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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I e-폴리틱스의 빛과 그늘

여의도는 지금 인터넷에 멱살 잡혔다

폭로와 검증 사이버 파워 현실정치 좌지우지 … 순수한 의도 뒤에 대립과 이념 양극화 자리잡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여의도는 지금 인터넷에 멱살 잡혔다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대표 신혜식)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부친 권오석씨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독립신문 측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경남 창원군 진전면을 점령했을 무렵의 권씨 행적을 구체적으로 파헤쳐 2002년 대선 당시 제기됐던 좌익 의혹을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당시 권씨에게 조사를 받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유족 등 11명이 주인공으로 등장, 그때 상황을 증언할 계획이다.

유족 대표로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앞장서고 있는 변재환씨(57)는 “올바른 과거사 청산과 반성을 위해 유족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며 “8월 말부터 두 달 동안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뒤 전국 순회 시사회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립신문’을 통해 동영상으로도 제공될 이 다큐멘터리는 3부작으로 10월 중순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립신문 측이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와 각종 인터넷 매체가 과거사 검증 작업을 친일청산으로만 몰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로 ‘좌익’ 활동도 과거사의 한 축이라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권여사 부친의 ‘좌익 활동’이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노대통령이나 권여사와 무슨 관계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사이버 파워가 여의도를 압도하고 있다. 각종 정치적 이슈를 선도하며 경우에 따라 사이버 재판도 벌인다.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의 부친과 관련한 기사가 ‘주간동아’에 보도된 직후 증권가에서는 ‘15인의 친일 리스트와 12인의 좌익 리스트’가 나돌았다. 이니셜로 작성된 이 리스트는 작성 직후 곧바로 인터넷 사이트로 ‘토스’됐고, 그 가운데 일부는 네티즌들의 정교한 검증(?)을 통해 이름과 과거 행적이 공개됐다.

각종 정치 이슈 마녀사냥식 재판 벌여

여의도는 지금 인터넷에 멱살 잡혔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신임의장(오른쪽)이 8월 20일 오전 당사에서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C의원의 한 측근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인터넷에 이름이 오른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대뜸 “A는 누구고, B는 누구냐”며 무한질주를 거듭하는 폭로 시스템에 대한 공포감을 드러내 보였다. 실체도 없고, 배후도 없는 사이버 공간에 이름이 한 번 오르면 삽시간에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이 그의 두려움이었다.



기자가 “어차피 인터넷의 공세를 피하기 어려워 보이니 커밍아웃을 하라”고 권유하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과거사 진상규명의 방향과 원칙에 대해 아직 감을 잡지 못해 선친의 행적을 국민 앞에 공개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 고민의 핵심. 그는 “자신들과 비슷한 고민에 빠진 의원들이 주변에 많다”며 그들과 상의해 사이버 폭로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C의원의 측근 지적처럼 인터넷에 멱살을 잡힌 정치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일제시기 마이니치신문의 한국지사장으로 황국신민화를 조장하는 기사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된 A의원의 부친, 일본 황실에 충성맹세를 하고 작위를 받았다는 B의원의 부친, 역시 충성맹세를 하고 경찰간부로 활동했다는 C의원 부친 등 폭로 릴레이는 끝이 없다. 금융조합 서기로 소작농민을 착취했다는 D 전 의원의 부친, 일제 때 소학교 훈도(교사)로서 황국신민 교육요원을 했다는 E의원 부친 얘기 등은 이미 사이버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 멱살을 잡힌 A, B, C, D, E의원 등은 전전긍긍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한다. 한편으론 객관적 기준 없이 필자(네티즌)들의 일방적 시각에 의해 추진되는 ‘폭로’ 시스템에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순수한 동기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이런 순수한 의도가 인터넷과 연결되는 순간 정치적 손을 타면서 불순한 목적과 의도가 가감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음모론과 배후설은 늘 붙어다닌다. 최근 선친의 친일행적 문제로 인터넷에 이름이 오른 수도권 A의원. 실상 그는 이미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몇 차례나 이 문제로 사이버 혈전을 벌인 경험이 있다. A의원 측은 “선거전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누군가 선친 얘기를 인터넷에 올렸고 이것이 지금까지 살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A의원은 경쟁 상대였던 모 후보 측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지만 ‘익명’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범인 색출에는 실패했다.

