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1

..

격동의 현대사 생생한 육성 증언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4-09-03 10: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격동의 현대사 생생한 육성 증언
    “우리의 삶과 함께 지나온 역사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이제라도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과 경제관료, 금융인, 언론인으로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호당(湖堂) 신영길(辛永吉) 박사(사진)의 회고록 ‘신영길이 밝히는 역사현장’(지선당 펴냄)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우선 책 내용에 앞서 신박사의 다채로운 경력이 눈에 들어온다. 해방 후 짧은 경찰관 생활을 포함해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 행정고시 합격, 청와대 비서실을 거쳐 행정관료, 은행지점장, 야당 중진의 정치 보좌역에서 고서, 고지도 수집가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신박사의 인생은 미국 유학파 거물이었던 김우평(金佑枰, 외자처장·국회의원·부흥부 장관)의 정치담당 비서직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시작된다.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역사의 인물들을 현장에서 만난다. 신익희, 장면 선생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승만 진영에 찍혀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후유증으로 중장애인 신세까지 된다. 그 유명한 ‘못살겠다 갈아보자’ 구호도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때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민심을 정확히 읽어낸 이 구호는 두고두고 전 국민에게 회자된다.

    4·19 이후 그는 경제부처 공무원으로 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이 지상과제였던 그 시절 경제개발 국책업무 최일선에서 신바람나게 일에 매달린다. 그러나 과거 야당생활은 공무원 신영길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8년 만에 주택은행으로 자리를 옮긴다. 1980년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시절, 은행지점장인 보통사람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벌인다. 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김대중을 위해 구명 탄원서를 쓴 일이다. 뒷일은 거론 안 해도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신박사는 또 한국장서가협회 회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많은 책을 사 모으고, 희귀한 문화재 발굴과 해석을 통해 역사와 서지 연구에 크게 이바지했다.



    “나는 80평생을 오로지 앞만 보고 단숨에 달려왔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평생 정의라는 큰 주축을 붙들고 흔들림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과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청객 뇌졸중을 극복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의 끈기와 투지는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뛰어난 기억력과 꼼꼼한 메모 습관 덕분에 한 개인이 겪은 회고록을 넘어 숨가쁘게 달려왔던 대한민국의 작은 역사책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 생생한 육성 증언




    확대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