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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이주노동자⑥ | 독일

자국인 원치 않는 일자리는 ‘문 활짝’

이주노동자 허가에서 관리까지 꼼꼼 … 노동3권 부여로 인권시비도 적절히 차단

  • 프랑크푸르트=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자국인 원치 않는 일자리는 ‘문 활짝’

자국인 원치 않는 일자리는 ‘문 활짝’

2003년 가을 독일 건설노조원들이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외곽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30여명의 노동자들이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독일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 선전국장이자 폴란드 지부장인 울리 피벡(49)은 그들에게 다가가 노조에 가입하라고 설득했다.

“여러분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노동자들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하나 둘씩 자리를 피했다. 피벡은 잠시 물러난 뒤 기자에게 말했다.

“고용주나 감독관한테서 노조 사람들과 만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을 겁니다. 노동자들이 처음엔 자신들의 처지가 잘못될까 두려워하지만 자신들이 처해 있는 실상과 동지들이 있다는 걸 알면 점차 자신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씩 노조에 가입하게 되지요.”

폴란드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적은 임금을 받긴 하지만 고국에서 받는 것보다는 훨씬 많다. 그래서 노조에 가입했다가 혹 일자리라도 잃으면 오히려 손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잠시 뒤 같은 공사장의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벡이 겨우 말을 붙인 이들은 폴란드 슐레지엔 출신 노동자들이었다. 슐레지엔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엔 독일 땅이었지만 전후 폴란드에 귀속된 곳이다. 그래서 독일의 슐레지엔인들은 우리로 치면 옌볜(延邊) 조선족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다. 그들도 차별을 받지만 우리보다 덜한 편이다.

국가간 노조 자동가입제 ‘세계가 주목’

슐레지엔 출신 노동자 파벨(38)은 시간당 10.1유로를 받고 있었다. 피벡이 “당신은 당연한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기업주들만 좋은 일 시킬 거냐”고 말하자 파벨이 귀를 쫑긋 세웠다.

“저도 우리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나요?”

피벡은 파벨과 그의 동료 3명에게 전단을 나눠주며 관심이 있으면 노조사무실로 연락하라고 말했다. 파벨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전단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전단을 힘껏 쥐며 이를 악물었다.

유럽연합(EU) 이외의 나라에서 온 단기 이주노동자들의 독일 생활은 녹록지 않다. 올 5월1일부터 폴란드 등 동구권 10개국이 가입했지만 독일은 이들과 협정을 통해 7년간 노동 이동을 제한하는 과도기를 뒀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다.

자국인 원치 않는 일자리는 ‘문 활짝’

건설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하고 있는 노조 간부.

“폴란드 출신 건설노동자들은 24명이 방 4개짜리 작은 집에서 함께 사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시각에 출근하는데 화장실이 한 개밖에 없어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지요.”(피벡)

서독지역 건설노동자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인 12.47유로(약 1만8700원, 동독지역 10.1유로)의 절반도 안 되는 5유로를 받는 이도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폴란드 건설노동자들은 건설노조의 도움으로 급기야 고용업체 폴바우사를 상대로 임금 반환소송까지 냈다. 한스차르 블라디슬라브(32)와 동료 노동자 12명은 몇 년 전 최저임금이 시간당 17마르크였을 때 폴바우에서 절반인 8.50마르크만 받았다. 따라서 법정 금액인 최저임금 기준으로 계산해서 나머지를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송에서 승소, 각각 9000~1만4000마르크를 받아냈다.

이들이 독일 기업이 아닌 폴란드 기업을 상대로 소송한 사실이 흥미롭다. 대개 공사를 시행하는 독일 건설업체는 싼값에 다른 기업에 하청을 주면서 이익을 챙긴다. 그러면 독일이나 제3국의 용역회사들이 사업권을 따내서 외국인노동자를 건설현장에 투입하고 임금을 착복하는 것이다.

조합원 50만명인 독일 건설노조의 최대 현안은 최저임금제 준수 및 송출·고용업체의 임금 착취를 개선하는 일이다. 이밖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 인종차별 및 외국인 적대행위 반대 등의 활동을 펴고 있다.

