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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新공동체운동 ‘함께 키우기’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좋은 먹거리·자연 벗삼는 환경 조성 … 아이 만족, 부모 만족 ‘함께 키우기’ 소문 없이 확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두근두근’의 초등학생들이 ‘고누 놀이’를 즐기고 있다.

지난여름, 이송지(44) 씨네 밥상엔 어김없이 탱탱한 풋고추가 올라왔다. 아이들은 날된장에 풋고추를 푹푹 찍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탁의 단골손님이 된 풋고추는 이 씨가 ‘공동육아’를 함께하는 부모들과 4년째 일궈오고 있는 텃밭에서 나온 것이다.

이 씨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이하 조합) ‘하늘땅’(경기 의왕시 내손2동)의 보육교사다. 이 씨가 부모로서 ‘함께 키우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그는 “자연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한다”는 공동육아의 모토에 매료돼 경기 의왕시에 조합을 세웠다.

“큰아이를 낳아 기르던 동네(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귀한 주택가였어요. 둘째 아이까지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했죠.”

‘부모들이 함께 모여 육아를 한다? 그것도 자연에서 뒹굴며 놀게 한다?’ ‘다시 직장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 ‘아이들에게 나비와 꽃도 실컷 보여줄 수 있겠다!’ 그렇게 시작한 함께 키우기는 이 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이들은 참으로 잘 자라주었습니다. 자연을 만끽하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아이들만 깨친 게 아니에요. 남편과 저도 늙어 저세상에 갈 때까지 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들이 생겼습니다. 그사이 공동육아 부모에서 교사가 되기도 했고요.”



팍팍한 도시생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공동육아가 소리 소문 없이 번지고 있다.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 가입한 ‘어린이집’과 ‘방과후(초등학생 공동육아)’만 각각 60곳, 19곳에 이른다. 함께 키우기는 일반에겐 다소 생소한 개념. 공동육아는 글자 그대로 ‘부모들이 모여 집과 교사를 구하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함께 키우기’ 전도사인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황윤옥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10~30명의 부모들이 300만~1000만원의 출자금을 내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얻거나 삽니다. 그러고는 여러 아이들을 맘껏 뛰놀게 하며 함께 키우는 겁니다. 텃밭을 얻어 고추·토마토·열무·아욱을 키우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자연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지요.”

함께 키우기의 뿌리는 저소득층 어린이를 지원하기 위해 1978년 세워진 ‘해송어린이걱정모임’. 94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첫 조합 ‘우리’가 조직됐고, 우리 졸업생들이 초등학생이 된 97년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가 등장했다.

아이들과 부모들 자연의 관계, 사람의 관계 배워

공동육아의 핵심 철학은 ‘관계 맺음’이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얽히는 법’, ‘사람과 얽히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공동육아로 자라는 아이들은 자연을 벗삼아 생명과 순환의 섭리를 깨닫는다. 함께 키우기의 ‘공동 주주’인 부모와 어린이 교사는 평등한 공동체적 삶을 경험하면서 주변과 관계 맺는 방법을 깨친다.

3월7일 오전 10시 서울 광진구 아차산. 조합 ‘산들’(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교사와 ‘아마(아빠와 엄마를 줄인 말로 부모 일일교사 혹은 자원봉사자)’, 어린이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자연으로 여행을 떠난다. 바람과 햇볕을 느끼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여섯 살 민영이는 제철보다 이르게 싹을 틔운 푸른 새싹을 신기한 듯 쓰다듬는다. 회사에 월차휴가를 내고 아마를 나온 송주경(35) 씨는 아차산을 오르면서 “아이가 뭉게구름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고, 매일 새로운 노을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공동육아에선 나들이를 ‘밥’에 비유한다. ‘산들’의 박정화 대표교사는 “밥을 먹으면서 에너지원을 공급받듯 아이들은 나들이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키운다”고 했다. 날씨가 아주 춥거나 비가 오지 않으면 전국의 공동육아 아이들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나들이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하루 종일 놀다 오는 ‘긴 나들이’를 떠난다.

