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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과 영웅’ 두 얼굴의 바누누

이스라엘 핵 보유 폭로 18년 복역 후 출소 … 반핵·평화 운동 상징 노벨상 후보에 선정되기도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반역과 영웅’ 두 얼굴의 바누누

‘반역과 영웅’ 두 얼굴의 바누누

4월21일 핵 시설 폭로 혐의로 18년간 복역했던 모르데차이 바누누가 만기 출소로 교도소 밖을 걸어나오며 승리의 V를 그려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국가기밀인 핵 시설 관련 내용을 서방언론에 폭로해 국가에 대한 ‘반역과 간첩’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18년간 복역한 모르데카이 바누누가 4월21일 만기출소했다. 교도소 앞에는 이스라엘 언론뿐 아니라 CNN, BBC, Sky News 등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몰려들어 그의 출소 장면을 생중계했다. 손을 들어 V자를 그리며 교도소 문을 걸어나온 바누누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을 향해 “당신들은 나를 미치게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바누누는 정보기관이 내린 ‘외국인과의 대화 금지’ 조치에 반발해 외국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한쪽에서는 ‘반역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온갖 욕설을 퍼부었으나,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의 영웅”이라고 외치며 뜨겁게 환호했다. 바누누라는 인물이 얼마나 복잡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나는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

1986년 10월5일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이스라엘의 핵 시설에서 9년간 근무한 31살의 핵 기술자 모르데카이 바누누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핵 비밀을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스라엘은 네게브 사막지대의 디모나에 있는 비밀 지하기지에서 지난 20년간 핵탄두를 생산해왔고,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에 이어 100~2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6대 핵 강국’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폭로는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 핵무기의 양보다 10배나 많은 수치였고 이스라엘의 핵 시설과 핵무기 생산능력, 보유 현황이 공개된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이었다.

핵에 관한 한 시인도 부인도 않는 철저한 ‘모호(ambiguity)정책’으로 일관하던 이스라엘이 경악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12일 선데이 타임스는 자사가 제공한 숙소 런던호텔에 머물고 있던 바누누가 9월30일 이후 연락이 끊어지고 실종됐다는 기사를 헤드라인 기사로 실었다. 그의 행방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타임스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 기사화한 것은 실종기사가 나간 지 한 달이 넘은 11월16일이었다. 바누누는 이미 9월30일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납치돼 자국으로 압송, 구금된 상태였다.

1976년부터 이스라엘 비밀 핵 시설의 초급 기술자로 근무하던 바누누는 85년 인원감축 때 해고됐다. 바누누가 81년 대학에서 좌파운동을 벌인 전력이 정보기관에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던 ‘마콘(연구소)2’는 핵 시설 안에서도 핵무기 생산을 담당하는 핵심 비밀부서였다. 해고된 바누누는 그 해 12월, 근무기간 중 비밀리에 찍은 핵 시설 사진 60여장이 담긴 필름 2통을 들고 출국한다. 태국을 거쳐 86년 5월 호주에 도착한 그는 영국국교회 소속의 한 목사를 만나 교회에 다니면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곳에서 정보를 넘길 언론사를 물색하다 선데이 타임스와 접촉하게 된다. 이 시점이 86년 9월이다. 타임스가 ‘바누누 정보’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스라엘 기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이 사실을 인지한다. 곧바로 추적을 시작한 모사드는 런던에서 9월24일 그를 찾아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시몬 페레스는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영국 영토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지시했다. 바누누를 조용히 영국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모사드가 사용한 방법은 ‘미인계’. 유럽에서 연수 중인 미국 화장품회사의 직원이라는 한 미모의 여인이 바누누에게 접근한다. 이 여인은 ‘신디’라는 암호명의 모사드 요원. 타임스 측의 경고에도 신디에게 빠진 바누누는 여인의 유혹에 못 이겨 9월30일 로마로 밀월여행을 떠났다가 대기하고 있던 모사드 요원에게 납치됐다. 나중에 밝혀진 ‘신디’의 본명은 셰릴 하닌 벤토브. 현재 44살로 바누누 납치 과정에서 얼굴이 공개돼 더 이상 비밀요원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은퇴한 뒤 남편과 함께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재판기간 동안 이스라엘 언론은 ‘안티바누누 캠페인’이라 불릴 만큼 바누누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으로 일관했다. 대학시절 그가 누드파티에 참석해 춤춘 것이나 누드모델로 활동한 경력 등을 끄집어내 그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갔다. 이러한 언론의 ‘노력’으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바누누는 이스라엘 국민에게 돈 때문에 국가기밀을 팔아넘긴 반역자가 되었다. 바누누는 “이스라엘 핵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그 같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적어도 이스라엘 안에서는 아무도 귀담아듣는 이가 없었다. 외부에 알려진 바누누의 수감생활 또한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수감기간 18년 중 12년간 독방에 감금됐고, 이는 서방세계에서의 가장 긴 독방 수감기간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창문 없는 좁은 방에서 24시간 전등이 켜진 채로 지냈다. 2년 반이 지나서야 교도소 측이 밤에는 전등을 꺼주어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었다. 다른 수감자에게는 허용되는 신문, 라디오, TV가 금지됐으며 면회도 직계가족과 변호사에게만 허용됐다. 그러나 독실한 유대교도인 그의 부모는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뒤 부모 자식의 연을 끊어 면회는커녕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

