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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북한식 민족주의’가 진정한 민족주의인가

위대한 수령 모시자는 주의 … 순수 민족주의와 동일시는 중대 착오

  •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북한식 민족주의’가 진정한 민족주의인가

‘북한식 민족주의’가 진정한 민족주의인가
2월9일 발매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때 아닌 이념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재인식’의 공동 필자들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서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했다고 밝힌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서는 보수·우파적 시각이 짙게 배어 있다는 평을 내리고 있고 우파 진영에서는 ‘재인식’보다 훨씬 이전에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오히려 좌파적인 역사관에 입각해 씌어진 책이라는 전혀 상반된 평을 내리면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불붙고 있는 현대사 논쟁을 곰곰이 따지다 보면, 그 핵심 고리의 하나가 민족주의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의 강력한 사상적 지주가 되었고, 분단 이후에는 통일운동의 뜨거운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8·15 광복으로 타 민족의 지배를 끝내는가 했더니, 그 직후 다시 민족이 동·서 진영으로 양단, 편입되는 비극을 맞았다. 이 같은 특수 상황은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민족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우리 민족주의의 특성이 있다.

민족주의는 현대사 논쟁 핵심 고리

‘북한식 민족주의’가 진정한 민족주의인가
민족주의는 서양에서는 18세기 이후 민족국가를 탄생시키고 민주주의와 결합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근대 국민국가 체제를 구현했다.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이 그런 사례다. 분단국가이기는 하지만 한국 역시 민족주의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건국 후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반면에 일부 국가에서는 독재체제와 결합해서 이른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를 탄생시켰다. 그 좋은 예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이다. 독일과 일본의 오도된 민족주의는 두 나라 민족뿐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도 커다란 재앙을 가져왔다. 분단 이후 북한에 등장한 김일성 중심의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애초에는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족주의가 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한 반동사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1950~60년대의 중·소 분쟁을 계기로 처음에는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족적 색채를 강조하다 나중에는 주체사상의 형태로 특이한 민족주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김일성은 부르주아적 민족주의는 곤란하지만 참다운 민족주의는 필요하다면서 북한식의 ‘진보적 민족주의’ 개념을 정립했다. 그런데 북한이 채탁하고 있는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영도를 절대시하는 이른바 ‘수령관’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 민족주의’ 개념에서도‘조선민족’을 아예 ‘김일성민족’이라고 부르고 ‘김일성민족제일주의’를 제창하기에 이른다.

‘북한식 민족주의’가 진정한 민족주의인가

순수한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와 북한식 민족주의는 구별해야 한다.

‘김일성민족’이라는 표현은 김정일이 1994년 10월16일 김일성 사망 100일 추모회를 마친 뒤 발표한 담화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그 후 북한 매체들은 “오늘 우리 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민족이고, 현대 우리 조선은 수령이 세운 김일성조선”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김일성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강조했다.

더욱 주목할 사실은 약 10년 전부터는 북한 당국이 ‘김정일민족’이라는 용어도 같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평양방송은 1996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2주기를 맞아 ‘우리는 김일성민족이다’라는 글에서 “태양이 영원하듯 김일성민족, 김정일민족은 영원무궁하리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북한의 민족주의는 ‘위대한 수령’을 모시자는 주의다.

이런 사실은 남쪽의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다수 지식인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남한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주의는 요즘 자주 대할 수 있는 푸른색 한반도기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순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낭만적인 민족주의이지 북한식 민족주의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민족주의’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수한 민족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중대한 착오다.

서양에서는 19세기를 ‘민족주의의 세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는 20세기가 ‘민족주의의 세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불행하게 우리 민족은 20세기에도 통일 민족국가를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21세기에는 반드시 민족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화의 세기’인 21세기에 서구에서는 민족국가가 사실상 해체되고(즉 민족주의가 퇴조하고),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제주의가 판치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민족국가 완성과 세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민족적 난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 맹목적 민족주의 경계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맹목적인 민족주의다. 민족주의는 서양의 선진국들에서처럼 민주주의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그 민족의 발전과 번영의 터전이 된다. 이런 사실은 민족주의가 인권과 자유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보다 결코 우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사실은 국토가 좁고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은 편협한 민족주의로는 살아갈 수 없는 나라라는 점이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이 된 한국이 세계화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다. 세계화야말로 민족의 활로를 여는 키워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래 민족주의 세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보수·우익세력을 지칭했다. 김일성조차도 해방공간에서 우익세력을 민족주의 세력이라고 불렀다. 그랬던 것이 북한정권이 주체사상과 반미노선을 내걸고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비난하면서부터 차츰 남과 북에서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인식의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이후 북한이 연방제와 민족공조를 주장하면서 대대적인 선전공작을 벌인 결과 이제는 북측이 민족·통일 세력, 남측은 반민족·반통일 세력인 것처럼 말하는 좌파세력이 남한에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국민을 굶기고 탄압하는 민족주의는 진정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없다. 자유와 인권과 번영으로써 민족구성원 다수의 권리와 복리를 보장할 때만 민족주의는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다. 민족공조니 국제공조니 하는 문제도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민족공조는 북한 권력자와의 공조가 아니라 북한 내 우리 민족 구성원과 공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이제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극복, 승화되는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우리의 민족주의와 통일정책도 21세기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간동아 2006.02.28 524호 (p60~61)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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