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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 기업도시 추진은 보험용?

삼성 아산, LG 파주에 대규모 투자 예정 … 부동산 개발로 ‘만일의 사태’ 대비 주장도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LCD 기업도시 추진은 보험용?

LCD 기업도시 추진은 보험용?

삼성이 이미 조성 중인 충남 아산시의 1차 지방산업단지 전경

“LG 파주는 삼성 아산과 다릅니다. 우리는 일단 기업도시라는 말 자체를 쓴 적이 없어요. 구조도 전혀 다른데 같이 놓고 비교하면 안 되죠.”

요즘 LG그룹 관계자를 만나면 곧잘 듣게 되는 말이다. 삼성전자가 추진하고 있는 충남 아산의 ‘삼성기업도시’가 논란이 되자, LG필립스LCD㈜의 경기 파주산업단지는 아무 문제 없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이러한 LG의 주장은 맞으면서 한편으로는 틀리다. LG가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사실상 기업도시의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 반면, 삼성은 제도적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기업이 직접 수용·개발하는 방식의 명실상부한 기업도시 건설을 추진한 것이 사실. 그러나 양쪽 다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생산라인 중심의 대규모 산업단지를, 그것도 신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수도권 지역에 건설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두 회사가 세계 LCD산업에서 1, 2위를 다투는 경쟁자이기에 일어난 일이다. 월등한 1등이 ‘모두’를 갖는 게 LCD산업의 특성. 그런 만큼 투자 규모, 사업 여건, 위험 관리에서도 상대보다 뒤떨어져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요즘 재계에는 LG가 외국인 투자사라는 이유로 국내 기업엔 금지된 수도권 내 산업단지 조성에 성공하자, 삼성 또한 그 못지않은 효과를 기대할 만한 ‘베팅’을 한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LCD 기업도시 추진은 보험용?

아산시 탕정면 주민들로 구성된 ‘삼성공단 반대투쟁위원회’의 사무실.

기업과 편의시설 갖춘 자족도시



기업도시란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여기 더해 주택·교육·의료시설 및 각종 생활 편의시설까지 고루 갖춘 일종의 자족도시를 말한다. 문제는 이럴 경우 토지 수용권을 가진 기업이 개발이익을 독식하게 된다는 것. 게다가 재계는 낙후지역이 아닌 수도권 내 도시 건설을 주장하고 있어, 관련 부처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기업도시 건설에 관한 운을 처음 뗀 곳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다. 지난해 10월 전경련은 집값 안정과 경기 진작,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며 1000만평(여의도 12배 크기) 규모의 기업도시 건설을 제안했다. 올 2월에는 기업도시 건설을 전경련의 핵심과제로 삼는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한 달 후 전경련은 한 발 더 나아가 “기업도시추진위를 구성하되, 수도권도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얼마 안 있어 삼성전자가 사실상의 수도권이자 신도시개발지역인 아산시 탕정면 일대에 총 160여만평(1차 61만평, 2차 98만평)의 LCD 라인 중심 기업도시를 개발키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계획의 핵심은 해당 지역의 35%에 이르는 주거용지 및 상업용지에 아파트 1만1000여 가구를 건설해 임직원·협력업체·일반인 등에 분양하고, 자립형사립고를 포함한 초·중·고 9곳 등을 건설하겠다는 것. 고급 연구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수준’에 맞는 배후시설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명분이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전경련을 앞세워 분위기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지방자치단체장 등과 함께 해외시찰도 다녀왔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경련의 기업도시 띄우기는 삼성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던 셈이다.

LCD 기업도시 추진은 보험용?

3월18일 LG필립스LCD 파주공장 및 산업단지 기공식에서 고건 당시 대통령권한대행, 손학규 경기지사, 구본무 LG 회장 등이 기념 발파를 하고 있다.