무엇보다 건설노조는 세계 최초로 국가간 노조 자동가입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즉 독일 측 노조가 폴란드 건설노조와 협약을 맺어 어느 한쪽의 조합에 가입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권리가 유지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 건설노조 조합원들도 독일의 조합원과 똑같이 독일 건설노조로부터 법률상담 및 소송대리 등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가간 긴밀한 노조 연대를 통해 노조운동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임금 착취, 불법노동, 주거환경 등 이주노동자들에게 닥친 현안들을 취재하러 왔던 프랑스의 ‘르몽드’ 등 각국 신문들도 이 내용을 집중 취재해가기도 했다.

고용주 부당노동행위에 법적 대응 ‘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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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는 멍청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는 노조원들.

건설노조의 활동은 독일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확인케 한다. 한편으로 그만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책이 정부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은 이미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고 있다. 비록 현실적인 여건상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없다 해도 고용주의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서는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다. 독일 전체 경제활동인구 4050만명(총인구 8240만명) 가운데 외국인 경제활동인구가 361만명(8.9%)에 이르는 만큼 그들의 경제적인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8월부터 한국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는 등 이전보다 격상된 지원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노동연구원 유길상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내국인 우선고용 원칙에 따라 외국인이 지원한 일자리에 갈 내국인이 있는지 여부를 체크해야 하는데 이런 업무를 담당할 관련 인력과 전문가가 부족해 시행 과정상 문제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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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켄 지방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농부.

독일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선 비교적 철저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철도 ‘이체(ICE)’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코블렌츠의 지역노동사무소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구가 11만명밖에 안 되는 도시지만 제반 고용보험업무 및 취업허가증 발급을 담당하는 지역노동사무소는 직원이 300여명이나 될 만큼 크다.

5월6일 코블렌츠 노동사무소 고용허가 심사 담당자인 우도 뵘(35)을 방문했을 때 그는 유고 출신 노동자 A씨의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약 30쪽에 달하는 문서를 본 뒤 먼저 A씨의 독일체류허가증을 확인했다. EU 이외의 나라에서 온 노동자는 먼저 체류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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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건설노조 폴란드 지부장인 울리 피벡.

그리고 고용주가 어떤 근로조건을 제공하고 어느 정도의 임금을 지불하려는지, 실업급여와 18살 미만의 자녀에게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A씨가 일하고자 하는 사업장은 주방이나 음식점. 가장 큰 문제는 이 직업분야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일하고자 하는 내국인은 얼마나 있는지, A씨가 노동시장에 들어와서 내국인이 피해를 보게 되지는 않는지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게 법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다. 1년 넘게 독일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경우 취업 거부확률은 낮지만 신규로 입국하는 이들은 거부율이 높다. 또 전문직은 거부율이 낮고 미숙련 노동자는 그 반대다.

“이런 심사가 끝난 뒤 외국에서 처음 들어온 사람은 일자리가 있어도 최소한 한 달간 대기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기간에 다시 노동사무소는 그 노동자에 대해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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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취업·고용을 단속하고 있는 세관 단속반들.

뵘이 하는 일은 고용허가 여부를 직접 부여하는 게 아니라 허가사항을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을 조사한다. 즉 허가 신청자가 일할 수 있는지 자격 유무를 판단하는 일이므로 그의 판단이 고용허가 발급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는 또 고용주가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자 할 경우 특정인을 추천하는 일도 맡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른 일을 하다 2년 반 동안 노동부의 고용허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뵘은 추가로 아홉 달 동안 관련 지식을 심화시키는 과정을 거쳤으며, 이후 2년째 이 일을 맡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독일의 외국인 노동정책은 잘 잡혀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처지가 모두 달라서인지 예외 규정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을 단순화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법적 조항이 만들어졌으나 실제 적용해보면 괴리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동사무소에선 또 노동허가를 받고 독일에서 일하던 이가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자립할 수 있게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직업에 관련된 자질을 높이고, 세미나를 조직해 새 정보를 주기도 한다. 대출상담, 자기 자본 지원 등을 통해 독일 국적자와 같은 조건으로 본국 송환 정책을 펴고 있다.

이처럼 독일은 합법적 이주노동자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하지만 불법취업자들에대해서는 강경한 편이다. 지역노동사무소의 팸플릿 문구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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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의 세관 단속반들.

‘불법취업자는 단순한 잡범이 아니다’.

