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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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보내줄게 미국 가지 말라” 회유

탈북자 A씨 국정원서 강력 만류 … 마약제조·위조달러 등 美·日서 더 관심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06-17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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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보내줄게 미국 가지 말라” 회유

    미 의회에서 북한의 생체실험과 필로폰·위조달러 제조 등에 대해 증언하려다 모 기관의 회유로 미국 방문이 좌절된 A씨.

    기자는 ‘주간동아’ 지난 호 위클리 란을 통해 ‘생체실험·마약제조 탈북자의 출국 막은 까닭은…’이라는 제목으로 미 의회에서 김정일 정권의 인권 유린을 증언하기 위해 출국하려던 탈북자 A씨가 출국하지 못한 사연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하나 틀린 게 있다. 기자는 “A씨는 여권 분실신고를 낸 적이 없는데 관계기관이 ‘분실신고된 여권’이라며 A씨의 출국을 막았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난 5월 A씨는 직접 서울 송파구청 여권과에 여권 분실신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왜 이런 오보를 내게 되었는가. A씨의 출국을 이틀 앞둔 6월3일 기자는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미국 비자가 붙어 있는 A씨의 단수여권을 보았고, 이 여권을 그가 계속 갖고 있었기 때문에 분실신고됐다는 관계당국의 주장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A씨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자신을 소개해줘 생체실험 기사가 나오게 한 한국계 미국인 B씨의 주선으로 미국에 가기 위해 2월28일 단수여권을 발급받고 B씨가 가져온 초청장을 첨부해 주한 미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다. 그러나 미 대사관은 비자 발급을 보류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비자를 신청하기로 한 날 두 사람을 함께 만났을 때 A씨는 “모 기관에서 여권을 달라고 해서 주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B씨가 “왜 기관에서 개인의 여권을 달라고 하느냐. 문제를 삼겠다”고 화를 냈는데 이후 모 기관은 A씨에게 여권을 돌려주었다. 이에 대해 모 기관 관계자는 “A씨가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또 언론에서 떠들면 문제가 될 것 같아 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기자는 A씨의 출국 실패에는 모 기관의 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제 발로 여권 분실신고 후 거짓말



    그런데 A씨는 B씨와 기자 몰래 송파구청에 여권 분실신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내 욕심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하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A씨는 북한에 있을 때 1남1녀의 아버지였다. 한국에 온 뒤 그의 딸도 탈북에 성공했다(2002~2003년쯤, 정확한 시기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 무렵 A씨는 모 기관의 대북공작에 참여, 잘 알고 지내던 조선족으로 하여금 북한에 들어가 북한군 미사일에 관한 문건을 빼내오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두 번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오기 전 장기간 중국에 머물렀던 A씨는 당시 위조 중국여권을 만드는 조선족에게 몸을 의탁했는데, 이때 그의 누이와 가까워졌다. 얼마 뒤 A씨는 여기서 만든 위조 여권으로 중국을 떠나 제3국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그곳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이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A씨는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중국에 가게 된 사실을 무척 좋아했다. 탈북한 딸과 신세 진 조선족 여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중국에 간 그는 공작 임무를 하는 한편으로 딸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놓고 조선족 여성도 만났다. 그런데 두 번째 중국 방문을 하고 돌아오자 모 기관이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 보내줄게 미국 가지 말라” 회유

    미국비자.

    A씨는 “당시 나는 1만 달러를 주면 조선족으로 하여금 북한군 미사일 문건을 빼내오겠다고 했는데, 모 기관 측이 내가 딸을 만나거나 조선족 여성을 만나는 데 그 돈을 사용할 것으로 의심했다”라고 말했다. 그후 공작은 중단됐고, A씨는 더 이상 중국에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1년 가까이가 지난 올해 초 A씨는 B씨를 만나 미국행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비자 발급을 1차 거부했던 미대사관에서 4월1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 A씨는 바로 미국에 가지 않았는데 이유를 묻자 “모 기관이 자꾸 가지 말라고 해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B씨는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에 나와 A씨를 설득했고 이에 A씨는 미국행 의지를 거의 굳혔다. 이때 단수여권으로 중국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모 기관은 그에게 “중국 비자를 받기 쉬운 복수여권을 내줄 테니 미국행을 포기하라”고 회유했다.

    마음이 다시 크게 흔들린 A씨는 B씨가 비행기표를 마련하는 사이 송파구청을 찾아가 단수여권 분실신고를 내놓고 입을 닫았던 것이다.
    “중국 보내줄게 미국 가지 말라” 회유

    A씨에게 발급된 단수여권

    이에 대해 A씨는 “중국에는 가고 싶고 B씨를 봐서 미국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이중행동을 했다. 분실신고를 했더라도 여권만 있으면 미국에 갈 수 있을 것으로 편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바보짓이었다. 매우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반면 모 기관 측은 “A씨는 조선족 여성을 불러들여 결혼할 뜻을 비쳤다. 우리는 A씨가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다”며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필로폰 만들어 팔았다” 주장

    A씨는 그러나 “복수여권을 신청한다고 할 때 여권 신청 목적란에 ‘탈북자인 딸을 만나러 중국에 간다’라고 쓸 수는 없으므로 결혼으로 쓰겠다고 했다. 그들은 그것을 갖고 그런 주장을 한다. 그들은 또 ‘우리 민족 문제는 우리끼리 논의해야지 왜 외국에 가서 떠들어야 하는가’라며 열심히 회유했다. 관계자와 대질을 시켜주면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까지가 A씨의 미국행이 좌절되기까지의 자초지종이다. 그렇다면 A씨는 어떤 정보를 갖고 있기에 모 기관은 A씨의 미국행을 막으려고 그렇게 회유한 것일까. 첫째는 생체실험 부분이다.

