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1

2004.09.09

‘과거사 정국’ GT계가 움직인다

김근태 장관과 밀접한 국민정치硏 인사들 바빠진 행보 … 이부영 의장 승계에도 숨은 역할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03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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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 정국’ GT계가 움직인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사퇴하고 이부영 의장 체제가 자리를 잡던 8월19일, ‘국민정치연구회(회장 장영달·이하 국정연)’가 긴급 회동을 했다. 당에서는 이에 대해 우연이 아닌 의도된 회동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고 그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날 모임의 명분은 ‘향후 모임의 운영방안에 관한 논의’였다. 그러나 ‘이의장 체제가 몰고 올 당내외의 역학 구도와 변화에 대한 탄력적 대응책을 모색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한 참석자는 “국정연이 9월 임시국회부터 주 1회 정기회동을 하고 회원을 늘리는 데 힘을 집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밝혀 정치적 해석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에 앞서 국정연은 신 전 의장 부친의 ‘일제 헌병 오장 경력’ 파문 직후 당내외에서 ‘이부영 불가론’이 터져나오자 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이의장 측에서 김근태(GT)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는 미확인된 설도 있지만 당내 뿌리가 약한 이의장의 순조로운 의장 승계 이면에는 국정연의 노력이 숨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의장으로서는 ‘빚’을 진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1970년과 80년대 재야 운동권 출신들이 결집한 이 모임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임채정, 이호웅, 김태홍, 한명숙 의원 등 중진의원과 문학진, 우상호, 윤호중, 오영식, 최규성, 정봉주, 이인영, 홍미영 의원 등 386 출신 초선의원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장관이 실질적 리더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혹은 증폭된다. “GT계가 움직인다”는 지적이 터져나오는 배경도 잠재적 대권주자인 ‘GT’의 존재 및 동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과연 GT계는 움직이는가.

    “GT계 목표는 내년 초 전당대회”

    당의 얼굴을 바꾼 8월20일을 전후해 GT계의 움직임을 주시했던 개혁파 소속 한 초선의원은 “과거 YS-DJ 시절 활발하게 움직였던 계보 정치가 부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어울려 밀어주고 당겨주는 듯한 분위기가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며 기회가 닿으면 국정연에 가입할 계획임을 털어놓았다. 초선의원 눈에 비친 GT계의 목표는 내년 초로 예정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새 지도부 구성과 관련해 GT 그룹이 횡으로 종으로 서로를 묶고 있는 것으로 본 것. 우리당 다른 한 관계자도 “GT 대망론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국정연의 움직임 이면에 정치적 배경이 숨어 있음을 은연중 시사했다. 그 와중에 GT는 최근 100명의 저명인사와 오찬모임을 하며 동선을 확대했다.



    원내대표 경선 당시 이해찬 현 총리를 밀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뒤 침묵과 관망으로 일관하던 GT계가 갑자기 ‘속도’를 낸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배경은 당지도부의 급격한 변화로 볼 수 있다. 당 관계자는 이부영 의장 체제 등장 및 신-천-정 체제의 위기를 첫 번째 요인으로 꼽는다. 사실 ‘신ㆍ천ㆍ정’ 체제는 청와대와 여권 전체의 신임 아래 당분간 독주체제를 형성했다. 특히 청와대는 참여정부 2기 국정과제와 개혁문제의 상당 부분을 ‘신ㆍ천ㆍ정’ 트리오의 활약에 기대를 건 것이 사실이었다. 이 구도가 과거사 족쇄에 묶여 위기를 맞았다. 신 전 의장은 의장직을 버리고 2선으로 후퇴했고, 주변의 다른 인사들도 과거사 의혹과 관련해 네티즌의 집요한 추적을 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 과거사 정국은 신ㆍ천ㆍ정 체제를 더 압박해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T 측은 김장관이 과거사 정국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음에 유의한다. 최근 나돌고 있는 인터넷의 마녀사냥식 폭로에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부담은 커진다. 특히 정치적 복선이 깔린 음모설에 휘말릴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GT계 인사들은 이의장과의 관계 설정에도 복잡한 방정식을 대입하고 있다. 이의장 체제는 필연적으로 당 운영방식과 역학구도의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GT계 한 관계자는 “이의장은 당내 소수파로 뿌리가 약하다”며 당권파보다 비당권파와 거리가 더 가깝다는 점을 들어 ‘GT와 이부영’ 연대론을 입에 올린다. 이 인사는 이의장이 그동안 당 운영방식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나라당 탈당파와 GT계가 정통 재야 출신이라는 점도 GT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반면 GT 측 인사들은 이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직계그룹과 신·천·정, 그리고 GT그룹 등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의장이 3그룹의 꼭지점에 위치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의장의 정치적 색깔과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독수리 5형제 일원으로 우리당에 입당한 한 중진은 “이의장이 섣부르게 특정인과 물밑 연대에 나설 것으론 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의장이 우리당 내부에 정치적 세가 없는 것이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장관 측이 이의장의 병풍을 맡고, 이의장은 김장관이 가고자 하는 길을 다듬어주는 ‘윈-윈’게임의 여지가 있다는 것.

    ‘GT-이부영’ 연대론 다각적 검토

    GT 측은 이의장의 구실에 대해 다각도로 짚어보는 분위기다. 정국이 정기국회 등 국회를 중심으로 돌아갈 경우 이의장이 당장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의장과의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초 새 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 때 이의장은 당내 각 세력의 경쟁을 조율할 위치에 선다.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저런 이유로 이의장을 보는 GT 측의 눈길이 뜨겁다.

    GT계의 이런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당권파의 경계심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특히 신ㆍ천ㆍ정 측 대응카드가 초미의 관심사다. 신 전 의장의 중도낙마로 기가 꺾인 주류 측은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조만간 전열을 개혁 대형으로 재정비해 주류로서의 위치를 사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신 전 의장의 한 측근은 “GT나 신ㆍ천ㆍ정이나 모두 가고자 하는 길은 같지 않느냐”며 내부 투쟁설을 경계했다. GT 측의 반응도 비슷하다. 국정연 장영달 회장은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가 정치권 화두로 떠올라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국정연 한 관계자는 “지금 파벌정치가 가능하겠느냐”며 장회장 해명에 힘을 싣는다. 그럼에도 GT는 과거사 정국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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