3월8일 오전 7시30분. 경기 안양시 비산동 조합 ‘친구야 놀자’의 ‘터전’에 부모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온 아이들은 영양교사가 유기농(공동육아는 모든 식사를 유기농으로만 만든다)으로 자란 곡식으로 만들어준 죽으로 배를 채운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려오는 시각은 7시부터 9시까지 제각각 다르다. 부모가 퇴근해 데리러 올 때까지 아이들은 7명의 교사 및 아마와 생활한다.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바뀐 교육 공동체

“뒷무덤가에서 놀았다며, 약수터로 나들이를 다녀왔다며, 아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흙먼지를 털어냅니다. 진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보며 엄마한테 미안한지 쭈뼛거리면서도 밝게 웃습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은 ‘엄마, 나 오늘 하루도 신나게 놀았어요~!’라고 말하는 듯해요. 감자·콩·김 단 세 가지 반찬만으로 하루 세 끼를 다 해결할 만큼 편식이 심하던 아이가 이젠 김치도 먹어야 하고, 당근도 먹어야 튼튼해진다며 스스로 먹기를 시도합니다. 그래도 자기에게는 대단한 도전인 양 한참을 뜸 들이고 어려워하면서도 곧잘 먹습니다.”(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는 작가 강정옥 씨·32)

공동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하는지를 부모가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한 먹을거리로 잘 먹이는 일,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공동육아는 부모와 교사, 아이가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교육 공동체다. 조합원들은 아마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아이’에서 ‘우리들의 아이’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함께 키우기를 시작한 뒤로 아마 활동도 해야 하고, 방모임도 해야 하고, 터전 청소도 해야 해서 많이 바빠졌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육아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아빠 엄마의 웃음, 그리고 아이의 행복이 그것입니다.”(회사원 이세연 씨·34)

함께 키우기에 나선 부모들의 노력은 헌신적이다. 이 씨는 “회사 일 하랴, 조합 일 하랴 몸은 솔직히 너무 고되다”면서도 “좋은 먹을거리를 먹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맞벌이 부부에겐 공동육아가 최선의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교사 아마’ ‘이불빨래 아마’ ‘차량 아마’ 등 생활의 상당 부분을 공동육아에 할애해야 한다. 아빠들도 예외가 없다. 육성철(37·공무원) 씨는 “함께 키우기는 남성들을 양성평등의 세계로 뛰어들게 한다”면서 “이른 새벽, 터전 아이들 먹일 김밥을 싸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10여명의 ‘친구야 놀자’ 햇살방(7세) 조합원들이 3월8일 저녁 ‘방모임’을 위해 허구영(40·화가) 씨 집에 모였다. 방모임은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터전의 운영 방식과 커리큘럼을 논의하는 회의다. 7시에 시작한 회의는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깁밥 당번’과 ‘이불빨래 순서’를 정하는 건 금세 끝났으나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공방나들이(도자기 굽는 법을 배우는 것)’가 문제였다. “공방나들이는 일종의 과외다. 공동육아 정신에 위배된다”는 한 부모의 주장에 토론이 불을 뿜은 것.

‘함께 키우기’의 독특한 용어들

‘마주 이야기’ ‘터전’ ‘아마’ ‘마실’ 등 정겨워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양말이 젖었는데 새로 신을 양말이 없는 새미를 보고)
인범(6세) : 인호야, 새미한테 곰돌이 양말 빌려주면 안 돼?
인호(6세) : 안 돼.
인범 : 그럼 마음이 안 넓어져.
인호 : 안 돼! 내 꺼야!
인범 : (고민하다가) 환히가 양말 빌려주면 안 돼?
환히(6세) : (자기 바구니에서 양말을 한참 찾다가) 짝짝이여두 돼?
새미(6세) : (고개를 끄덕끄덕)

‘함께 키우기’의 ‘마주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마주 이야기란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들의 얘기를 꼼꼼히 들어주는 것을 뜻한다. 교사들은 마주 이야기를 ‘날적이’에 적으면서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아이들 안에는 어떤 세계가 있는지 파악한다.

