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0

2004.06.24

이해찬 카드 ‘찜’ 노무현 코드 ‘딱’

노대통령, 개혁·정국 돌파·세대교체 1석3조 노림수 … 전통적 지지세력 결집 의도도

  • 박주호/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jhpark@kmib.co.kr

    입력2004-06-17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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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카드 ‘찜’ 노무현 코드 ‘딱’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열린우리당 이해찬 의원이 6월8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이해찬 의원을 새 총리후보로 선택했을까. 정치권과 언론은 당초 노대통령이 경제 총리나 국민통합형 총리를 고를 것으로 예상했다. 노대통령이 비록 6·5 재·보궐선거 참패와 정치권의 반발로 김혁규 총리 카드를 접었지만, 김혁규 의원을 총리로 고집한 명분은 경제와 지역주의 극복이었다. 따라서 전윤철 감사원장, 이헌재 경제부총리, 진념 전 경제부총리,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경제총리로 주목을 받았고 한명숙 의원, 박찬석 의원(전 경북대 총장) 등이 국민통합형 총리로 꾸준히 거론됐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선택은 이해찬 의원이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들까지도 ‘깜짝’ 인사라고 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의중을 잘 뜯어보면 그의 머릿속에는 김혁규 총리를 포기했을 때 이미 이해찬 총리 카드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권과 언론만 노대통령의 구상을 몰랐던 것이다.

    노대통령이 이의원을 집권 2기 총리로 지명한 이유는 개혁 돌파 세대교체 등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노대통령은 이의원을 총리후보로 지명한 다음날인 6월9일, 6·10 민주항쟁 관련인사 5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17년 전 6·10 민주항쟁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의원을 총리로 지명하고 보니 새롭게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1987년 6·10 민주항쟁 때 부산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를 이끌었다. 개혁진보세력의 뿌리는 6·10 민주항쟁이다. 노대통령이 6·10 민주항쟁의 정신을 이 총리지명자와 연결한 것은 자신의 최대 지지기반인 개혁진보세력이 최근 이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탓이다.

    비타협적 감성 이미지 … 위기 정국 대처에 적격 평가



    실제로 여권은 총선 승리에 빠져 있었다. 정동영 김근태 두 실세가 통일부 장관직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였고, 서민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당의 청와대 만찬은 ‘포도주와 샥스핀, 노래방’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지지율은 총선 직후보다 무려 10% 넘게 추락했다. 노대통령의 전통적 지지세력은 이라크 파병,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여권의 움직임을 비개혁적이라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지지세력에서조차 “그렇게 밀어줬는데, 도대체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이냐”는 원성이 터져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6·5 재·보선 참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노대통령은 재·보선 참패의 원인을 개혁성 상실로 진단한 것 같다. 전통적 지지세력을 결집시키지 않으면 집권 2기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6월7일 국회 개원 축하연설에서 “정치개혁, 언론개혁을 비롯한 많은 과제들은 대부분 국회가 주도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저와 정부는 부패청산과 정부혁신을 책임지고 하겠다”고 밝혔다. 부패청산에 대해서는 “가지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뽑겠다”고 했고, 정부혁신과 관련해서는 “공직자 자신이 혁신의 주체로서 변화를 주도해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카드 ‘찜’ 노무현 코드 ‘딱’

    1989년 광주특위 위원 시절의 이해찬 의원.

    따라서 노대통령은 지지세력의 개혁 갈증을 풀고, 집권 2기 개혁 드라이브를 가속화하기 위해 개혁 성향이 각인된 사람이 필요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당내 소장파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다 부패청산과 정부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내각을 틀어쥘 ‘성깔’ 있는 총리가 필요한데, 노대통령은 이 총리지명자를 적격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연공서열주의와 행정편의주의가 퍼져 있는 공무원 사회에 물렁물렁한 총리가 갔을 경우 ‘3년 반만 기다리자’며 개혁에 반기를 드는 분위기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총리지명자는 강성이다. 꼬장꼬장하고 때로는 공격적이며 비타협적이다. 조직의 리더보다는 책사(策士)에 가깝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엄청난 교육계의 반발에도 교원정년 단축과 교육개혁을 밀어붙였다. 전교조까지 이 총리지명자 국회 인준에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가 얼마나 ‘독종’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는 또 기획통이다. 제1야당과 집권여당의 정책위 의장을 수차례 맡았고 15대 대선-15대 총선-16대 대선-17대 대선 등 주요 선거 때마다 기획을 총괄했다.

    신기남 천정배 등 탈레반 세력에 대한 견제 의미도 포함

    이해찬 카드 ‘찜’ 노무현 코드 ‘딱’

    98년 교육부 장관 취임식 때의 모습.

    노대통령은 이 총리지명자의 이 같은 면면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노대통령이 위기 정국을 돌파하기에는 그야말로 ‘딱’이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이 총리지명자는 일 하나만큼은 똑부러지게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소장파들이 김혁규 총리 카드, 이라크 추가 파병,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사사건건 청와대에 딴죽을 거는 상황을 간단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노대통령은 6월4일 우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냐”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문희상 정치특보의 해촉을 선언할 만큼 당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켰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이 총리지명자를 지렛대로 당·청 간 불협화음을 정면돌파하고 여당의 체질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총리지명자는 지난달 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개혁완급론을 들고 나왔다. “여당으로서 유능하고 책임 있는, 생산적인 개혁을 하겠다”는 주장이었다. 노대통령은 원내대표 경선에 중립을 지켰지만, 마음은 이 총리지명자에 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지명자는 총리 지명 직후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반대의견을 밝혀 벌써부터 노대통령과 호흡 맞추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을 낳았다.

    노대통령으로서는 또 신기남 천정배로 대표되는 이른바 ‘탈레반’ 세력을 이 총리지명자로 견제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분석된다. 이 총리지명자는 한때 정동영 신기남 의원이 주도했던 동교동계 정풍운동에 가세하지 않은 경력이 있다. 노대통령은 6월8일 저녁 새 총리 지명을 협의하기 위해 우리당 지도부와 함께한 만찬 때까지도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에게 이해찬 의원의 총리 지명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현재의 여당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이 총리지명자를 통해 우리당의 권력지도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청학련 세대인 이 총리지명자가 5선을 거치면서 재야, 386, 범동교동계 등 당내 여러 세력과 두루두루 친해 당·정·청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해낼 능력이 있다는 점도 노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발탁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해찬 카드 ‘찜’ 노무현 코드 ‘딱’

    2002년 노무현 정몽준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단장 시절

    현재 총리를 뺀 21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이 총리지명자보다 나이가 적은 장관은 강금실(46) 법무부, 이창동(49) 문화관광부, 진대제(51) 정보통신부 장관 등 세 명뿐이다. 이 총리지명자는 52살. 정치권은 물론 내각에 강한 세대교체 바람이 불 것이 자명하다. 당장 입각이 예상되는 김근태 의원이 과연 이해찬 총리 밑에서 일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김의원은 57살로, 이 총리지명자의 까마득한 선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꼭 세대교체를 위해 이 총리지명자를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세대교체가 가속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해찬 총리 지명에 노대통령의 세대교체 의중이 실려 있다는 점은 6월11일 청와대 인사에서 다시 한번 읽혔다. 노대통령이 50살의 김병준 국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청와대 정책실장에 발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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