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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I 함진의 ‘애완(愛玩)’展

나노미터의 로댕을 꿈꾸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나노미터의 로댕을 꿈꾸다

나노미터의 로댕을 꿈꾸다

애완, 2004, 사발면과 미니어처 설치 사진.

작가 함진(27)은 요샛말로 ‘나노’ 기술을 가진 작가다. 점토로 손톱만한 사람이나 동물을 만드는 데도 있을 건 다 있다. 눈 코 입과 성기는 물론이고 표정도 풍부하다. 그의 조각상은 눈물도 흘리고 피도 흘린다.

그는 이 ‘나노’ 인간 군상으로 대학 4학년 때 인사동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이 후원하는 첫 번째 작가로 뽑혔고, 단숨에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등 굵직굵직한 전시에 초대되었고, 만 3년을 꼬박 채운 입대 기간에도 휴가 때마다 나와 깨알만한 조각상들을 만들어 단체전에 냈다. 그의 조각들은 흰색 큐브가 아니라 전시장의 조명등이나 전기 코드, 문틀이나 벽 틈새 등에 파리만한 크기로 설치되어 단체전에서 가장 찾기 힘든 작품이지만 관람객들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 작품이었다. 또 가장 많이 분실되고 도난당하는 조각이기도 했다(작가도 그러려니 한다).

우아한 투피스 부대나 비싼 슈트 입은 컬렉터들은 이를 엄청나게 확대한 사진 작품에 만족할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이 작가, 바늘이나 이쑤시개로 얼굴을 만드는 그가 실물보다 더 큰 배율로 우람한 근육 인간을 만드는 작가 로댕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로댕 같은 근대 조각가들과 저는 주제나 아이디어, 만드는 방식이 똑같아요. 사람의 얼굴과 몸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죠. 사이즈만 다른 거예요.”



그러고 보니 함진이 만든 인물들의 뻥 뚫린 눈은 발자크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눈알이 있다면) ‘공허하면서도 신념에 차 직시하는 눈빛’이라 해야 할 것이다. 1cm 틈새를 돋보기를 들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인물들에서 빠진 듯한 눈알들이 포도송이처럼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상당히 끔찍하면서도 자극적인 이 조각물이 ‘자화상’이라고 한다.

“이런 조각 때문에 작가가 잔혹하다거나 무서운 사람이라고 의심하지 마세요. 그냥 재미예요. 아이들이 벌레를 갖고 놀다 다리나 날개를 떼는 건 잔인해서가 아니라 재미와 호기심이 생겨서 그래요. 저 역시 이런 걸 만들면 어떨까,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형태를 만들지요. 그래서 제게 작업은 놀이입니다. 그것이 전시 제목 ‘애완’이 뜻하는 바지요.”

그가 만든 ‘나노’ 세계의 인간들은 로댕의 인물상들이 그러하듯 사랑하고, 고통에 신음하며, 자유를 갈구한다. 죄를 지어 감옥에 있기도 하고 창살이 터지게 살찐 엉덩이가 되기도 하며 탈옥의 순간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처럼 행복해한다. 스톱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죽 늘어놓은 듯한 이 조각 작품들은 함진이 명백하게 만화와 영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임을 보여준다.

그는 “왜 조그만 조각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꽤 빠르게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빨리빨리 표현하고 빨리 끝낼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함진 세대의 뇌는 띠 만화(comic strip)나 영화에 적당한 구조임이 틀림없다.



그는 왜 조그만 조각을 좋아할까



나노미터의 로댕을 꿈꾸다

애완,2004, 몸 위의 미니어처 설치 사진.

나노미터의 로댕을 꿈꾸다

애완(러브, 셋), 2004, 파리와 미니어처 설치 사진.

인체에 대한 로댕적 영감과 만화적 상상력이 근접 조우한 작품은 확대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애완’과 ‘애완(러브, 셋)’이다. ‘애완’은 작가 함진의 배꼽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소년의 조각상으로 작가의 배꼽을 자궁 삼은 출산과 섹스의 이미지다.

조각가 제프 쿤스와 포르노스타 치치올리나의 유명한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애완(러브, 셋)’은 실제 파리와 꽃밭에서 섹스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뜨거운 키스 신으로 미루어 여자는 정말로 파리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노미터의 로댕을 꿈꾸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가 함진은 이야기를 짓고, 점토나 흙으로 1cm 크기의 세계를 만든다.

작가 함진이 나노의 사이즈로 자신의 코스모폴리탄을 만들게 된 까닭은 맞벌이였던 부모님 덕분에 어렸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때문이다. 그는 시골에서 혼자 눕거나 쭈그리고 않아 찰흙이나 점토로 사람을 만들고 구시렁구시렁 이야기를 지어냈다. 심심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긴 하지만, 잔혹하고 엽기적인 표현이 그 고독과 자폐의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그는 규율이나 간섭 없는 세계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말이 통하는 상대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인물은 머리에 핀이 박혀 빨간 매니큐어로 된 피도 흘리고 눈물도 흘리지만, 그것은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그가 잠시 맡은 역할이다. 작가, 즉 창조자란 고립을 대가로 그 사바세계에서 자유로우니 한 걸음 떨어져 본 세상은, 그저 재미있을 뿐이다



주간동아 451호 (p84~8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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