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1

2004.09.09

학교급식 우리 농산물 지원 길 트나

국무조정실, 학교급식지원 표준조례 발표 … 마지막 관문은 ‘학교급식법’ 개정 작업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9-03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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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급식 우리 농산물 지원 길 트나

    학교급식을 배식받고 있는 서울 금호여중 학생들.

    시장·도지사는 학교급식에 필요한 식품비 가운데 우리 농·축산물을 사용하는 경우 WTO(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

    3∼4년 전부터 꾸준하게 진행되어온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 사용 법제화 운동에 푸른 신호등이 켜졌다. 7월 말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학교급식 식품비지원에 관한 표준조례에 우리 농산물 구매 예산 지원 근거가 삽입됨으로써 학교급식운동은 ‘WTO 위반이다’ ‘아니다’라는 지루한 논쟁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됐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www.schoolbob.org, 이하 급식네트워크)를 주축으로 추진되고 있는 ‘우리농산물 학교급식운동’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먹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수입산 식재료보다 비싼 국산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게 국가 예산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품질 좋고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먹게 하는 동시에, ‘실신 상태’에 이른 국내 농업에도 생기를 불어넣자는 게 운동의 요지다.









    전체 칼로리 42.1% 수입에 의존

    현재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 가운데 수입산 식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1년 농촌경제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학교급식을 통해 공급받는 전체 칼로리 가운데 42.1%를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다. 식품류별로 보면 유지류(油脂類), 과실류, 채소류의 수입산 의존도가 높다. 특히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 각종 양념류는 100% 중국산으로 보면 된다는 게 정설로 통할 정도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요즘에는 네덜란드산(産) 돼지고기를 많이 사용한다”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교사용 음식에는 국내산을, 학생용 음식에는 수입산을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WTO 농업협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예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 정부는 농업협정이 허용하고 있는 농업보조금 가운데 ‘최소허용보조금’을 학교급식 지원에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소허용보조금은 전체 농산물 생산총액의 10%를 넘지 않는 규모에서 예산 지원을 허용하는 보조금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간 3조3000억원의 최소허용보조금을 쓸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보조금은 연간 500억원(2002년 기준)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연간 6000억원가량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학교급식 지원예산 규모는 ‘WTO 농업협정이 허용한 범위’ 안에 충분히 포함되는 셈이다. 천장이 워낙 높으니 마음껏 뛰어올라도 다칠 위험이 없는 것. 급식네트워크 이빈파 사무처장은 “사실상 WTO를 위반하지 않고도 무제한적으로 학교급식을 지원할 수 있는 셈”이라며 “문제는 정부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학교급식 지원 예산을 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에 대한 지원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온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의 해석은 다르다. 교육부는 WTO 조달협정을 근거로 들어 “국무조정실의 학교급식조례 갈등해소 방안은 사실상 지원을 금지하는 것”이라는 태도다.

    WTO 조달협정은 중앙정부의 경우 연간 2억1400만원,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연간 3억2900만원 한도 내에서만 우리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때문에 사실상 한 광역지자체당 몇 백개에 달하는 초·중·고등학교에 우리 농산물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 교육부 특수교육보건과 관계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워낙 낮기 때문에 학교급식을 지원하려면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럴 경우 WTO 회원국들과 분쟁이 벌어져도 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환경법과 식품법의 법률자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WTO 정부 조달협정은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 ’에 대해서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며 “이 조항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수입 식재료를 사용하는 학교급식으로 인한 집단 식중독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2003년 한 해에만 49개 학교에서 2621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했다. 2003년 전체 식중독 환자의 60%가 바로 학교급식을 먹은 학생들이었다.

    송변호사는 또한 “농업협정은 국내 농업 지지에 대한 허용 영역을 두고 있다”며 “학교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이 허용 영역 안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빈곤한 국민계층에 대한 국가의 식료 지원, 환경을 보전하는 농업에 대한 지원, 조건이 불리한 지역의 농업에 대한 지원 등의 조항을 학교급식 지원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는 학교급식 지원과 WTO 협정을 여전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외교부는 학교급식 지원 움직임이 일었던 2001년부터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지원하는 것은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와 WTO의 내국민대우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왔다. 최근 제정된 정부의 표준조례에 대해서도 외교부 세계무역기구과 관계자는 “상대국들이 분쟁을 제기할 소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교육·외교부에선 부정적 의견

    학교급식 우리 농산물 지원 길 트나

    4월2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교급식으로 인해 발생한 중·고교 집단 식중독 사태와 관련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학부모들.

    학교급식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사실상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농업보조금으로 인정하지 않을 소지가 있다는 것. 또 농업보조금으로 합치되는 경우 다른 조항들에 위배되더라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평화조항’이 지난해 말 만료됐다는 점도 우리 쪽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WTO는 예외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며 “상대국들이 과연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환경 보전, 생명과 건강 지키기를 위한 조치라고 이해해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급식네트워크 측은 “정부 조달협정에서 상대국들은 대개 학교급식에 대한 지원을 예외사항으로 규정해놓았다”며 “WTO는 상대주의를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자기 나라들도 시행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한다고 해서 시비 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97년 WTO 협상에서 미국은 ‘농무부에서 수행하는 농업지원프로그램이나 급식프로그램을 장려하기 위한 농산물 조달은 적용되지 않음’이라고 명시했다. 유럽공동체는 급식지원프로그램 장려를 위한 농산물을 예외로, 일본은 협동조합을 통한 조달을 예외로 명시했다. WTO 상대국들은 이미 자유롭게 학교급식에 자국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통상 협상에서는 상호주의가 통하지만, 협정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통하지 않는다”며 다시 한번 우리나라는 학교급식 지원에 대한 예외를 인정받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3조3000억원이라는 ‘WTO 농업협정이 허용하는 범위’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우리 농산물 사용에 예산을 지원하는 조항을 포함한 학교급식법 개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각각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교육부는 모두 WTO 위반을 염려해 ‘우리 농산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형편이다.

    특히 교육부 개정안은 ‘학교급식의 질을 향상시킨다’ ‘품질이 우수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사용한다’고만 명기해, 우리 농산물 사용 법제화와 거리가 멀다. 이에 이빈파 사무처장은 “우수 농산물이라고 할 경우 수입산 농산물 사용에도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셈”이라며 “정부의 표준조례처럼 학교급식법도 ‘우리 농산물’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WTO 협정을 위반하는지 여부는 오직 ‘WTO 분쟁기구’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표준조례 마련에도 교육부와 외교부는 ‘가상의 분쟁 상황’을 제시하면서 국민들의 학교급식 개선 요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송변호사는 “국제통상에 관한 조항을 적극적이고 자주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WTO 체제를 구실 삼아 농업의 정당한 소임을 배제하는 꼴이 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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