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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 소수민족의 설움

민족 갈등의 희생자 … 영화 속 단골 소재로 등장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민족 갈등의 희생자 … 영화 속 단골 소재로 등장

민족 갈등의 희생자 … 영화 속 단골 소재로 등장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음악 중 하나가 ‘선라이즈 선셋(Sun Rise Sun Set)’이다. 약간 흥겨우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드는 바이올린 선율의 이 곡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70년대 영화의 주제음악이었다.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옮긴 이 영화는 20세기 초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유대인 가족인 테비 일가의 얘기를 그리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깊은 신앙심과 전통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사는 유대인 마을.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갑작스런 퇴거 명령이 떨어지면서 깨지고 만다. 테비 일가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가재도구를 수레에 싣고 정든 마을을 떠난다. ‘해는 뜨고, 또 지면서 세월은 흐르네. 자고 나면 씨앗에서 꽃은 피어나고….’ 주제곡의 제목이나 가사는 주인공 테비의 낙천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러시아에서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삶의 비애가 진하게 묻어 있다.

만들어진 지 30여년이 된 영화는 어느덧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100년 전을 배경으로 펼쳐진 영화 속 이야기는 지금 생생한 현재진행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것도 끔찍한 살육극으로.

최근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에서 벌어진 인질극은 1000명이 넘는 사상자 수도 끔찍하지만 이 같은 참극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인질범들이 10여개 민족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는 발표는 사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인데, 바로 이 지역의 복잡한 민족 갈등 사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포인 고려인도 포함됐다는 이 발표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번과 같은 사건이 단발성이 아니라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100년간 잠복해 있던 러시아의 소수민족 문제의 불씨는 이제 곳곳에서 불똥이 튀고, 때로는 이번처럼 엄청난 파열음을 내면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인구의 약 84%가 러시아 고유민족이지만 그외는 100여개가 넘는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 말인 19세기 후반 국경 확장과 함께 편입된 민족과 영토들이다. 이 민족문제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집권한 소련 정부에 큰 부담이었다. 당시 혁명 정부가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최고 통치기관인 인민위원회에 민족위원을 뒀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심이 높았다는 것과 처리가 제대로 됐는지는 별개의 사항이다. 볼셰비키 정부의 대처는 적절했을까. 민족인민위원이 스탈린이었다는 게 비극의 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스탈린이 민족위원이 된 것은 그가 그루지야 지방 출신이라는 것과 관계가 깊었다. 남부 러시아의 접경지역인 그루지야는 이번에 인질극이 발생한 북오세티야와 접경지역으로 민족문제의 최전선과도 같은 곳이다. 출신 지역의 ‘후광’에다 민족문제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보이면서 스탈린은 레닌과 볼셰비키 지도부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레닌 사후 집권한 스탈린의 철권통치는 민족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초기에 민족의 문화적 자주성을 인정하던 소련 정부의 민족정책은 크게 후퇴해 소수민족을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선회했고, 민족 간 융합이 강제로 행해졌다. 많은 소수민족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땅, 낯선 이민족들 사이에 갑작스레 내던져졌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위험한 불씨를 키웠을 뿐이라는 걸 우리는 지금 북오세티야 사태를 통해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본격화된 민족 갈등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구 일대 전역을 휩쓸면서 피의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최근 개봉된 ‘터미널(사진)’이라는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주인공 나보스키도 이 동구 어디쯤에서 벌어진 민족 갈등으로 갑자기 국제 미아 신세가 된 인물이다. 입국 거부자가 돼버린 그가 공항 터미널을 거처로 삼는다는 영화는 엉성한 스토리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나보스키의 처지는 오늘날 소수민족의 절박한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테비 일가 같은 유대인들은 이제 유럽 미국에서 주류로 진입하고 나라를 건설해 자신들의 안식처를 확보했지만, 공항 터미널에 갇힌 나보스키 같은 ‘제2의 테비’들의 유랑이 끝날 날은 아직 한참 멀어 보인다.



주간동아 453호 (p87~87)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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