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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9월이여, 오라'

여전사, 세계화에 반기를 들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여전사, 세계화에 반기를 들다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변화는 놀라움 그 자체다.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딱정벌레, 기어다니는 곤충들, 무성한 녹음 같은 어찌 보면 사소한 것들을 충실하게 기록해 서정적인 소설로 만들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핵무기, 댐, 인도 정부, 세계화 같은 거대한 것들에 맞서 싸우는 ‘전사’로 바뀐 것이다. 날카로운 지성과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정치평론집 ‘9월이여, 오라’에서 변화 모습과 작가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1961년 케랄라 주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로이는 가난하고 계급 및 남녀 차별이 심한 환경에서 자랐고, 도시로 나와 고학으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후 건축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영화작가로 활동하다 30대 중반 인도 기층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전통의 압력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작은 것들의 신’으로 일약 유명작가가 됐다.

여전사, 세계화에 반기를 들다
1997년 이 작품으로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600만권이나 팔려나가는 성공을 맛봤다. 덕분에 1년간 세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길 바랐지만,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예전 생활은 짐을 싸들고 멀리’ 떠나버렸다. ‘나는 내가 우연하게도 이미 가진 자들 사이에 세계의 부를 순환시키고 있는 거대한 파이프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파이프에서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으로 돈이 쏟아져나오면서 내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나는 ‘작은 것들의 신’ 속의 모든 감정, 모든 작은 느낌이 모조리 은화로 교환돼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이 그처럼 황폐해져갈 때인 1999년 2월, 중부 인도의 나르마다강에서 반쯤 짓다 중단된 채로 4년째 법적 논란을 빚고 있던(한국의 새만금 방조제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사르다르 사로바르댐 사업이 재개된다는 뉴스를 접한다.

당시 대법원은 건설 중단 조치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고, 그것은 인도 독립투쟁 이래 가장 괄목할 만한 비폭력저항운동체인 ‘나르마다 바차오 안돌란(NBA)’에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그는 나르마다강 유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나르마다강 유역 개발계획은 세계에서 가장 야심적인 강 개발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계획에 따르면 나르마다강에는 3200개의 댐이 들어서는데 30개는 대형, 135개는 중형, 그리고 나머지는 소형이다. 그 결과 강과 41개의 지류들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가득 들어서 물의 계단이 만들어지며, 이로 인해 유역에 살고 있는 2500만명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강과 주변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주어진 통계가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통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도 정부는 댐 건설로 쫓겨나야 했던 사람들의 수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그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인도의 지식인 공동체도 용서받을 수 없다.” 로이는 개발계획에서 세계은행, 서양의 다국적기업,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인도 엘리트들이 만든 국제적 부패, 세계화의 덫을 보았다. 그리고 나르마다강에 의지해 자급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오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광경도 목격했다. 로이의 분노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자연스럽게 투쟁적인 작가로 바뀌었다. 인도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상상력의 종말’과 나르마다 계획의 재앙에 대한 글 ‘더 큰 공공선’을 발표하며 정치평론가를 자임했다. 그 대가로 인도 주류사회로부터 이제까지의 찬사와 존경 대신 비난과 냉대에 직면했지만 자신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여전사, 세계화에 반기를 들다
로이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들에게로 향해 있다. 지구상의 온갖 작은 것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어린이들, 민중들에게로 향해 있다. 그는 전쟁과 세계화로 인해 개인의 삶에서 신비와 행복, 우정이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고 개발과 발전의 이름으로 무수한 생명이 짓밟혀지는 것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그의 정치평론은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쉽고 시원시원하다. 상상력 넘치는 작가의 비유가 무릎을 치게 한다. “세계화란 소수의 사람들은 점점 더 밝게 비추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잠겨버리게 하는 빛 같은 것이지요. 또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을 미국의 문화, 음악, 문학, 숨막히게 아름다운 땅,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즐거움에 대한 비판으로 혼동하게 하는 것은 고의적이며, 극히 효과적인 (미국 정부의) 전략이지요.”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198쪽/ 7000원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86~8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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