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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둘러싼 비리 의혹 ‘일파만파’

적십자사 복지부에 금품 상납 구체적 제보 … 제약사 ‘알부민 비자금’도 검찰 수사 대상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혈액 둘러싼 비리 의혹 ‘일파만파’

혈액 둘러싼 비리 의혹 ‘일파만파’

소문으로만 돌던 제약사와 대한적십자사, 적십자사와 보건복지부의 비리·유착 관계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부적격 혈액 유통’사건으로 시작된 검찰의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수사가 적십자사의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대한 금품 로비와 적십자사로부터 의약품 원료를 독점으로 공급받는 A제약사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주간동아’는 지난 1년간 적십자사의 부적격, 오염 혈액 유출로 인한 수혈사고를 모두 12차례에 걸쳐 ‘특종 보도’함으로써 적십자사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성시웅 부장검사)가 7월30일 발표한 부적격 혈액 유통사건 수사 결과는 감사원 감사와 적십자사 자체 조사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수혈사고에 따른 심각한 피해 상황에도 실무진 27명만을 불구속 기소함으로써 감독자인 적십자사 총재와 복지부 장관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 것. 더욱이 복지부 관료들은 아예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애초부터 ‘부실 수사’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적십자사의 복지부에 대한 로비설이나 적십자사로부터 의약품 원료를 독점으로 공급받는 A제약사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계속 제기돼온 문제였다(주간동아 430호 커버스토리 ‘주식회사 적십자’ 보도). 특히 혈액제제의 원료인 혈장을 독점 공급하는 적십자사와 이를 원료로 해 만든 알부민을 독점 판매해온 제약사 간의 유착관계는 이미 3차례에 걸쳐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모두 유야무야된 상태. 검경과 제약사, 적십자사 사이의 유착설이 퍼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신동아 2004년 5월호 ‘혈액장사 비판받는 적십자사’ 보도).

도자기 상자에 현금 2000만원 담아

수면 아래에 있던 소문이 수사 대상으로 떠오른 시점은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에 적십자사의 복지부에 대한 금품 상납과 관련한 제보가 들어온 8월 초부터. 복지부 금품 로비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8월23일 적십자사로부터 혈액 원료를 공급받는 A제약사의 전 대표 김모씨가 자신이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이 제약사의 전·현직 대표와 간부를 비자금 조성과 회사공금 유용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자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언론에 검찰의 수사 내용이 모두 공개된 시점도 바로 그때였다.



혈액 둘러싼 비리 의혹 ‘일파만파’

보건복지부의 관리들은 적십자사로부터 과연 돈을 받았을까.

서울남부지검에서 공개한 제보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99년 2월 어느 날, 적십자사의 혈액업무를 관리, 감독하던 복지부 해당 국장과 과장이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적십자사 혈장분획센터(장호원분획센터)를 방문해 적십자사 간부들과 점심을 먹고 가면서 도자기 상자에 든 현금 2000만원을 수수했다는 것. 장호원분획센터는 일반인의 헌혈을 통해 적십자사에 들어온 혈액(혈장)을 제약사로 보낼 알부민(혈액제제) 원료로 반(半)가공하는 곳. 이 원료를 받아 혈액제제를 만드는 제약사는 바로 A제약사와 B제약사 단 두 곳뿐이다. 이 두 곳은 적십자사 안에서도 현금을 가장 많이 만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혈액업무를 총괄 관리, 감독하는 복지부 관계자가 정규 감사도 없는 상황에서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아무래도 의아하다.

실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적십자사 직원은 “돈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복지부 관료들이 현금을 도자기 상자에 넣고 간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때 참석한 공무원이 적십자사 간부에게 (로비 자금을) 수표로 가져온 것을 힐책하자 그 간부는 주차장으로 나가 운전기사에게 근처 농협에서 현금으로 바꿔오라고 지시했다. 간부는 차 트렁크를 열어 도자기 박스를 보여주며 거기에 담아오라는 시늉을 했다. 점심을 먹고 떠날 때 윗사람(적십자사 측)이 운전기사에게 잘 배달하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직원은 당시 적십자사 간부와 복지부 관료들의 회식 장면을 지켜본 장본인으로 회식이 있었던 정확한 날짜만 빼고는 식당 이름과 장소,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며 사건 당일 주차장에 눈이 쌓여 있었다는 점도 기억하고 있었다.

혈액제제로 한 해 수백억 순이익

하지만 현재 의료계 관련 단체의 상근 간부로 자리를 옮긴 당시 복지부 국장은 “1999년 2월 그곳에 가 적십자사 간부들과 점심을 먹은 사실은 있지만 돈을 수수한 일은 절대 없다”며 부인했다. 일부 언론사는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복지부 간부를 잘못 지목하는 바람에 복지부의 현직 고위관계자에게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혈액 둘러싼 비리 의혹 ‘일파만파’

적십자사가 수혈용 혈액이 부족한데도, 군대의 집단 헌혈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제약사에 공급하는 혈장성분제제를 주로 군인들한테서 뽑아내기 때문이다.

99년 2월 무렵은 적십자사 노조가 알부민을 비롯한 모든 혈액제제의 생산·판매 권한을 제약사에서 적십자사로 가져오자며 강력한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이런 주장은 국회에서까지 받아들여졌다. 당시 이를 지지했던 민주당 소속의 한 의원은 “적십자사가 공급하는 반제품에 물만 부어 만든 혈액제제를 팔면서 제약사가 몇 배의 시세차익을 보게 할 이유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증언한다. 혈액제제만으로 한 해 수백억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던 해당 제약사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어찌 된 일인지 이런 분위기는 반전됐고, 적십자사는 지금까지도 제약사에 반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적십자사는 공짜로 얻은 국민들의 혈액으로 ‘혈액장사’를 하고, 제약사는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당시 적십자사 노조에서 활동했던 직원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당시 국회의원, 적십자사, 제약사의 유착관계가 빚어낸 당연한 귀착점”이라고 주장한다.

