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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공안이여 안녕!

공안의 몰락 “아, 옛날이여”

시대변화 국민들 외면 입지 축소 불가피 … 법 질서 수호 새로운 영역 찾아나서야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공안의 몰락 “아, 옛날이여”

공안의 몰락  “아, 옛날이여”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으니 공안검사가 움츠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한때 ‘공안통’으로 불렸던 한 현직 검사장의 고백이다. 공안 출신답게 ‘국민의 지지’라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해 공안부서의 절박한 처지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가 판단하는 공안부서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체제 안보’를 위해 칼을 휘둘렀지만, 권력은 우리의 힘을 ‘정권 안보’의 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공안(公安)검사. 말 그대로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를 일컫는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대공사건 △남북교류 △선거 △노사문제 △학원·시민단체 등이 공안검사의 주된 활동 영역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안부서는 검찰 동기 중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선택하는 이른바 ‘물 좋은’ 보직이었다. 일반 잡범이 아닌 시국사범을 주로 다루며, 정치권 실세들과 함께 국가 중대사를 논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권을 위협하던 시국사건을 처리한 경험을 거친 공안검사들은 검찰 고위직을 휩쓸었고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기회까지 제공받았다. 검찰 독립을 방해하는 ‘정치검사’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안보’가 무엇보다 중시된 현실에서 ‘공안’이란 딱지는 훈장에 가까웠다.



“공안부서의 몰락은 1998년 국민의 정부 탄생 이후 예고된 일이다. 안기부-공안검찰-경찰의 감시를 받던 야당과 노동계가 주류가 된 상황인데….”(재경지검 모 부장검사)

김영삼 정권 시절까지 승승장구하던 검찰 공안부는 김대중(DJ) 정권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이념시대의 피해자인 DJ에 의해 이른바 공안부의 ‘칼’ 노릇을 했던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개폐 논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DJ는 서경원씨 방북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소환된 전력까지 있었다. 이윽고 공안경력이 없는 참신한 인물로 공안부서를 채우는 ‘신(新)공안’의 물결이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공안부서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DJ와 악연이 있던 고위직만 내치고 조직은 그대로 놔뒀기 때문이다.

검찰, 시국사건 다뤄 승승장구 … 이젠 설 자리 없어져

기획부서와 공안부서를 두루 거친 한 중견검사는 “당시 최고의 공안통이었던 안강민(사시 8회), 최병국(사시 9회), 주선회(사시 10회) 검사장 등을 좌천시켰지만 차마 국보법에 손댈 수 없었기에 공안부는 손을 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신공안의 대표주자였던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은 공안부서가 존재하면 ‘만들어서라도’ 시국사건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와 국민의 정부의 검찰개혁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어떨까. 아직까지 검찰의 조직개편안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바 없지만 법무부는 대검 공안부서를 대대적으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천명해왔다.

참여정부 검찰인사의 잣대인 6월14일자 검찰 인사는 단일호봉제에 따른 지검-고검 교류, 경향(京鄕)교류, 부장급 평준화, 형사부 강화 등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신-구 공안의 전반적인 퇴조 현상.

먼저 공안부서의 야전사령관인 서울지검 오세헌 공안1부장이 사표를 제출해 충격을 줬다. 오부장은 특수·기획통이었지만 서울지검 공안부장에 발탁된 이른바 ‘신공안’의 계보를 잇는 인물. 그와 함께 공안통으로 불리던 서울중앙지검 최찬묵 총무부장도 사표를 냈다.

공안의 몰락  “아, 옛날이여”

2002년 9월 서울 경찰청 옥인동 보안수사대 앞에서 민가협 회원들이 ‘보안수사대 폐지’를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좌천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한때 검찰의 빅4에 속했던 대검 홍경식 전 공안부장은 의정부지검장으로 전보됐고, 대표적인 공안검사인 서울지검 박만 1차장은 검사장 승진에 실패했다. 게다가 대검 공안부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3과장(공안 담당) 등에 비(非)공안 출신들이 입성해 공안통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홍경식-박만-오세헌으로 이어지는 검찰 공안 라인은 송두율 교수 구속문제와 촛불집회 관련자 체포영장 청구 등 일련의 사건으로 참여정부와 직접적인 마찰을 빚은 부서라는 점.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송교수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 해도 처벌할 수 있겠느냐”며 처벌 불가 의사를 피력했지만 검찰은 송교수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 심지어 15년형을 구형해 정권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공안검사들은 “송두율을 처벌할 수 없다면 공안부서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버텼다는 후문이다. 역설적으로 송교수를 처벌함과 동시에 검찰 공안부의 존립 근거 역시 사라진 셈이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시대 변화를 받아들여 공안부가 새로운 영역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관리와 대공 편향성에서 벗어나 대(對)테러 활동이나 집단민원사태 해결 등으로 업무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 같은 분야는 기존의 형사부서에서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안부가 없어도 된다는 고위층의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공안부서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아온 경찰의 상황은 어떨까. 경찰의 보안 역시 검찰 공안부서의 축소 방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담당인력의 대폭적인 감축이 예상된다. 현재 경찰의 보안과나 보안수사대에 배치된 수사 인력은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수사는 주로 국보법 위반사범에 편중돼 있는데,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범의 수는 1998년 389명, 2000년 128명, 2003년 84명으로 현격하게 줄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경찰의 보안수사 인력은 1998년 4188명에서 현재 3000여명으로 25% 정도 줄었을 뿐이다.

