 받았다. 또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신청한 125만 달러의 연구비에 대해서는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실제 암환자들에 대한 가미계격탕 임상실험은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과 미국 메이요클리닉 암센터에서 이뤄질 예정.

    김 교수는 “가미계격탕이 전립샘암과 폐암 이외 다른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경희대 한의대 출신의 김 교수는 모교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한방병리학)를 받은 뒤 1996년 충남대에서 약학 박사 학위(약품화학)도 땄으며, 1988년부터 대전대 한의대와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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