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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운동권 전성시대

금배지 12명 ‘전대협의 힘’

학생운동 주역들 정치판 신인으로 변신 … 끈끈한 동지의식 갖고 진보 블록 형성할까 ‘관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금배지 12명 ‘전대협의 힘’

금배지 12명 ‘전대협의 힘’

전대협은 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중략)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백기완 작시·김종률 작곡)

5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당선자 만찬에서 33명의 ‘청년’들은 80년대의 ‘시대정신’을 목 놓아 불렀다. 386의원들의 모임에선 으레 80년대 운동권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운동권 사투리가 아직도 가끔씩 일상 대화와 글에 섞여나오는 386이자 운동권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패배감과 자괴감을 넘어선 승리의 상징이요, 자부심이다.”(전대협동우회 관계자)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를 수 있느냐는 좁게는 386세대와 비386세대, 넓게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가르는 경계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격정적으로 부르는 ‘늦깎이 운동권’이다. 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가사를 외우지 못하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곡조만 안다. 노대통령은 ‘정서적으로’ 386이자 운동권이고, 신의장과 박대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세대’와 함께하는 부분이 노대통령보다 조금 적은 셈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운동권 세력이 바로 17대 총선에서 12명의 의원을 배출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다.



6월10일 이인영 이철우 최재성 의원은 승용차를 함께 타고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으로 향했다. 서울주교좌성당에선 6·10항쟁 기념행사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의원들은 승용차 안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뼈대는 바르게 자라왔다” “앞으로도 책임지는 모습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12명의 전대협 출신 가운데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의원은 딱 절반에 그쳤다.

80년대 학생운동의 대중화에 결정적 구실

80년대는 두말할 것 없이 ‘전대협의 시대’였다. 당시 전대협은 언더그라운드의 소수 운동권 중심의 학생운동을 대중운동으로 끌어올렸다. ‘80년 광주’에 분노한 대학생들은 너나없이 화염병을 들었고, 학생운동의 성공적인 대중화는 전대협 이전에도 전대협 이후에도 발견할 수 없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1차적 목표를 간접적으로 달성한 ‘전대협 세대’는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대거 입성하면서 앞으로는 직접적으로 정치 주도권 장악에 나설 태세다.

운동권 출신 총리 지명자까지 나온 마당에 운동권의 국회 진출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대협 출신들의 동선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대 어느 운동권 세대보다 끈끈한 ‘동지의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전대협 출신들이 세력화한 것은 93년 전대협동우회가 결성되면서다. 전대협동우회 전문환 회장은 “정치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오랫동안 지역구를 닦아온 바탕이 국회에 대거 입성한 원동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대협 출신들이 정치권 입성을 결심한 때는 98년께 ‘정치 변화 없이 사회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짓고 나서다.

이인영 우상호 임종석 의원 등이 제도권 진입에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16대 총선 과정에서 이인영 우상호 오영식 임종석 의원과 허인회씨 등이 민주당으로 영입된 것은 조직적 진출은 아니었지만 정치를 해야겠다는 집단적 각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결과였다.

이어 전대협 출신들이 대거 정치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노대통령의 출마와 당선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전대협동우회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노사모’ ‘개혁당’ ‘국민의 힘’ 등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외곽세력의 주축 또한 전대협이었다. 전대협 출신 17대 총선 출마자들은 총선 1년 전부터 수차례 전체 모임을 열어 선거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총선 출마 희망자들이 무려 4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정치권 “의정활동 하다보면 엇갈릴 수밖에 없을 것”

당장의 관심은 전대협 출신들이 ‘진보 블록’을 형성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전대협 세대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대협 출신의 한 의원은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 말하는 개혁과 우리가 말하는 개혁은 역사에 대한 접근과 통일에 대한 진정성에서 조금은 다르다…, 아니다. 차이가 없다고 하자”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계보나 집단으로 뭉치는 것에 대해서는 전대협 출신 의원들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임종석 의원은 “당내의 계파로 흘러가선 안 된다”고 했고, 오영식 의원 역시 “각각의 상임위로 흩어져 각자의 관심과 고민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2명 의원들의 성향도 조금은 다르다. 백원우 복기왕 정청래 의원은 보통 친노직계로 분류된다. 백의원은 6년여 동안 노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복의원과 정의원은 ‘2030네트워크’ ‘국민의 힘’ 등을 주도하며 외각에서 노대통령을 지원했다. 반면 이인영 우상호 의원 등은 노대통령보다 김근태 전 원내대표와 정서적으로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따라서 정치권에선 “전대협 출신들도 엇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금 더 많다.

1987년 6월, 전대협 출신 가운데 막내 격인 복기왕 의원은 21살의 명지대 2학년 학생이었다.

“6월10일 시청 앞에서 4·19가 이랬겠구나 하고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잘못된 세상이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우리도 책임지고 운영해나갈 위치에 섰습니다. ‘개혁’이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계보나 집단으로 뭉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동안은 똑바로, 초심을 잃지 않고 각자가 현실 정치의 경험을 쌓아가야겠지요.”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22~24)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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