담당부서가 존재한다면 실적 올리기 경쟁은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 경찰 보안수사 임무는 지나칠 정도의 과잉 인력으로 마구잡이 수사나 인권유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03년 11월9일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를 보안수사대가 무리하게 체포하자 민주노총은 6월4일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보안수사대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수대와 화염병 투척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에 대해 광범위한 탐문수사를 진행하고 무리한 강압수사를 자행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안의 몰락  “아, 옛날이여”

서울 동대문구 장안3동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대다수 공안검사들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안보의식을 걱정하고 있다.

“국보법 위반사범이 급격히 줄어들자 경찰 보안수사대가 노동자 집회 관련 수사로 관심을 옮겼다. 문제는 불법시위 참가자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화염병 사용과 관계없는 노동자까지 무분별하게 잡아들이고 밀실에서 위협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송소연 총무)

한편 ‘인권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보안분실은 폐지 1순위로 꼽힌다. 2002년 경찰청이 밝힌 전국보안수사대 현황을 보면 경찰청 6곳, 서울지방경찰청 3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44곳에 달한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쭛쭛상사’ ‘××실업’ 등의 이름으로 위장된 밀실에서 지금도 강압적인 수사가 자행된다”며 “과거 독재정권의 잔재가 경찰에 아직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 국보법 위반 검거 가치관 갈등 … 인력 조정 기미

사실 정권교체 이후 경찰 내부에서는 보안부서 기능에 대한 논란이 일어왔다. 업무량과 조직 내 중요성의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보안과에 근무하는 한 경찰은 “끊임없이 배당사건이 떨어지는 형사과에 비해 사건을 기획해야 하는 보안과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업무 조정이 자유롭다”며 “일이 편해 심지어는 인사 청탁을 통해 일부러 보안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보안과나 보안수사대에 근무하는 경찰들 사이에서는 국보법 위반사범의 검거를 두고 가치관의 갈등을 빚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얼마 전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한 고등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김일성 찬양 글’이 대표적 사례. 장난기 넘친 게재 의도를 파악한 젊은 경찰들은 훈방을 주장했지만 고참 경찰들은 “일단 잡아들여 실적이나 올리자”는 반응을 보인 것. 이는 조직이 존재한다면 어쩔 수 없이 실적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공안-보안 부서의 생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대내외적인 보안수사 인력의 축소 요구에 대한 경찰의 생각은 무엇일까. 경찰청 김병준 보안국장은 “아직 의견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답변을 거절했다. 다만 올해 초 경찰은 경찰청과 각 지방경찰청의 보안과 소속 경찰을 10% 정도 줄이고, 생활안전과 등 대민부서의 인력을 늘려 변화의 기미를 엿보였을 뿐이다. 단지 과거 경찰 고위직을 주름잡았던 ‘보안통’들이 최근엔 요직에서 멀어져 있다는 점만이 검찰과 공통된 현상이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경찰 업무는 검찰과 달리 범죄 예방의 성격이 강해 수사 인력을 대폭 줄이기 어려우나 조직 개편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대변화에 따라 경찰 보안과도 산업 스파이를 검거하거나 불법체류자 범죄단속에 나서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쇄신론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과거 검찰과 경찰이 ‘좌익’으로 규정했던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이하 민통련)의 조직원이 국무총리로 지명된 시대에 경찰 보안과 조직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라는 목소리도 은근히 흘러나오고 있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국민의식이나 북한에 대한 인식 등 공안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며 “공안이라고 외곬으로만 있을 수 없으나 국가의 기본을 지키고 법 질서를 수호하는 일은 검찰의 기본 임무”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안보와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공안검찰과 경찰 보안과는 어떤 변화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40~42)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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