    A씨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통해 북한의 생체실험을 폭로한 후 모 기관은 전문가를 대동하고 R호텔에서 A씨를 만나 무려 10시간 동안 디브리핑(debriefing·비밀 진술을 듣는 것)을 했다. 이 디브리핑은 A씨의 주장 중에서 거짓을 찾아내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던 것 같다. 관계자의 말이다.

    “디브리핑 때 A씨는 청산가리로 독가스를 만들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 쪽 화학자들은 ‘청산가리는 기화(氣化)가 잘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독가스를 만들 수 있느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나 A씨가 워낙 완강히 주장했고 A씨가 기억하는 성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어, A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A씨가 갖고 있는 두 번째 정보는 마약 부분. A씨의 말이다.

    “중국 보내줄게 미국 가지 말라” 회유

    A씨의 미국 증언을 위해 노력해온 한국계 미국인 B씨.

    “98년 초 북한 과학원 함흥분원장은 유쫛순이었고 나는 △△연구소 소장이었다. 당시 우리 연구소에는 북한에서는 두 대밖에 없다는 고속회전분상기가 있었다. 그런데 유쫛순이 이를 빌려달라고 해 주었더니 500g짜리 필로폰이 든 병 두 개를 대가로 보내주었다. 북한에서는 제2경제위원회가 군수물자의 해외수출 등을 담당한다. 나는 필로폰을 제2경제위 3총국에 있는 동무에게 병당 80만 달러에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판매금의 40%를 가졌고, 그가 60%를 가졌다. 북한 지배층은 이렇게 하기 때문에 인민은 굶주려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아편이나 필로폰을 제조해 국제사회에 돌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에 대해 모 기관 관계자는 “A씨가 말하는 마약 건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사실이 아닐 수 있는가”란 질문에는 말끝을 흐리며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세 번째는 위조달러 부분인데 A씨는 이렇게 말했다.

    “84년 나는 북한 중앙당 간부와 장령(장성)의 신분증을 만드는 일을 했다. 북한에서는 신분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위조를 하지 못하도록 특수하게 만든다. 그 무렵 중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이 나를 포함한 전국의 인쇄 전문가를 모아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만들게 했다. 화폐 종이는 홍콩에서, 물감(잉크)은 일본에서 도입했다. 그러나 ‘오(誤)돈’이 너무 많이 나와 이 사업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리고 89년 다시 위조달러 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진짜 돈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위폐를 만들었다. 무역일꾼들은 이 위폐를 진폐와 섞어 감별 능력이 떨어지는 동남아 쪽으로 갖고 나가 사용했다.”

    “어디든 달려가 실상 알릴 터”

    미국은 초정밀 위조달러의 유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A씨의 증언은 충격적인데 모 기관 측은 A씨의 증언이 사실무근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초 A씨는 우리에게 ‘이것이 북한에서 만든 위폐’라며 100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하여금 정밀 감식케 했는데 진폐로 밝혀졌다. 그제야 A씨는 ‘그 돈은 일본 산케이 신문과 인터뷰하고 받은 것 중의 하나인데, 환전하기 위해 농협에 가져갔더니 유독 그 지폐만 위폐감별기에 걸려 튀어나왔다. 그래서 북한에서 만든 위폐일 것으로 생각하고 가져왔다’라고 발뺌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과장하는 습성이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나는 탈북 후 중국에서 지낼 때 위조 달러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내 말을 믿지 않아 북한산 위폐를 보여주려다 그런 실수를 했다. 모 기관은 소영웅주의적인 내 실수를 근거로 내게 ‘위조달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하고 그 모습을 비디오로 찍었다. 그러나 모 기관이 뭐라고 하든 나는 위조달러 제작에 참여한 사실이 있다”라고 말했다.

    생체실험과 마약, 위폐 문제와 관련해 A씨와 모 기관은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A씨에게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4월과 6월 A씨는 한국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부대인 미 육군 정보사(INSCOM) 산하 501 정보여단의 524 정보대대 팀을 만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았다. 기자는 이 대대 소속 H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한국어로 이뤄진 통화에서 H씨는 ‘501 정보여단 소속이다’는 것과 ‘A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은 시인했으나,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도 A씨에 대해 관심이 많다. 주한 일본대사관 정치과에는 북한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O씨 등이 있다. 이들은 주한 일본특파원들에게 종종 “누구를 만나면 북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덕분에 산케이 신문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보다 먼저 A씨를 만나 생체실험 등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한국·미국·일본의 정보기관과 미국·일본의 언론은 일찌감치 A씨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는데, 한국 언론만 A씨의 존재와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그토록 애태우던 딸이 최근 제3국으로 빠져나와 난민 판정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제 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므로 나는 미국이든 어디든 달려가 북한의 적나라한 실상을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A씨가 미국 의회에 나가 위조달러 등에 관해 진술한다면 세계 언론은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모 기관은 왜 그렇게 열심히 A씨를 회유했을까. A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 기관의 A씨에 대한 판단이 틀린 것일까. 진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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