기업도시가 주목받으면서 LG필립스LCD가 파주시 월롱면 일대에 조성하고 있는 대규모 산업단지에도 여론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지난 3월18일 착공한 50만평 규모의 ‘파주 초박막 액정표시장치 단지’다. LG필립스는 이곳에 10년간 25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그 곁에는 따로 협력업체 단지 50만평이 조성되며, 한편으로는 파주 신도시계획에 따라 사실상 LCD 단지의 배후가 되어줄 공공시설물 또한 비슷한 규모로 들어서게 된다.

LG 단지가 밖으로 큰 소란 없이 조용히 진행된 데 반해 삼성기업도시 계획은 지역민의 격렬한 반대와 비판적 여론에 직면했다. 지역민들로 구성된 ‘삼성공단반대투쟁위원회’는 “삼성이 우리집과 농토를 헐값에 매수해 신도시 핵심부를 차지하고 엄청난 개발이익을 독식하려 한다”며 충남도청 앞 1인 시위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개발이익 독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잇따랐다. 삼성전자가 2월 충남도에 제출한 산업단지 지정 요청서에 따르면, 국고 지원액 5502억원을 뺀 삼성의 직접 부담 개발비는 9173억원에 불과하다. 지역민에 대한 보상액으로는 2960억원을 책정해, 토지 수용비 또한 평당 20만원 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현재의 시세를 기준으로 해도 최소 1조원의 개발이익이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삼성 측 이익이 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학교,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은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며 조성비도 큰 폭으로 오를 것이 예상돼 개발이익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법적 문제도 제기됐다. 사실상 신도시개발 계획인데도 ‘산업입지에 관한 법률’(이하 산입법)을 적용받으려 한다는 것. 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이하 동북아위)는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등 이미 법 정비가 완료된 낙후 지역을 놔두고 웬 수도권이냐”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안 그래도 특혜 의혹이 부담스러웠던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는 “산입법에 의해 조성된 단지 내에 민간이 아파트를 지어 일반 분양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삼성 측에 계획의 큰 폭 축소를 종용했다. 결국 6월12일 충남도는 삼성의 2차 단지 조성 규모를 원래 신청한 98만평에서 63만9000평으로 축소, 확정한다고 공고했다.

‘낙후 지역 놔두고 웬 수도권이냐”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삼성과 LG가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신도시 개발지구에 단지를 조성하려는 것은 투자위험 관리를 위해서다. LCD산업은 매우 유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공급 과잉 얘기가 나올 만큼 위험부담이 큰 사업이다. 대규모 투자 후 찾아올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노른자위 땅으로 ‘보험’을 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북아위 고위 인사도 “부동산 가치로만 따지면 파주가 오히려 아산을 앞지른다. 두 회사가 그저 순수히 공장 세울 땅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 같은 ‘무리’를 하고 있다고 믿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는 “로비가 많았던 걸로 안다. 그 때문에 대통령도 ‘왜 이리 시끄럽냐’고 했고, 건교부 담당자의 브리핑을 듣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기업도시가 아주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건설경기 진작을 통한 지역균형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경제 살리기 비책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 건설뿐 아니라 200여 공공기관 분산 이전을 위한 20여개의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처음부터 기업도시 개발에 긍정적이던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6월10일 “기업신도시로 건설 수요를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청와대는 건교부 장관에게 6월 들어 두 차례에 걸쳐 “건설 경기 진작책과 지방균형 발전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이 지방신도시와 기업도시 건설인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초기에 전경련이 너무 호들갑을 떤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이건희 회장이 최근 ‘다시 잘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한 만큼 우리도 그냥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교부 고위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예를 들면 외양은 최종 확정된 형태로 가되, 실제로는 건교부가 주택공사를 통해 택지를 조성한 뒤 이를 삼성에 배후 시설 건설 용도로 특별분양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LG 파주단지와 비슷한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기업도시의 원형이 된 ‘혁신 클러스터’를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핵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한 경제학자는 “내 행동을 후회한다. 기업의 부동산 개발을 돕는 클러스터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전경련이 기업도시의 모범사례로 드는 도요타 시티만 해도 조성에 2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것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준 것이 아니라 주체 간 협력을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또 “백보 양보해 기업도시가 필요하다 해도 입지는 수도권이 아닌 전라·경상도의 낙후 지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36~37)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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