날적이는 부모와 교사들이 날마다 아이들의 생활을 적는 공책을 말한다. 교사와 부모는 날적이를 쓰고 읽음으로써 아이들을 더욱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양육할 수 있다. 날적이는 성장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보육 일기’이기도 하다.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은 ‘어린이집’과 ‘방과후’를 ‘터전’이라고 부른다. 터전은 부모, 어린이, 교사가 공동체적 육아를 실현해나가는 나눔터.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터전 구석구석엔 부모와 교사들의 땀이 배어 있다.

터전의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방’으로 나뉘어져 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까꿍방, 도글방, 소근방, 당실방 등 방의 이름은 앙증맞기 그지없다. 유치원과 학교의 ‘반’이 고립적이고 제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면, 방은 안방·건넌방처럼 생활공간으로서의 자유로운 넘나듦을 지향한다.

전국의 공동육아 아이들은 매주 월요일 ‘모둠’을 한다. 모둠은 교사와 ‘아마’, 아이들이 차를 마시면서 하는 회의(생각 나누기)다. 아마는 아빠·엄마의 줄임말로, ‘아마 활동’은 부모 일일교사와 자원봉사자를 뜻한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이뤄지는 ‘나들이’는 아이들이 들판에서 뛰어노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연을 벗삼아 놀면서 아이들은 주변 환경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들살이’는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7박8일 일정으로 멀리 떠나는 여행이다. 방과후는 1년에 한 달 넘게 들살이를 한다.

‘마실’은 ‘또 다른 엄마’ ‘또 다른 아빠’의 집으로 놀러 가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가 늦게 퇴근할 때 다른 집에 가 있는 것은 ‘밤마실’이라고 부른다. 아빠들이 일요일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축구나 섹소폰을 가르치는 것도 마실이다.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① 텃밭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② ‘황토염색’을 비롯해 다채로운 야외활동도 자랑거리. ③ 장구 치기, 사물놀이는 공동육아의 기본 커리큘럼이다. ④ 아이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이불 개기 등 규범을 자연스레 배운다. ⑤ 노래와 율동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

크고 작은 갈등, 교사와 부모 합의로 풀어

부모들이 공동육아를 선택한 까닭은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서’, ‘아토피성피부염을 고쳐주기 위해서’ 등 제각각 다르다. 목적이 다르다 보면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 “공부를 조금은 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공동육아의 기본 정신을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는 조합원도 있다. 공동육아는 이런 갈등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사와 부모들의 합의에 따라 풀어나간다.

“아이한테 친구 만들어주려고 시작했다가 제 친구들이 늘었습니다. 아이 가르치려고 시작했다가 제가 더 많이 배웠고요. 함께 키우기는 공동체적 삶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부모들을 재사회화하는 도구로도 기능합니다. ‘참여 보육’이면서 일종의 ‘공동체 운동’인 셈이죠.”(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현재는 ‘별나라삐삐넷’이라는 이름의 공동육아용품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곽영선 씨)

공동육아로 자라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이건, 방과후건 터전에선 숙제를 제외한 ‘학과 공부’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대신 장구, 사물놀이 등 ‘우리 것’을 배우고 틈나는 대로 밖에서 뛰어논다. 3월15일 오후 경기 과천시의 한 초등학교. 초등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오징어달구지’ ‘비석치기’ ‘사방놀이’를 하느라 분주하다. 방과후 과정을 운영하는 조합 ‘두근두근’(1~2학년)과 ‘한발 먼저’(3~6학년)의 터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다.

“학교 파한 뒤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은 터전 아이들밖에 없어요. 다른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를 돌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할 때, 80년대까지 으레 초등학생들이 그랬듯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지요.”(‘두근두근’ 교사 방극조 씨·34)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비석 치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또래와의 ‘야외 놀이’는 인격 형성과 신체 발달에 도움을 준다.