‘반역과 영웅’ 두 얼굴의 바누누

모르데차이 바누누의 출소를 환영하는 지지자들(위).1986년 공판 당시의 모르데차이 바누누.

이 같은 사실은 그의 형 메이르 바누누가 밝힘으로써 외부에 알려졌다. 동생의 구명을 위해 발벗고 나선 메이르 또한 바누누의 불법적 납치 사실과 재판의 부당성을 해외에 알리다 간첩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그러자 그는 호주에 망명을 신청해 호주시민권자가 됐고 1996년에야 혐의가 취소돼 이스라엘 입국이 허용됐다. 메이르와 서방언론의 노력으로 바누누의 이야기가 서방세계에 전달되자 유럽과 미국의 평화운동단체와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바누누 석방을 위한 위원회’가 조직되고 ‘바누누 석방기금’이 만들어졌다. 유럽 각국의 국회의원들과 영국의 여배우 엠마 톰슨, 수잔나 요크, 희곡작가 헤럴드 핀터 등이 대열에 동참했다. 바누누는 그들에게 평화운동과 반핵운동의 상징이었다. 해외에서의 그의 명성은 노벨평화상 후보에 선정될 정도였다. 97년에는 미국의 평화운동가 닉, 메리 에올로프 부부가 바누누를 양자로 입적하기도 했다.

기나긴 암흑의 세월을 지나 자유의 몸이 됐지만 바누누는 여전히 각종 금지 조치에 묶여 있다. 바누누가 여전히 이스라엘의 심각한 위협대상이라고 여기는 정보기관이 그의 석방 제지를 위해 정부와 사법부에 로비를 펼쳤음에도 예정대로 석방이 결정되자 내린 조치다. 그는 이스라엘을 떠날 수 없고 정해진 거주지에서 살아야 하며, 여행 등의 목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외국인과 대화금지, 인터넷 채팅금지, 유엔을 비롯한 이스라엘 주재 외국공관 출입금지, 공항과 항구 및 국경지역 접근금지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지 조치를 받고 있다. 각종 금지 조치는 한시적이지만, 이를 어길 경우 기간이 연장되는 것은 물론 또다시 구속의 빌미가 되는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필요 이상으로 바누누에게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 형편이다.

노벨평화상 후보에서 국가의 반역자까지 바누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BBC는 바누누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할 예정인데 그 답을 어떻게 내릴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435호 (p70~71)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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