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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운동권 전성시대

운동권 땀방울, 한국사회 영양분

475, 386 운동권들 노동·농민운동에도 대거 투신 …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는 역시 ‘학계’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운동권 땀방울, 한국사회 영양분

운동권 땀방울, 한국사회 영양분

2003년 10월7일 송두율 교수사건과 관련해 학술단체협의회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가 공동으로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교수 추방반대`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2003년 5월25일 전남 해남읍에 ‘운동권’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일부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남도의 끝을 찾은 까닭은 이곳에서 활동해온 민인기씨의 ‘지각’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서울대 법대 72학번으로 대학 졸업 후 YMCA 농촌부에서 일하면서 농민교육을 담당, 많은 농민운동 지도자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1985년부터는 해남에 살면서 80년대 후반 수세폐지운동을 주도하는 등 이 지역 사회운동을 이끌어왔다.

민씨는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직접 연루됐던 ‘민청학련 세대’다. 그러나 당시 장준영 대통령사회조정1비서관 등과 함께 운 좋게도 당국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최근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가 패한 정윤광씨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민씨 등의 이름은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씨처럼 학생운동 출신으로 노동·농민운동 등 각종 사회운동에 투신한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들 가운데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은 정윤광씨처럼 대부분 민노당에서 활약하고 있다. 물론 김문수 의원처럼 일찍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경우도 있고, 송영길 이목희 의원 등은 열린우리당에 몸담았다.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지방선거에 출마, 기초단체장을 맡는 경우도 생겨났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나주시장에 당선된 신정훈 시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같은 386세대지만 기성 정치권에 의해 ‘발탁’되지 않고 ‘농민 속으로’ 뛰어들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자주 김민석 전 의원과 비교된다.

농민운동가들 지방선거 통해 기초단체장 맡기도



그러나 학생운동 출신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는 역시 학계다. 학생운동 시절 어렴풋이 느꼈던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이들은 이후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뚜렷한 연구성과를 내기도 했다. 운동권 출신의 학계 진출은 사실 서구이론을 도입, 한국적 학문으로 토착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4·19세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이들도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다음해 6월에는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정치연구회 등 각 분야의 진보적 학술단체가 처음으로 연합 심포지엄을 주최했고, 심포지엄에서 ‘한국 사회의 계급 구성’을 주제로 발제한 충북대 서관모 교수가 이적성을 이유로 구속되는 필화사건이 계기가 돼 그해 11월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가 결성됐다.

현재 학단협에 참여하고 있는 학술단체는 설립 당시보다 11개가 늘어난 21개. 회원수도 2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들 가운데 대학 교수는 400여명 정도다. 이들 교수들은 설립 당시 30, 40대의 비주류 소장학자들이었으나 이제는 어엿한 중견학자로 성장했다. 학단협 소속 교수들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개인적 성향에 따라 노무현 후보 캠프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캠프로 나뉘어 정책자문 활동을 펼쳤다.

참여정부 들어 운동권 출신 진보학자들의 급부상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정부에 들어간 학자들의 경우 행정 경험이 없는 탓인지 관료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학계에서는 변방에 머물던 진보학자들이 주류 혹은 중심부로 이동하면서 보수와 진보학자 그룹간 지적 세력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운동권 땀방울, 한국사회 영양분
이밖에도 운동권 출신들이 진출한 분야는 다양하다. 법조계 의료계 시민운동 단체 언론계 관계 재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법조계의 경우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판·검사 임용을 거부하고 변호사로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데 그쳤으나 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결성되면서 집단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우리법연구회도 운동권 출신 법조인들 모임.

대기업 경영자는 아직 없어

민변이나 우리법연구회는 창립 당시만 해도 법조계의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변의 경우 이제는 참여정부의 인재 풀 구실을 하고 있다. 고영구 국가정보원장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이 민변의 핵심 멤버였다.

우리법연구회는 최근 회원인 이정열 판사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 출신 사시 23회가 중심이 된 이 연구회는 140여명의 현직판사와 판사 출신 변호사들로 한 달에 한 번씩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연구회의 탄생연도(88년)와 모임 이름(우리법)에서 엿볼 수 있듯이 ‘민주화’와 ‘진보’쪽에 선 판사들의 모임으로 사법개혁의 중심에 서 있다. 4, 5차 사법파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한국 환경운동의 개척자’로 불리는 환경재단 최열 상임이사와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은 모두 ‘71동지회’ 소속이다. ‘71동지회’란 71년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 발동으로 대학에서 제적된 후 군대에 끌려갔던 당시 학생운동 주역들의 모임. 판소리 연출가 임진택씨 ‘71동지회’ 회원이다. 이들 선배 세대들이 시민운동의 지평을 열었다면 70, 80년대 학번 세대는 이들 단체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전 사무처장과 김기식 현 사무처장, 역시 같은 단체에서 활약하는 윤종훈 회계사, ‘함께 하는 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운동권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일찍부터 증권업계에 뛰어들었던 ‘71동지회’ 회원 SK투신운용 최명의 사장과 한솔교육 변재용 대표, 웅진닷컴 김준희 대표, 팍스넥 박창기 전 대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2000년 11월28일 출범한 민주기업가회의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 기업인 50여명의 연대 조직이다.

그러나 아직은 대기업 경영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과거 기업들이 정권의 뜻을 거슬렸다가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운동권 출신은 취업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당당히 주류로 부각된 운동권 출신 가운데 대기업 경영자가 언제 나올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26~28)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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