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1

2004.09.09

‘A형 간염’ 나이 들수록 요주의

40대 0.6%, 50대 2%, 60대 4%로 치사율 상승 … 최근 청년층서 발병 급속 증가 ‘경계 경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9-03 1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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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영화배우 감우성씨가 영화 ‘알 포인트’ 촬영차 캄보디아 열대 밀림에서 여러 날을 보내다 급성 A형 간염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간은 한 번 망가지면 좀처럼 회복되기 어려운 것 같다”며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다.

    영화를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등 운동을 하며 몸을 단련해온 그였지만 열대지역의 전염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간은 재생력이 좋아 잘 먹고 쉬면 나아진다. 하지만 한 번 망가지면 완전히 회복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이번에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A형 간염의 위험은 비단 감우성씨만의 이야기가 아닐 뿐더러 더 이상 남의 나라 일도 아니다. 올 6월, 충남 공주에서는 식수원 오염 탓으로 추정되는 A형 간염 환자가 무려 63명이나 발생했다. 이는 월별 집계로는 최고치(2002년 6월 50명, 2003년 6월 27명)이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는 발병 환자의 80% 정도가 같은 식당을 이용했고, 식당 주인과 아들도 간염에 걸려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이 식당이 사용한 지하수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 규명작업에 들어갔다. 두 달간에 걸친 역학조사 결과, 원인은 역시 지하수 오염으로 밝혀졌다. 비록 지방 보건소에서 지하수를 소독하는 바람에 A형 간염 바이러스를 검출해낼 수는 없었지만 모든 변수에 대한 조사결과 지하수 오염밖에 원인이 없었다.

    이 식당이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의 수도관은 화장실 바로 옆에 있었다. 결국 A형 간염에 걸린 환자의 대변에서 묻어나온 간염 바이러스가 지하수를 오염시켰고, 그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해 식당 손님들이 A형 간염에 전염된 것이다.



    불결한 위생 오염된 식품이 주범

    ‘A형 간염’ 나이 들수록 요주의

    A형 간염 바이러스가 지하수로 옮겨지는 경로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 허영주 과장은 “지방의 유원지나 행락지의 식당들이 설거지 물과 식수에 지하수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지하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상수도를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A형 간염은 사람의 대변과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여건에서 만들어진 먹을거리가 전염의 주원인이다. 예를 들어 여름철 장마에 정화조가 넘쳐 대변이 하천이나 강으로 흘러가 물을 오염시킬 확률이 높다. 휴가철 오염된 계곡물에 과일을 담갔다가 깨끗한 물에 헹구지 않고 그냥 먹을 경우 A형 간염에 걸릴 수 있다.

    외국에서는 A형 간염에 걸린 주방장이 요리한 음식을 먹은 식당 손님들이 집단으로 A형 간염에 전염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1988년 초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익히지 않은 조개를 먹고 무려 30만명이 한꺼번에 급성 A형 간염에 감염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도 있었다.

    유·소아기 때 걸리면 보통 전형적인 간염 증상 없이 감기처럼 약간 아프다 말지만 청소년기 이후에는 복통, 구토, 설사, 황달 등 전형적인 간염 증세를 보인다. 면역력이 없는 40대 이후 성인층이 감염됐을 때는 증세가 심각할 수 있고, 50대 이후 노년기에 감염되면 사망률이 1.8%로 급증한다(A형 간염 평균 사망률은 0.4%대). 만성 B·C형 간염 환자가 A형에 중복 감염되면 치사율이 더욱 높아진다.

    A형 간염의 치사율은 20대의 경우 0.1%, 30대 0.3%, 40대 0.6%, 50대 2%, 60대 4%로, 나이가 들수록 높아진다. A형 간염으로 인한 무기력증을 앓는 기간도 30살은 4~6주인 데 비해 41살은 10주나 걸린다. 따라서 나이가 많을수록 A형 간염을 더욱 주의해야 한다.

    식사 전 손 깨끗이 씻는 습관 들여야

    ‘A형 간염’ 나이 들수록 요주의

    A형 간염을 예방하기 위한 바른 손씻기 방법.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우리나라 20, 30대 성인층에서 A형 간염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근래 우리나라 1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성인층에서 A형 간염 발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60, 70년대 낙후되고 위생 여건이 안 좋았던 시절을 겪었던 40대 이상은 어렸을 때 A형 간염을 앓아 90% 이상이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비교적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10~30대들은 면역력이 없기 때문이다.

    즉 위생 상태가 좋은 나라의 대다수 어린이들은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고 성장하다가 성인이 되어 A형 간염 바이러스와 접촉하면 바로 전염되는 것.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서도 올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236명의 A형 간염 환자 중 20대 환자가 122명으로 50%가 넘는 비율을 차지했다.

    A형 간염은 후진국에서는 누구나 앓아 별 문제가 되지 않다가 위생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는 점차 문제로 불거진다. 즉 우리나라에서 20, 30대의 A형 간염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A형 간염에도 일정한 주기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단 유행이 지나가 일정 연령의 청소년들이 모두 항체를 가지게 되면 5~10년간 조용했다가,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이 성장하면 다시 유행되기 시작하는 주기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A형 간염은 치료만 잘하면 B형이나 C형처럼 만성질환으로 악화되지 않고 2주 정도 지나면 낫는다.

    치료는 일단 안정을 취하고, 잘 먹고 충분히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드물지만 간염이 수개월간 지속되어 전격성 간염으로 악화되는 등 치명적일 수도 있다.

    A형 간염의 예방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먹지 말고,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85℃에서 1분간 끓이거나 물을 염소 처리하면 제거되므로 음식을 완전히 익혀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방백신 접종이다. 보통 6~1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면 약 수십 년간 면역력을 갖게 된다. 동남아시아 등 A형 간염 유행국가로 여행을 간다면 떠나기 10~16일 전에 1차 접종을 하면 충분하다.

    40대 이후 중·노년층과 B·C형 간염 환자도 A형 예방백신으로 사전에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간염 초기, 위장장애가 심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할 때는 단기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다. 회복 후 3개월 이상은 금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간에는 이로운 것 100가지를 하는 것보다 해로운 것 한 가지를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성분 미상의 생약, 녹즙, 민간요법 등의 남용은 간을 크게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도움말/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소화기내과 손주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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