A제약사의 전 대표 김씨가 8월23일 서울남부지검에 제출한 알부민 비자금 사건도 적십자사와 제약사 간의 이런 독점적 계약 메커니즘에서 배태된 또 다른 ‘비리의 쌍둥이’다.

김씨는 고소장에서 “A제약사는 적십자사가 공급한 알부민 원액(혈장분획제제)을 물로 희석해 순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무자료 알부민 제제를 만들어 시중에 몰래 팔았다”며 “지난 20년 동안 A제약사의 전 사주 유씨가 이렇게 무자료 알부민을 만들어 팔아 빼돌린 돈이 44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김씨가 주장하는 A제약사의 비자금 조성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예를 들어 알부민 성분이 20g 함유된 100㎖ 알부민 혈액제제를 만들 경우, 알부민 성분이 90% 이상만 들어가면 되는 의약품 공전상의 규정을 악용해 18g만 넣은 것. 여기에서 남는 2g이 아홉 번만 모이면 100㎖ 알부민 혈액제제 한 병을 만들 수 있고, 1년으로 따져보면 총매출의 10%를 빼돌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김씨는 “무자료 알부민은 전 사장이었던 유씨의 통제 아래 극히 일부 판매직원에 의해 팔려나가 제약사 안에서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며 “알부민만으로 300억원의 매출(1998년 기준)을 올리고 그중 순이익이 120억원이나 됐던 탄탄한 회사가 부도 난 이유는 모두 유씨가 빼돌린 비자금으로 골프장을 짓다 IMF 사태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유씨가 사장 재임 시절,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비자금용 알부민을 생산, 판매했다는 A제약사 전·현직 간부의 진술서를 확보해 고소장에 첨부했다.

“이번만큼은…” 국민들 시선 집중

하지만 A제약사 측은 오히려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A제약사 측은 “고소를 한 김씨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되는 등 불미스럽게 회사를 떠난 뒤 회사를 계속 음해하고 있다”며 “순도를 낮추거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는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A제약사 측은 고소를 한 전 대표 김씨와 회사 측이 지루한 소송을 벌여온 점을 들어 자신들의 결백함을 호소하고 있다.

전 대표 김씨는 이런 사측의 주장에 대해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된 것은 최근 재판을 통해 모두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고, 당시 회사 측이 나에게 취한 모든 고소사건이 나를 회사에서 몰아냄으로써 비자금 조성과 공금 유용에 대한 증거를 없애기 위한 모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혈액 둘러싼 비리 의혹 ‘일파만파’

검찰의 적십자사 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직전, 국무회의에서 혈액 안전대책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 시민단체는 김장관을 적십자사 혈액 비리의 최고책임자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김장관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적십자사가 복지부에 뇌물을 주며 로비를 했다는 제보와 A제약사가 지난 20년 동안 400억원대의 비자금을 만들어 유용했다는 의혹은 우연히도 같은 날인 8월23일 언론에 폭로됐다. 때문에 언론은 마치 ‘A제약사가 축적한 비자금이 적십자사로 흘러 들어가 복지부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보도했다. 언론은 다음날부터 이를 별개의 사건으로 정정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성난 여론은 이미 이를 기정사실화한 뒤였다. 딱히 그 돈이 그 돈이 아니더라도 적십자사와 ‘갑과 을’ 관계로 묶여 있는 제약사가 적십자사에 로비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돈을 받은 적십자사가 자신들을 감독하는 복지부 관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냐는 것.

여기에서 가장 큰 의혹은 적십자사는 왜 전체 혈액제제 성분 중 90%만 알부민이 들어가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같은 가격으로 100%의 알부민을 수십년 동안 계속 공급해왔느냐는 것. 과연 복지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점도 의문으로 남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 의지다. ‘A제약사 비자금 의혹’과 ‘복지부 로비 사건’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자 검찰 수뇌부는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에 맡겨졌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이관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미 3차례나 A제약사 비리 의혹을 수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해 8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비자금 조성과 세금포탈 혐의로 올린 A제약사 전 사장 유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증거 불충분으로 두 차례나 기각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12월에는 공소 유지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참고인 중 한 사람이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선 특수2부가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 검찰은 물론 ‘철저 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더욱이 2000년 3월 이 사건을 최초로 수사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더 뜨거운 눈총을 받고 있다. 당시 과장이 ‘최규선 게이트’에 관련돼 미국으로 도피한 최성규 총경이었을 뿐 아니라, 마침 강남 C병원 수사 무마 청탁 등과 함께 최규선씨한테서 1억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을 당시가 최총경이 A제약사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을 무렵이었기 때문. 최총경은 A제약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26상자에 이르는 알부민의 생산과 판매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비자금 조성에 대한 관련 직원의 진술도 확보했지만, 전 사장인 유씨가 소환에 불응하자 유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지명 수배한 뒤 수사를 종결해버렸다. 특히 최총경은 A제약사처럼 적십자사로부터 혈장분획제제를 받아 알부민을 함께 생산하고 있는 B제약사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중에 B제약사는 수사에서 배제됐다. 경찰이 A제약사에 대해 다시 수사를 재개한 시점은 최총경이 미국 도피 중이던 지난해 8월, 수배 중이던 유씨가 우연찮게 체포된 이후였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에 대한 의지를 보이자 이번에는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과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을까. 혈액 안전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검찰청사를 향하고 있다.



주간동아 451호 (p42~44)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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