A의원 지적처럼 총선과 대선 등 정치 행사를 전후해 사이버의 폭로 시스템은 더욱 왕성하게 작동한다. 총선 공천심사를 앞둔 지난 3월, 우리당 실세 L씨의 개인 홈페이지에 영남지역 공천이 확정된 Y씨의 보이지 않는 이력과 관련 A4 용지 5장 분량의 제보가 전달됐다. 참여정부 초기 사이버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해 곤욕을 치른 L씨는 익명의 제보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Y씨의 얼굴만 보면 A4 용지에 적힌 ‘돈과 여자’ 문제가 떠올랐다고 고백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정연씨 병역비리 및 한인옥씨의 기양건설 불법자금 수수 등 3가지 의혹을 무마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당시 사이버 선거를 지휘했던 한 의원은 “한 개의 의혹을 해명하고 나면 다음날 두 개의 의혹이 추가로 제기된다”며 사이버 공간의 파괴력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당시 한 사람이 글을 써 인터넷에 올리고 이를 퍼 나르는 시스템이 한눈에 들어왔다”며 사이버 폭로의 메커니즘을 공개했다. 이 의원은 “결국 인터넷이 네거티브 선거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한 것은 대선 당시의 피해의식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불순한 의도 제어 시스템 없어 음모론 난무

여의도는 지금 인터넷에 멱살 잡혔다

8월 17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우리당 신기남 전 의장.

익명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은 불순한 의도를 제어할 시스템이 전무한 형편이다. 때문에 음모론적 문제제기가 줄을 잇는다. 최근 친일행적과 관련 우리당이 배후설을 제기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친일행적 공개와 관련 “친노에서 반노로 돌아선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며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면 증오가 깊어지고, 여권의 내부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집요하게 캘 수 있다”고 말해 최근 상황이 애증의 변주곡에서 출발했음을 시사했다. 정의원의 이런 발언은 곧바로 또 다른 사이버전으로 연결된다. 정의원 발언 직후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미경 부친의 친일행적 배경에 대한 역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친노에서 반노로 돌아선’이라는 정의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다가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딴살림을 차린 중진 H씨가 타깃으로 올라 곤욕을 치른 것. 이런 흐름에 대해 H씨 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여권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선친의 친일행적이 공개된 인사들이 모두 여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여권은 네티즌들의 폭로전으로 선출직 상임중앙위원 5명 중 2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더 큰 문제는 당 고위인사 서너 명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이버 보도가 여과 없이 흘러다니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야당 인사들의 친일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여권은 그 과정에 야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여당 인사들이나 그들의 선친들 행적을 꿰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과거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쥐고 있는 구여권 인사들이 내공을 발휘,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런 여당의 주장에 펄쩍 뛴다. 당 한 당직자는 “결국 과거를 캐면 그런 식의 족보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사를 사는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신기남과 이미경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말했다. 야당도 속이 편치 않다는 주장이다. 신기남 부친의 행적이 공개되자 “누가 누구를 단죄한단 말이냐”며 비판을 일삼던 한나라당은 이미경 고백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만큼 고민의 강도가 크다는 방증이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여권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인터넷을 달구는 폭로전 이면에 여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숨어 있다는 것. 26일 김성완 부대변인은 “부메랑인지, 판을 크게 벌이기 위해 고의로 희생양을 삼은 건지는 모르겠다”며 배경에 대한 의구심을 여권으로 돌렸다.

한나라당 한 초선의원이 제기하는 의혹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재선의 L의원이 이미 지난 6월부터 시민단체 등과 연계,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 및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기록과 자료 등을 정밀 분석할 경우 일제시기 행적은 물론 반민특위 와해 과정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 움직임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좌익문제를 화두로 등장시킨 것도 이 같은 여권의 움직임에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 80% 이상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여권 인사들 가운데 70% 이상이 좌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등의 말을 했다. 과거사 정국이 이슈로 등장할 경우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사이버 공간 ‘양극화의 길’ 분노의 목소리

친일규명과 좌익규명 등 네티즌들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네티즌들의 순수한 의도 뒤에는 정치적 대립과 이념의 양극화라는 사회현상이 자라잡고 있다. 노대통령과 출신 성분 및 정치적 성장과정이 비슷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여정을 보면 배경은 더욱 확연해진다. 클린턴을 위기로 몰아넣은 ‘지퍼게이트’를 처음 보도한 것은 드러지 리포트라는 황색 저널리즘이었다. 드러지 리포트는 ‘클린턴 죽이기’에 앞장선 신보수주의 인사의 후원을 받고 있음이 나중에 폭로됐다.

한국에서도 노대통령 집권 이후 여야 간 정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과정에 노대통령은 사이버 파워에 많은 빚을 지게 됐고, 이제는 반노 진영도 인터넷 파워에 주목하면서 사이버 공간마저 정치적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폭로가 진영을 달리해 여권 인사들에게 가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2002년 대선 당시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친노 대 반노의 대립구도를 바라보는 중도성향의 국민과 네티즌들의 분노의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대립보다 상생을 주장한다. 과거사를 규명하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합리적 방법을 요구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자정 기능은 강화되고 양극단을 오가는 대립각은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자정 기능이 발붙일 여건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여의도’는 사이버의 포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사이버 파워 앞에 움츠린 한국정치는 이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주간동아 451호 (p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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