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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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홧김 준비 없이 결행 땐 심각한 ‘후유증’ … 재산분할·자녀양육 등 전문가 조언 반드시 구해야

  • 강지남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9-03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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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이혼이 흔한 시대다.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458쌍이 헤어졌고, 결혼한 부부 8쌍 중 1쌍이 재혼부부였다. 이와 동시에 이혼이 낳는 후유증과 각종 범죄 또한 일상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8월1일 야구선수 조성민씨가 별거하고 있던 아내 탤런트 최진실씨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돼 구설에 올랐지만, 정작 조씨를 입건한 서초경찰서의 한 형사는 “이혼문제로 싸우다 폭행을 휘두르는 일은 매주 서너 건씩 신고되는 흔한 일”이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에 앞서 7월15일 연쇄살인 용의자로 붙잡힌 유영철씨는 “교도소에서 이혼통고서를 받고 살인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이혼은 흔한 일이지만 이혼의 아픔을 건강하게 소화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건강하게 헤어지고, 제대로 재기하는 ‘이별의 기술’을 학습할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한 것이다.

    사소한 이유 덜컥 이혼 비일비재

    8월19일 A씨(45) 부부는 ‘5만원’ 때문에 씩씩대며 서울가정법원을 찾았다. 함께 꽃가게를 운영하는 이 부부는 이날 오전 수금문제로 부부싸움을 했다. 남편이 수금해온 돈이 장부에 적힌 액수보다 5만원 부족하자 아내는 남편에게 크게 화를 냈다. “더는 못 살겠다”는 이 부부를 진정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느라 진땀깨나 흘린 김요한 조사역(서울가정법원 가사상담실)은 “사소한 이유로 홧김에 이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재산을 어떻게 나눌 건지, 자녀 양육은 어떻게 할 건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욱하는 마음에 합의이혼서를 제출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이후 닥쳐올 후유증까지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준비 없는 이혼’은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낳는다. 특히 전업주부의 경우 빈곤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6년 전 남편이 작성해온 이혼서류에 무턱대고 도장을 찍은 B씨(여·44)는 현재 4000만원의 카드 빚을 진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혼할 때는 툭하면 바람 피우고 몇 개월씩 집을 비우는 남편이 지긋지긋해 헤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 40만∼50만원으로는 생활조차 어려웠고, 아이들은 등록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B씨는 최근에 와서야 전남편에게 양육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이혼했다가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며 “10명 중 한두 명만 ‘속시원하다’고 하지, 나머지는 후회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주변의 시선이나 헤어진 배우자에 대한 그리움, 불안한 미래 등으로 인해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이혼 관련 전문가들은 이혼에 앞서 득실에 관한 ‘대차대조표’를 짜보는 등 심사숙고해보고, 상담기관 등을 통해 부부문제에 대해 전문가 조언을 구하라고 충고한다.

    높은 이혼율을 낮추고, 각종 ‘이혼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사회의 노력도 활발하게 진행되는 추세다. 2003년 8월16일 문을 연 가사상담실은 8월13일 현재까지 총 1301건의 이혼문제에 대한 심리적·법률적 상담을 했다. 한편 가정법률상담소와 보건복지부는 ‘홧김이혼’ ‘충동이혼’을 막기 위해 재고(再考)의 기간을 갖는 이혼 숙려기간 의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여성계는 이혼 후 빈곤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이혼할 때 재산의 절반에 대해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한 민법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



    이혼한 남성도 심각한 좌절감

    이처럼 이혼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한 사회의 노력은 활발한 편이지만, 정작 이혼한 남성이 겪는 ‘이혼 후유증’은 사회적으로 방치되어 있다시피 하다. 조명애 상담위원은 “이혼남성들 중 심각한 좌절감에 빠져 직장이나 사업을 그만두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아내에 대한 원망이나 재결합에 대한 강한 욕구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이혼남성의 좌절감은 한편으로 극단의 폭력으로 표출된다. 이혼남성이 저지른 범행은 저녁뉴스의 단골소재가 된 지 오래다. 8월1일 조성민씨의 폭행사건 이후에 보도된 이혼남성의 범행만 살펴봐도 ‘전처 살해 후 자살’(8월3일), ‘재결합 요구 말리는 처제 흉기로 찔러’(8월3일), ‘이혼서류 작성 중인 아내 살해 기도’(8월10일), ‘전처 납치해 8일간 굶겨’(8월11일), ‘이혼 앙심 전처 살해’(8월14일) 등이 있었다.

    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이처럼 여성보다 남성이 더 심각한 ‘이혼 후유증’을 앓는 이유에 대해 충북대 박광배 교수(심리학과)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남성의 정신건강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아내에게 이혼요구를 받게 되면 자신을 매우 무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자존감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은 대개 경제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남성을 택합니다. 때문에 여성에게 배척당하는 것은 곧 자신이 사회적으로 무능하다는 결론인 셈입니다.

    남성들은 지배욕구가 강한 한편으로 아내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위로받고 싶은 유아적 동기가 내재해 있죠. 그만큼 ‘아내 상실’은 남성에게 커다란 위기입니다.”

    박교수는 이혼남성들이 심리적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헤어진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별일 아닌 외도나 폭력, 언어폭력이 아내에겐 큰 고통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전문가 상담 등을 통해 이혼 여부를 숙고하고, 이혼 후 상황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조명애 상담위원은 “이혼문제에만 너무 천착하지 말고 사업이나 직장생활에 충실하라”고 조언한다. 통계적으로도 직업이 있는 사람이 이혼 후유증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빠르다. 재결합을 위해서도 헤어진 아내와 자녀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제대로 사랑하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또 “자립하지 못한 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순 없다”고도 말했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이별을 배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대로 이별할 수 없다. 자립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를 멋지게 떠나보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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