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2006.04.04

40대 예쁜 언니 ‘나우족’ 아시나요?

엄격한 관리로 아름다운 외모와 매력 유지 … 소비 파워도 갖춰 새 트렌드로 자리 매김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3-29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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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예쁜 언니 ‘나우족’ 아시나요?

    세계의 ‘나우’족들. 새 앨범을 내놓은 마돈나, ‘원초적 본능 2’의 샤론 스톤

    1992년 전 세계 남성을 흥분시켰던 영화 ‘원초적 본능’의 속편이 개봉된다. ‘원초적 본능 2’가 일으킨 화제는 단 한 가지, 47세의 샤론 스톤이 14년 전과 똑같은 역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원초적 본능 2’의 샤론 스톤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남성들보다는 40대 여성들이다. 한 30대 남성은 “샤론 스톤이 47세라고요? 그래서요?”라고 되물었다. 젊은 섹시 미녀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당연한 반응이다.

    샤론 스톤은 올해 크리스찬 디오르 화장품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백화점에서 ‘안티에이징 라인(노화 방지)’을 광고하는 샤론 스톤의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던 한 40대 후반 여성은 “‘원초적 본능’은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그땐 거부감도 있었다. 그런데 속편은 보고 싶다. 낼모레 50인 그녀가 여전히 섹시한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중·노년 모델 소비 시장 지각변동

    ‘58년 개띠’인 마돈나의 활약상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여성들이다. 마돈나는 최근 새 앨범 ‘Confessions on a Dance Floor’와, 마젠타색 에어로빅 옷을 입고 춤추는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마돈나의 탄력 있는 대퇴근과 허리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성들은 헬스와 요가 클럽에서 그녀의 뮤직비디오를 교과서 삼아 대퇴근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심이다.

    그런가 하면 80년대 펑크 아이콘이었던 신디 로퍼가 뮤지컬 ‘3푼짜리 오페라’의 창녀 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도 있다.



    80년대 경제호황기에 젊음을 누렸고 90년대에 미시족이었으며, 이제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안티에이징’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40대 이상 여성들. 그녀들은 샤론 스톤과 마돈나가 다시 한번 40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새로운 여성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소비 파워도 갖춘 40대 이상 여성들을 일컫는 ‘나우족’(N.O.W, New Older Women)이란 새 용어도 탄생했다.

    지난해 배우 줄리언 무어(45세)와 수전 서랜든(60세)이 코스메틱 브랜드 레블론의 모델에 기용되더니 올해는 63세인 카트린 드뇌브가 메이크업 브랜드 M.A.C 모델이 됐다. 또 다른 섹스 심벌 킴 베이싱어(53세)가 프라다의 세컨드 라인 미우미우를 입은 광고 사진도 화제다. 사진에 나온 베이싱어는 이전의 어떤 영화 속에서보다 지적으로 보인다.

    40대 예쁜 언니 ‘나우족’ 아시나요?

    배우 킴 베이싱어,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

    ‘섹스 앤 더 시티’의 헤로인 사라 제시카 파커(42세)는 또 어떤가. 마놀로 블라닉 구두, 펜디백 등 그녀가 드라마에서 입고 들었던 아이템들은 세계적으로 품절 사태를 빚었다. 급기야 에스테로데는 ‘나우족’을 겨냥해 그녀의 이름을 딴 향수를 내놓았다. 젊고 트렌디한 브랜드들이 잇따라 중·노년 스타들을 기용하면서 소비 시장도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10대를 겨냥해 저가 상품들을 내놓던 브랜드들은 아르바이트하는 청소년보다 엄마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육체적 노화를 막고, ‘빈 둥지’에서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쓸 태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배우 이미숙(46세)은 한국화장품의 한방 라인 ‘산심’ 모델로 5억원을 받았다. 김희애(40세)도 화장품 브랜드 SKⅡ 모델로 활동 중이다. 이들과 함께 전인화, 황신혜 등은 최고가 브랜드의 스타 마케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배우들로 알려져 있다.