‘두근두근’의 어린이들은 관악산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텃밭은 아이들이 노동을 배우는 소중한 공간이며 놀이터다. 텃밭은 울적한 날이나 마음이 상한 날엔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한발 먼저’의 교사 이은희(35) 씨는 “공동육아로 자란 아이들은 품성과 감수성이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다”면서 “텃밭을 정성껏 가꾸고, 들살이나나들이를 하면서 자연과 벗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3~6개월 적응기간 필요

‘한발 먼저’는 해마다 30일가량 ‘들살이’를 떠난다. 여름방학엔 8박9일씩 여행을 떠나고 학기 중에도 3박4일씩 여러 차례 들살이를 즐긴다. 6학년 정민이와 재준이가 “문경새재의 제1관문이 아름다웠다”(정민), “아니다. 제2관문이 더 멋있었다”(재준)면서 다투는 표정이 진지하다. 제법 소녀티가 나는 정민이는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좋고 풍물놀이도 재미있다”면서 “학교와 달리 남자, 여자가 같이 놀고 나이에 상관없이 어울려 지내는 게 너무 좋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함께 키우기’는 부모와 아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방과후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아이들의 만족도는 높지만 부모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 함께 키우기가 표방하는 전인교육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데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터전에서 생활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적응하는 데 3~6개월 정도가 소요되기도 한다.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방과후’ 문제는 공동육아 전체의 고민입니다. 방과후 교사들도 부모들의 조바심과 공동육아의 근본정신 사이에서 걱정이 많아요.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토론하고 현실에 맞춰 변화해가다 보면 좋은 해법을 찾을 거라고 봅니다. 공동육아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함께 키우기로 자란 아이들은 공부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한양대 정병호 교수·(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공동대표)

공동육아협동조합 ‘친구야 놀자’ 정미경조합원

“서로 돕는 것 일상화 … 걱정해주는 이웃이 큰 기쁨”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우리 부부가 처음 안양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친구야 놀자’의 문을 두드린 건 아들 지호가 네 살 때인 3년 전의 일이다. 우리 부부는 내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주길 원했다. 유치원 때부터 숨 막히는 경쟁 속에 내몰고 싶지 않았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기를 원했다.

지호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 듯, 엄마 아빠의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친구야 놀자’에서 매일 산과 들로 나들이를 다닌 덕분에 계절의 변화에 따른 만물의 흐름을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고, 어린이집의 친구들과 동생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아이로 자라주었다. 그런데 이런 공동육아 생활을 통해 성장한 건 비단 지호만이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우리 부부도 좀더 성숙한 부모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처음 지호가 ‘친구야 놀자’에 등원하게 되었을 때, 당시 운전을 못했던 나는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지호를 집까지 데려오는 일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신입 조합원으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터라 속으로만 ‘누구 태워줄 사람 없을까?’ 고민 하던 중에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여섯 살 유진이었다.

유진이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 “조금 있으면 우리 엄마 오는데, 기다렸다가 우리 차 같이 타고 가” 하는 것이었다. 순간 여섯 살 꼬마에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하면서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스러움에 깜짝 놀랐다. 그 뒤 우리는 유진이네 신세를 지는 일이 잦아졌고, 공동육아에서는 이렇게 서로 돕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지호가 새로 온 친구와 부모들에게 먼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마실 와서 저녁밥 먹고 놀다 가.” 그리고 부모가 바쁜 친구들이 있으면 “엄마가 쫛쫛를 돌봐주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사실 처음에는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낯선 사람들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서툴게나마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부담과 귀찮음의 자리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 부부는 공동체 생활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위해주고 걱정해주는 이웃이 있다는 건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큰 기쁨이다. 처음에 이웃의 관심과 배려가 부담스러웠던 건 아마도 이런 관심이 익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어린이집에 새로 오는 부모들을 보면 내가 먼저 다가가고 저 집에 언제쯤 놀러 갈까부터 생각하게 된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들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야 놀자’의 부모들.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수다쟁이 동네 아줌마가 되어 있지만, 젊은 날 꿈꾸었던 멋진 커리어 우먼보다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자랑스럽다. 주변과 대화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자라나는 내 아이의 모습이 자연 그대로라면, 이웃들과 소통하며 소박한 아낙으로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 또한 자연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내 아이의 검게 탄 얼굴에는 도시 아이의 세련미는 없지만, 먼 훗날 우리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유년 시절에는 ‘자연’과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줄 것이다.

