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2006.04.04

낯가리고 떼쓰던 버릇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마음 맞는 10~15 가족이면 육아조합 설립 가능 … 이미 세워진 곳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3-29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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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가리고 떼쓰던 버릇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터전을 세우는 과정이요? 물론 힘들었죠. 그렇지만 보람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지난해 7월 문을 연 공동육아 어린이집 ‘나무를 키우는 햇살’(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의 한동욱(38) 조합장이 ‘함께 키우기’를 알게 된 것은 2004년 초. 웹을 서핑하다가 ‘공동육아 하실 분’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나서다.

    “초기에 아홉 가족이 모였는데, 의견 차이가 굉장히 심했어요. 교육관이 서로 달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요. 초기 멤버 중엔 여섯 팀이 남았습니다.”

    ‘나무를 키우는 햇살’은 1년여의 산고(産苦) 끝에 태어났다. 아홉 가족으로 출발해 현재는 열여덟 가족이 둥지를 텄다. 한 조합장은 “아이들에게 나타난 변화를 보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면서 “다섯 가족 정도만 모아도 조합 결성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터전 마련할 때는 주변 환경 최우선 고려를



    공동육아 터전을 세우는 데는 보통 6개월 정도 걸린다. 초기부터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도움을 받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공동육아는 협동조합 형식으로 꾸려지는데, 협동조합은 재단·사단법인과 마찬가지로 ‘비영리법인’으로 분류된다.

    “초기 멤버가 결성되면 조합 설립과 관련한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거나 관심을 나타내는 부모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게 좋습니다. 조합 설립은 ‘빨리빨리’보다는 ‘함께’를 중요시해야 합니다.”((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황윤옥 사무총장)

    10~15가족이 확보되면 본격적으로 설립 준비에 나설 수 있다. 교사를 구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역할에 따라 조합장(이사장)과 운영·시설·재정·홍보·교육이사 등을 뽑는다. 이사회는 조합의 최고의결기구. 이사회는 보통 1월과 7월에 정기총회를 열어 감사와 사업 승인을 받는다.

    이사회와 함께 터전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축은 교사회. 교사대표도 당연직 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한다. 교사회는 교사대표와 ‘방’ 담당 교사, 영양교사로 이뤄진다. 교사들은 매주 토요일 ‘짧은 모둠’과 한 달에 한 번 ‘긴 모둠’을 하면서 터전 운영 방식과 커리큘럼 등을 상의한다.

    돈과 시간 많이 들어 조합에 헌신할 자세 필요

    교사는 공개모집을 원칙으로 해당 조합에서 3인,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 2인이 참여한 인사위원회에서 뽑는다. 대표교사는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 ‘공동육아 원장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으로서 2년 넘게 공동육아 교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공동육아 교사들은 지역별로 매달 모임을 갖는다. 교사 대부분은 ‘공동육아 철학’으로 무장한 이들인데, 모임을 자주 갖는 것은 역사가 짧은 ‘대안 교육’인 만큼 활발한 정보 교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영양교사들도 틈날 때마다 ‘맞춤형 유기농 식단’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낯가리고 떼쓰던 버릇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3월11일 경기 성남시 새마을연수원에서 열린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정기총회.

    터전을 마련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주변 환경이다. 아이들이 30분 이내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산, 들, 공원이 있어야 한다. 대안으로 주변에 산이 있는 아파트 1층이 이용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하루 10~12시간 생활하는 공간인 만큼 주택이 좋습니다. 30명 기준으로 40평은 넘어야겠지요. 마당에 텃밭과 모래놀이터를 마련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요.”(‘친구야 놀자’ 육성철 조합장)

    터전을 사거나 임대할 때 필요한 자금(보통 가족당 500만~1000만원)은 조합원들이 갹출한다. ‘나무를 키우는 햇살’의 경우 한 가족당 출자금은 500만원. 초기 멤버 중엔 2000만원을 낸 이들도 있는데, 이들 가족은 조합원 수가 늘어난 뒤 1500만원을 되찾아갔다.

    터전은 명의를 1년 임기의 조합장 앞으로 해놓고 ‘실소유주는 조합’이라는 공증을 받아두면 된다. 출자금은 아이가 ‘졸업’하면 되돌려 받는데, 새로 들어온 가족이 이 돈을 벌충하는 시스템이다. 조합원이 늘어 출자금이 쌓이면 터전에 재투자한다.

    공동육아 조합은 매달 2만~3만원의 조합비를 거둔다. 보육료는 40만원 안팎(초등학생의 경우는 25만~30만원). 조합비는 운영 경비 등으로 쓰이고 보육료는 교사들의 월급으로 주로 지출된다. 신입조합원이 내는 가입비(30만~60만원)는 시설 개·보수 비용, 교재·교구 구입비 등으로 쓰이는데 되돌려 받을 수 없다.

    조합 설립이 버겁게 느껴지면 이미 세워진 조합에 출자금과 가입비를 내고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방과후’는 전국에 각각 60곳, 19곳이 설립돼 있다((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홈페이지 참조·www.gongdong. or.kr). 각 조합의 이사회는 면접을 거쳐 신입조합원을 뽑는데, ‘선발 기준’은 ‘부모가 공동육아에 헌신할 수 있느냐”(‘친구야 놀자’ 육성철 조합장)라고 한다.

    공동육아는 맞벌이 부부가 고민해볼 만한 ‘선택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조합에 헌신할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한동욱 조합장의 설명이다.

    “생각보다 돈도 많이 들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섣불리 나섰다간 후회할 수도 있어요. 공동육아의 교육철학이 믿고 따를 만하다고 여겨지면 한번 도전해보십시오. 아이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좋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관련법 통과되면 정부 지원도 가능

    ‘아이들 전인교육’ 법률안 국회 계류 중


    낯가리고 떼쓰던 버릇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공동육아 ‘방과후’는 국회에 계류 중인 ‘학령기 아동·청소년 보호와 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의원(열린우리당·사진)이 3월6일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대통령령에 따라 방과후를 비롯해 아동·청소년 보호 및 교육 시설에 소요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보조할 수 있다.

    김 의원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확대된 가운데 부모의 맞벌이로 곤란을 겪는 아동들에 대한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및 보호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병호 교수(인류학)는 이와 관련해 “지역사회의 유휴 시설을 맞벌이 부부에게 보육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면서 “저출산 및 고령화 시대의 보육 지원은 국가의 번영과도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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