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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운동권 전성시대

문화계에 운동권 바람 거세다

영화·연극·출판 등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 … 문화 관련 단체장에도 상당수 진입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문화계에 운동권 바람 거세다

문화계에 운동권 바람 거세다

열혈 ‘운동권’ 출신으로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한 문소리, 박찬욱, 봉준호씨(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민주노동당원들이 국제무대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대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박감독뿐 아니라 ‘살인의 추억’으로 2003년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오아시스’와 ‘바람난 가족’으로 2002년 베니스 영화제, 2003년 스톡홀름 영화제에서 각각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배우 문소리씨 등도 민노당원이니 과장된 말은 아니다.

게다가 박감독은 2002년 대선 당시 민노당 홍보 CF에 출연했을 뿐 아니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이 일어났을 때 앞장서 삭발을 했을 만큼 열성적인 민노당원이고, 봉감독과 문씨는 대학시절부터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에 관심을 기울여온 운동권이기도 하다. 이들의 부상은 한국영화의 중심에 민노당이, 더 나아가 운동권이 확실히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영화 분야 외에도 문화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운동권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들의 창조성과 자유로움이 이 분야의 분위기와 어울리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시절 감옥에 드나드느라 취업과 사회 활동에서 불이익을 받자 ‘현장에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문화예술계로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70년대 활동파는 정·관계에, 80년대파는 문화 현장에

사회과학적 치밀함과 성실함, 대중활동 능력까지 고루 갖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그동안 영화, 연극, 문학, 출판 등 여러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참여정부 출범 후 이들은 문화관련 단체장을 하나 둘 차지하면서 ‘진보적 예술인’들의 입지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많은 이들은 그동안 공직에서 소외돼온 운동권 출신 문화인들이 주류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민족예술인총연합회(이하 민예총) 박인배 상임이사, 민예총 이기택 전 남북문화예술교류위원회 위원장 등 진보적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면서 이러한 예상은 현실화되는 듯했다. 기존의 문화계 중심세력들 사이에서 이들이 자신의 진보적인 색깔을 얼마나 관철할 수 있을 지가 미지수였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인사가 시작된 후 나타난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2003년 2월 문예진흥원장에 현기영 전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이 임명되면서 시작된 운동권 문화인들의 ‘중앙 입성’은 작가회의 이영진 전 문화정책위원장이 문화부장관 정책보좌관에 임명되고, 한국영상자료원장에 이효인 전 경희대 교수가, 국립현대미술관장에는 민예총 김윤수 전 이사장이, 국립국악원장에는 민족음악인협의회 김철호 전 이사장이 각각 임명될 때까지 계속됐다. “운동권 출신들이 문화계의 주류를 차지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거대한 흐름이었다.

이들 참여정부 문화예술 관련 단체장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 시절 제주 4·3 항쟁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쓴 ‘죄’로 남산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던 현기영 문예진흥원장은, 진보적 문인들의 모임인 작가회의에서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문단의 대표적 운동권이다. 그의 지인들은 현원장이 지금도 ‘독재자’ 박정희 이야기만 나오면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가고, 이를 악문다”고 전한다.

문화계에 운동권 바람 거세다
한국영상자료원장 이효인씨도 78년 대학 입학 후 언더 서클에서 활동하며 정학과 조건부 복학, 구속, 제적을 두루 겪다가 94년에야 비로소 졸업한 인물로, 독립영화운동과 영화평론 활동을 계속하다 공직에 진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윤수씨는 70년대부터 리얼리즘, 민중미술 계열의 지도적 이론가로 활동하며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부침을 겪었던 학계의 대표적 운동권 인사다. 이화여대·영남대 등에서 해직과 복직을 거듭했고, 군사정권 시절부터 창작과 비평사(현 창비) 대표, 민예총 공동의장, 문화연대 공동대표 등 진보 문화단체의 대표를 두루 지냈다.

국립국악원장 김철호씨도 민예총 산하 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을 지낸 국악계의 대표적인 진보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운동권 중에서도 진짜 운동권인 이들이 현재 문화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직에 대거 진출해 있는 것이다. 70년대에 주로 활동한 이들이 정·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면, 현장은 좀더 젊은 80·90년대 ‘운동권’들의 무대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해 ‘빨갱이’ 북한군에 대한 인상을 ‘초코파이를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친구’로 바꿔놓은 명필름의 이은 이사, ‘접속’ ‘텔미썸딩’의 장윤현 감독, ‘달마야 놀자’ ‘와일드 카드’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 정진영씨 등은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를 만든 운동권 영화창작집단 ‘장산곶매’의 멤버들이다.

출판계는 운동권 집합소 …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문화계에 운동권 바람 거세다
이들의 선배로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하며 80년대 문화예술계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영화 제작에 뛰어든 영화사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가 있다. 유대표는 ‘해방의 노래’ ‘선언’ 등의 민중가요를 테이프로 제작 판매하는 등 운동권 시절부터 진보적인 내용의 음악 마당극 연극 상품을 만들어냈던 인물로, 기획사를 낸 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출판계도 운동권 집합소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펴낸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 ‘컴퓨터 무작정 따라하기’ 등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로 유명한 도서출판 길벗의 이종원 사장,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로 대히트를 친 ‘사회평론’의 윤철호 대표,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등을 낸 현암사 형난옥 대표이사 등 출판계의 운동권은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81학번인 김학원씨는 3학년 때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학창시절 학생운동에 전념하다, 전국노동단체연합 기관지 ‘노동전선’을 펴내는 일로 출판을 시작한 인물. 이종원씨도 85년 민추위 사건과 90년 혁노맹 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된 바 있고, 윤철호씨는 학창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일이 있다. 형난옥씨는 80년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운동권이다.

이외에도 정성현(청년사), 고세현(창비), 김종수(한울), 한철희(돌베개), 소병훈(산하), 이성우씨(일빛) 등이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 출판사 사장들로, 진보적인 색채의 책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한때 사회변혁 운동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문화 권력의 주류로 자리잡은 것이다.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30~31)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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