    ‘궁’의 헤로인 윤은혜를 보고 어린 팬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윤은혜 귀고리를 사는 곳은 길거리 ‘짝퉁’ 리어카 좌판이다. 이에 비해 이미숙이나 황신혜가 악어백을 들고 나오면 중년 여성들은 곧바로 갤러리아 백화점에 전화를 걸어 똑같은 제품을 예약한다. 패션 브랜드를 홍보하는 김기동 씨는 “최고가 악어백들이 비닐백처럼 팔려나간 건 황신혜와 그를 모델링하는 40대 여성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샤론 스톤과 마돈나·이미숙 등 중년에 더 각광받는 스타들은 당당하게 나이를 밝히고, 젊어지기 위한 성형수술에 부정적이며, 운동과 식이요법 등을 통해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도 매일 16km를 달린다는 마돈나가 아주 최근에야 “성형수술을 고려해볼 나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크리스찬 디오르의 CEO는 “웃을 때 입가에 생기는 주름, 흔들리지 않는 개성과 카리스마, 위엄과 정신적 우아함 등의 ‘조화’ 때문에 샤론 스톤을 캐스팅했다”고 말했고, 한국화장품 측은 “이미숙의 나이가 고급스런 화장품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제 깊은 주름과 늘어진 뱃살에도 가산점을 주게 된 걸까? 그건 아니다. 비에스클리닉의 김세현 원장은 “나이를 숨기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맞거나, 피부를 벗겨내거나 주름제거 수술을 받는 중년 여성들은 확실히 줄었다. 40대 여성들은 어색한 20대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건강한 30대로 보이고 싶어한다. 꾸준한 투자로 젊음을 유지하는 ‘귀족 성형’의 최대 소비자가 40대 여성들”이라고 말한다.

    “제2의 성인식 갖는 시기”

    나우족은 정신과에서도 가장 큰 고객이다.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는 “외모지상주의 열풍이 40대 이상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과,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라는 점이 나우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에너지가 억압될 경우 우울증에 걸리거나 사회적 일탈로 연결되기도 쉽다. 그는 “‘애인’의 변심으로 고민하는 40대 여성 환자들이 꽤 많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당당한 나우족과 우울증에 걸린 무기력한 40대 주부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것.

    40대 예쁜 언니 ‘나우족’ 아시나요?

    최근 화장품 모델로 캐스팅된 이미숙.

    나우족에게 성과 사랑은 가장 복잡한 문제다. 한 전문직 여성(48세)은 “소개팅임이 분명해 보이는 ‘사교 모임’에 가끔 초대를 받는다. 한편으로 불순한 욕망이 느껴지고, 다른 한편으론 관계와 관심에 대한 소박한 기대 같은 게 오간다”고 말했다.

    “가족에서 떨어져 나온 내 모습을 처음 보게 되는 시기인 거죠. 격려와 용기가 필요한 나이. 가족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밖에서 위안을 찾는 거죠.”

    미국에서 나우족은 이미 트렌드가 됐다. 올해 2월에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섹스와 원숙한 여성 : 열정적 삶의 추구(Sex and the Seasoned Woman : Pursuing the Passionate Life)’의 저자 게일 쉬이는 “대부분 여성들은 40이 넘어서야 남편, 아이, 상사와 그밖의 정신적 지주 안에 갇혀 살아온 것을 깨닫고 제2의 성인식을 갖는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사랑이냐 섹스냐를 마음대로 선택하고, 더 젊거나 더 나이든 남성 어느 쪽과도 열정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과 섹스 대신 자신만의 일을 시작하는 나우족도 많다. 4월 초 서울 인사동에 작은 화랑을 여는 한경희(48) 씨는 “혼자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일을 시작한 뒤 얻게 된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원초적 본능 2’에서 샤론 스톤이 보여주는 모습은 뇌쇄적인 살인범이 아니라 나우족의 ‘꿈’이다. 혼자서 소설 창작과 성적 팬터지 사이를 오가는 40대 여성. 샤론 스톤의 주름진 턱과 옆구리 살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패션쇼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스타일은 ‘나우족’의 쇼핑 가이드가 될 것이다.

    마돈나의 새 앨범에서 ‘아바’의 노래를 샘플링해 전 세계 차트를 석권한 ‘헝업(Hung Up)’은 또 어떤가. 마돈나는 쏜살같은 20년의 시간을 조소하듯 끊임없이 반복한다.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흘러간다(Time goes by so slow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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