문득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초라한 안주에도 기꺼이 함께 소주잔 기울여줄 이웃이 있는 곳, 아이 키우러 왔다가 부모가 함께 커나가는 곳, 그곳이 바로 공동육아 어린이집 ‘친구야 놀자’이고, 내가 오늘도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이유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야호!’ 왕희애교사

“놀아보라, 그리하면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니”


혼자 한 뼘 크는 아이 같이 뛰어놀면 두 뼘 쑥~쑥
“우리는 다람쥐고, 선생님은 도토리야. 우리를 키워주는 거야.”

2000년 2월, ‘야호!’ 어린이집을 졸업한 예비 초등학생 다섯 명과 함께 ‘방과후’를 시작한 것이 공동육아와의 첫 인연이었다. 방과후 이름과 함께 나에게도 좋은 별명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했더니 한 아이가 집에 가서 생각해온 모양이다.

자기들은 작은 몸집으로 온 숲을 누비고 다니는 다람쥐가 될 터이니 나는 기꺼이 다람쥐를 위해 몸 내놓는 도토리가 되어달라고 당당하게 제안하는 아이. 게다가 기골이 장대한 나를 선뜻 도토리라 부르다니. 너무 잘아 발에 차이지도 않는 것이 도토리 아니던가.

어찌 보면 나를 잡아먹고 크겠다는 아이들의 요구에 ‘아니, 이런 고얀’ 할 일이었지만 왠지 그 순간 참 고마웠다. 두터운 신뢰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함께 키우기’를 접하기 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독서와 논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학교는 모든 것을 외우라 강요하고, 엄마는 하다못해 글쓰기에서라도 점수를 더 따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아이들과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없는데 그걸 뻔히 알면서 “이 책이 좋으니 읽어라, 읽고 감상문을 써와라”고 채근할 수만은 없었다.

제한된 시간 탓에 나와 아이들 간에 아무런 영향도 주고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떨구던 어느 날, 눈에 확 띄는 활자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공·동·육·아’. 공동육아가 어떤 곳이고, 왜 만들어졌는지를 읽으며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여기가 바로 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야.’

날마다 아이들을 만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정으로 스며드는 곳이 내가 근무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출근하면서 보육교사 자격증도 따게 되었지만, 지금도 아이들 앞에 서서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책의 내용보다도 어린 시절의 내가 어땠더라 하는 회상이다. 자유로우면서도 신나게 뛰어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보살핌을 주고자 한다.

지금 공동육아 아이들은 어쩌면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린이집 안과 밖엔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세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아이들 편에 서서 좁혀가는 것이 이 땅이 행복해지는 방법일 것이다.

게임기가 없으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는 아이 때문에 걱정된다면 지금 아이와 함께 일주일만 모래판으로 나들이 가보라. 함께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굴을 쌓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모래판을 거부하는 아이는 보육교사 생활 6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많은 것이 채워지지 않은 곳에서 땀 흘리며 노는 아이들에겐 물건보다 더 많은 것을 채워주는 친구의 소중함이 있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다. 놀아보라. 그리하면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니.

나를 먹고 크겠다는 녀석들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녀석들의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고, 그냥 주기는 섭섭하니 네 마음도 달라 하며 서로 채워주는 연습을 한다. 비우고 채우기를 번갈아 하니 나는 아직 그대로 도토리인가. 아이들은 이렇게 커가는데, 나는 언제 참나무가 될까 싶다.




주간동아 529호 (p20~24)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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