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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정몽헌의 유산

비극의 불씨 ‘현대비자금 사건’

검찰 강도 높은 수사 이후 정회장 가슴 아픈 결단…무리한 대북사업 후대 역사적 평가는?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비극의 불씨 ‘현대비자금 사건’

비극의 불씨 ‘현대비자금 사건’

퇴임 직전인 2003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왼쪽). 고 정몽헌 회장은 대북송금 수사에 심적인 고통을 느꼈다.

“모든 비극은 현대그룹의 무리한 대북사업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비극이 반드시 필연적이었을까….”

현대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사기록을 검토했던 한 변호인의 한탄이다. 실제로 2000년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불러온 파장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 만큼 거대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YS시대와 DJ시대를 가르는 사건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기록한다면, DJ시대와 노무현 시대를 구분 짓는 이정표로 ‘대북송금 특검’을 지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지만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안을 끝까지 거부했더라면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끝까지 고집해 특검은 이뤄졌겠지만, 만의 하나 2003년 초여름에 벌어진 ‘대북송금 특검’이 없었다면…. 무리해서 유추한다면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은 그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지만 그룹 해체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안전모를 뒤집어쓴 정몽헌 회장은 개성공단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대북사업의 결실을 고대하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정계개편 대신 17대 국회는 한나라당 민주당이라는 기존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몽헌’이라는 대북사업에 능통한 경영인이 사라졌고, 정치도 지형이 바뀐 게 오늘의 현실이다.



대북송금 특검서 드러난 비자금 ‘150억+α’

고 정몽헌 회장은 선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사업을 추진했고 그 지렛대로 남북정상회담에 모든 운명을 내맡겼다. 물론 나름의 사업구상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모험이었다. 2000년 당시 현대가 북한에 송금한 현금 4억 달러는 차후 현대가 대북사업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약받기 위한 투자였지만, 결과적으로 현대그룹에는 ‘독이 든 성배’였던 셈이다. 북한에 막대한 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권에 최대 1억 달러(약 1200억원)로까지 추정되는 현대비자금이 전달됐다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부분까지 예측하고 특검을 찬성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단지 의혹이 있는 사건이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된다는 원칙 때문에 찬성했겠지요.”

특검 수용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대북송금 특검이 현대비자금 ‘150억원+α’ 사건으로 확대되자 보인 반응이다. 그러나 특검의 대북송금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정회장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단적인 예로 특검 막바지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특검 연장반대론’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회장은 모든 과오에 대해 특검수사를 통한 정치적 타협을 기대했지만 수사가 서둘러 종결되면서 기대를 접어야 했다. 특검수사는 국민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5억 달러 비밀송금에 대한 수사발표로 흐지부지됐고, 특검 막바지에 터져나온 현대비자금 ‘150억원+α’ 사건은 대검 중수부로 이관돼 가뜩이나 ‘독’이 오른 검찰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는 여당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했고, 야당은 아예 특검수사를 관철해 검찰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게다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SK비자금 사건 역시 서울중앙지검에 방치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의 개혁칼날과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서 실추된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검찰은 강도 높은 사정을 필요로 했던 시점이었다.

현대비자금 사건 수사로 검찰은 큰 도약 발판 마련

특검에 파견됐던 3명의 검사가 검찰로 복귀한 뒤 검찰의 역공은 하나씩 빛을 발했다. 이윽고 150억원의 돈세탁을 주도한 무기거래상 김영완씨와 그가 별도로 관리한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검찰의 칼끝은 국민의 정부 최고 실력자였던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바로 겨눠졌다.

그러나 조사가 절정에 달한 2003년 8월4일, 정회장의 급작스러운 자살 이후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들었다. 결국 법원은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펼친 정황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을 제공했다는 당사자가 사라졌으니 아무리 돈을 전달했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이 있더라도 처벌이 쉽지 않았던 것. 결국 가장 혐의가 높았던 박 전 실장과 권 전 고문을 제외한 여타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결과야 어찌 됐건 현대비자금 사건이 검찰에는 커다란 도약의 계기가 됐다. 2000년 4·13 총선에서의 정경유착 고리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게 됐고, 결국 2002년 불법 대선자금까지 심층적으로 수사하게 됐기 때문이다.”(당시 대검 중수부 관계자)

실제로 현대비자금 사건을 수사하지 못했더라면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불가능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시 SK비자금 사건만으로는 강력한 사정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결과는 정계개편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강압수사와 플리바겐(증언대가 감형)이라는 일부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검찰은 단번에 국민의 검찰로 도약하기에 이르렀다.

대북송금 특검과 대검 중수부에서 현대비자금을 추적했던 K검사의 회고다.

“수사 검사들에게 도덕적 비난, 심지어는 역사적인 관점으로까지 질책한 사람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런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결국 검찰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다.”

과연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인한 정회장의 자살은 불가피했던 역사의 한 흐름일까, 아니면 막지 못해 사건을 키워버린 우리 역사의 오점일까.





주간동아 447호 (p20~21)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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