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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마음의 손ㆍ발톱을 깍자

마음의 손ㆍ발톱을 깍자

마음의 손ㆍ발톱을 깍자
3월 1일부터 걸었다. 77일 정도 걸었으니 줄잡아 2500리 길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일원으로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 산청 함양군, 전북 남원시 지역의 면단위 마을 마을을 둘러보고, 제주도로 건너가 마찬가지로 한 바퀴를 돌았다.

수경 도법 스님, 그리고 박남준 시인 등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의 길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지리산에서 1500리 길로 이어진 거대한 원 하나 그리고, 제주도 한라산을 중심으로 또 1000리 길 원을 그렸으니 처음도 끝도 없는 일체원융의 길이다.

모성의 산, 어머니의 산인 지리산과 한라산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탁발순례가 비로소 시작된 셈이다. 6.25전쟁과 4.3의 상처가 새겨져 있는 두 영산의 깊고 푸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5월 24일 한반도 내륙의 부산지역으로 이어지는 순례는 사실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북한까지도 가보고픈 소망이 있을 뿐 이마저도 걷고 또 걸으며 집착이 아닌지 묻고 또 물을 뿐이다.

우리 사회 성장 이면엔 동지들끼리 할퀸 상처 많아

순례하다 마주치는 현실은 참담하고 참담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20세기적인 자연과 인간의 끝없는 대결 구도인 개발광풍이 몰아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 종교와 종교사이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1%의 기적’을 믿고 싶다. 1%의 기적은 다름이 아니라 21세기에 걸맞은 대안 모색의 길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생명평화의 길이다. 생태적 삶을 지향하고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1%의 농민들처럼 대안을 찾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이들이 한국사회에 적어도 1%는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들과 손에 손을 잡으며 곳곳에 흩어진 옥구슬을 꿰듯이 가다 보면 그 길이 바로 한반도 전쟁을 막는 길이자 21세기 지구촌의 생명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느리고 소소해 보이지만 목숨을 걸고 가야만 하는,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 아닌가.

1%의 기적을 믿는 사람이 100명이 될 때까지 간다면 그것은 곳 100%의 기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추상적이거나 논리적인 궤변도 아니요, 어불성설도 아니다. 다만 걸으며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전쟁통이다. 서로 물어뜯고 할퀴는게 마치 유일한 생존의 비법이라는 듯이 광견의 눈빛들을 하고 있다. 미국도 그렇고 정치권도 그렇고 국민들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내 몸과 마음속에 있다.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생명평화의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이 수행의 길이든 고행의 길이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톱과 발톱이 자란다는 사실을 한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몸의 손·발톱이야 쉽게 깎을 수 있지만 자꾸만 자라는 마음의 손, 발톱은 어이하랴.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그것은 더욱 확연해진다. 그 뜻이야 숭고하고 숭고한 민주주의를 외치고, 노동운동과 교육운동 등을 하면서도 속 상처가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지들끼리 서로 할퀸 자국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운동과 희생의 대가로 한국 사회는 참으로 빠른 속도로 진보했지만 여전히 그 내면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그 상처를 보듬고 부드러운 혀로 핥아야 할 때다. 서로 옳다고 삿대질을 하고 할퀴는 게 아니라 짓무른 발바닥이라도 핥아야 한다.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그 모든 대안운동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날마다 날카롭게 돋아나는 마음의 손·발톱을 깎지 못한다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뿐이다.

내내 거지가 되어, 수행자가 되어 길 위에 목숨을 맡긴 채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진행하면서도 나의 경계는 손·발톱을 깎으며 마음의 손·발톱을 어쩌지 못해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우리 모두, 지금 당장이라도 목욕재계를 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자. 그리고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마음의 손·발톱을 깎으며 함께가자. 손톱깎이는 너무나 싸고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주간동아 436호 (p10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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