독일 당국은 불법취업이 노동시장을 흐트러뜨리는 주 요인으로 보고 있다. 2002년 연방정부의 외국인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불법취업자는 50만~150만명에 이른다. 가뜩이나 실업률(10.7%, 약 460만명)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이 정상적 일자리를 잠식하고 새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정상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일해 임금협정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정상적 노동자의 소득조건을 개선하는 데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체 산업구조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연방노동사회성의 보고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불법취업자 1만명당 1억1400만 유로 정도의 사회보장보험 손실과 4500만 유로 정도의 세금 손실이 있다고 한다.

불법취업자는 의료 등 사회보장과 노후연금 권리가 없으므로 본인에게도 손해며, 질병이 생겨도 보호받을 수 없다. 연방노동청(지역노동사무소)의 허가 없이 고용기업주가 외국인노동자를 불법적으로 다른 기업으로 보내는 것도 2500유로의 벌금에 3년형을 받게 된다. 재범인 경우 6년 징역에 최대 50만 유로까지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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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블렌츠 세관의 불법취업 단속반 볼프강 홀 팀장, 로타 발렌보른 부수석(오른쪽).

불법취업자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1989년 1월부터 세관에도 불법취업자 통제와 단속 권한을 부여했다. 세관의 불법취업 감시원들은 제보나 자체 조사를 통해 의혹이 있는 현장을 단속해오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는 불법취업 감시 업무를 연방노동청의 지역노동사무소와 세관이 함께 맡았지만 올해 1월부터는 모두 세관으로 이관했고, 지역노동사무소에서 관련 업무를 맡았던 직원들도 세관으로 옮기게 했다.

독일 전역에 5000명 정도의 노동감시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독일 정부는 앞으로 7000명까지 증원할 예정이다. 코블렌츠 세관에선 모두 47명이 일하고 있으며 코블렌츠를 중심으로 트리어, 마인츠 등 반경 60km 내의 3개 시를 맡고 있다. 코블렌츠 세관에선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모두 30건을 적발했다. 불법취업자는 주로 건설현장과 식당, 호텔 분야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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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폴란드 건설노조는 양국 노조간에 맺은 협약에 따라 노동자가 어느 한쪽 노조에 가입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독일 건설노조원들.

“불법취업자는 대개 불법 송출 조직을 통해 독일로 들어옵니다. 그 뒤에는 마피아들이 있고, 그들은 엄청난 이익을 챙깁니다.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선 많은 인력과 수사자금이 필요합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단속반은 권총 최루탄 방탄조끼 등으로 무장합니다.”(라인 마인주 불법취업 관련 금융분야 수석 통제관 볼프강 홀)

마피아들은 주로 폴란드 헝가리 등 독일 주변국 출신이다. 마피아는 불법취업자를 이용해 유령회사를 만들어 임금을 착복한다. 또 매춘에도 직접 간여해 세관 단속팀은 경찰과 공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국 마피아들의 불법 송출 ‘골치’

자국인 원치 않는 일자리는 ‘문 활짝’

코블렌츠 노동사무소 고용허가 심사담당자 우도 뵘.

“불법취업자 가운데에는 여성도 많습니다. 호텔이나 식당, 또는 가정집에서 일하기도 합니다. 독일에선 가족간 유대가 느슨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노부모를 직접 부양하는 경우가 드문데, 싼값에 동구 여성을 가정부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 여성의 경우 월 3000유로를 줘야 하지만 동구 여성은 월 600유로면 가능하거든요.”(코블렌츠 중앙세관 불법취업 감시관 로타 발렌보른)

불법취업자들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코블렌츠역 화장실에서 이용료를 받고 있는 가나 출신 보나헤스 로즈몽(30)도 직장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했다. 자신보다 먼저 독일에 와 코카콜라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남편과 재결합한 뒤 고단한 삶을 지속하고 있지만 “독일 생활이 재미있어요”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로즈몽처럼 수많은 노동자들이 오늘도 독일에서 본국으로, 다시 제3국으로 떠나고 있다. 2명의 아이를 둔 한스차르는 폴란드 소스노비에츠 출신으로 독일에서 9개월간 노동하고 폴란드로 돌아갔다. 폴란드에서의 생활이 안정되지 않자 그는 다시 이주 행렬에 끼어들었다. 이번에 택한 곳은 영국 런던. 한번 이주 행렬에 들어선 뒤 그의 유랑은 끝이 없다. 고국도, 이주국도 그에게 편안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지는 자신뿐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56~59)

프랑크푸르트=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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