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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로맨스 영화’ 붐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러브 인 맨하탄\'\'투 윅스 노티스\'\'하늘 정원\'\'국화꽃 향기\'(왼쪽부터)

여성의 계절인 봄이기 때문일까.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스 영화로 극장가가 화사하다. 사실 영화에서 로맨스는 가장 흔하면서도 영원한 주제이므로 계절이나 시대에 관계없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지금의 극장가는 봇물 그 자체다.

현재 상영중인 로맨스 영화만 해도 그리스 출신의 미국 이민자 2세의 좌충우돌 사랑 얘기를 그린 ‘나의 그리스식 웨딩’(조엘 즈위그 감독) 등 10여편에 이른다. 2월14일 발렌타인데이 무렵부터 시작된 이 흐름은 5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로맨스 영화는 흥행에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 영화예매사인 ‘맥스무비’가 3월14일부터 16일까지 예매량을 합산한 결과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 1위로 17.6%의 예매율을 보였고, 3위에 오른 ‘동갑내기 과외하기’(김경형 감독)는 12%, 4위에 오른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션 베리 감독)는 11%를 기록했다. 발렌타인데이 직후에 개봉되어 꾸준히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국화꽃 향기’(이정욱 감독)는 6위에 올랐다.

2월 한 달간 관객동원 순위에서도 로맨스 영화가 5위권 안에 세 편이나 들어 있다. 아이엠픽처스의 집계(서울 관객 기준)에 따르면 1위인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152만7200명을 기록해 45%의 점유율을 보였고, 2위에 오른 ‘클래식’(곽재용 감독)은 57만6550명으로 17%, 4위를 차지한 ‘투 윅스 노티스’(마크 로렌스 감독)는 17만7570명으로 5.2%를 기록했다.

로맨스 영화는 크게 해피엔딩이냐 아니냐에 따라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로맨틱)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선남선녀들의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는 기성의 가치를 옹호하는 반면, 멜로 드라마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도 결국 비극으로 끝나 전통적 가치와 제도에 대한 도전의 성격이 짙다.



현재 개봉중이거나 개봉될 영화 가운데 ‘투 윅스 노티스’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동갑내기 과외하기’ ‘나의 그리스식 웨딩’ ‘러브 인 맨하탄’(웨인 왕 감독), ‘베터 댄 섹스’(조나단 테플리츠키 감독) 등이 로맨틱 코미디에 속하고, ‘클래식’ ‘디 아워스’(스티븐 달드리 감독) ‘국화꽃 향기’ ‘하늘 정원’(이동현 감독)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 감독) 등은 멜로 드라마다. 특히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는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가슴 찡하게 하는 멜로 드라마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 독특한 영화여서 주목된다.

요즘 로맨스 영화들의 특징은 여권이 신장된 사회적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 전통적인 가족주의의 가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다. 사실 이런 흐름은 로맨스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상영중인 사회고발 드라마 ‘8마일’(커티스 핸슨 감독)에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남자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여주인공 알렉스(브리트니 머피 분)가 나온다. 미국의 보수적인 가족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보면 용납하기 힘든 설정이지만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징표다. 아무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요즘 극장가에 내걸린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

무명의 그리스계 여배우인 니아 바르달로스(툴라 역)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툴라는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쑥맥으로 나온다. 보수적인 가족들은 그리스인 신랑감을 찾아 결혼하라고 성화지만 아버지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툴라는 자신의 길을 가겠다며 새 직장을 구한다. 그러다 우연히 이상형의 남자 이안(존 코벳 분)을 만나 사귀지만 가족들은 그가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이 장벽을 넘고 결혼에 이른다. 이 영화에서 툴라는 완고한 그리스 가족문화를 거스른 자유주의자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5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인데도 미국 개봉 당시 제작비의 48배(2억4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박을 터뜨려 화제가 됐다. 바르달로스가 클럽에서 진행한 1인 코미디쇼를 보고 영감을 얻은 배우 톰 행크스가 만든 이 영화는 시종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러브 인 맨하탄

‘조이럭 클럽’ ‘스모크’로 국내에 잘 알려진 웨인 왕 감독의 ‘러브 인 맨하탄’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그러나 기존의 ‘신데렐라 영화’들과 달리 주인공 마리사(제니퍼 로페즈 분)가 스스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여성으로 나와 현실에 뿌리박은 모습을 보여준다.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매니저로의 승진을 꿈꾸며 청소부로 일하는 마리사는 열 살 된 아들을 둔 이혼녀다. 어느 날 우연히 손님의 최고급 옷을 입었는데 유력한 상원의원 후보이자 뉴욕 최고의 인기남인 크리스토퍼 마셜(랄프 파인즈 분)이 그 모습을 보고 마리사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마리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이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 마셜과의 데이트로 마리사는 한순간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달콤한 경험을 하게 되지만 만남이 계속될수록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 조바심 낸다.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는 ‘8마일’에서 에미넘을 사정없이 차버린 브리트니 머피가 부잣집 딸 새라 맥너니로 나와 블루칼라인 톰 리색(에시튼 커치 분)과 거침없는 사랑을 나눈다. 이 영화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은 여주인공 새라가 맡았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한다. 그러나 허니문을 떠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러대고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허니문이 끝날 무렵에는 거의 원수지간이 될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문제도 극복하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

투 윅스 노티스

한 달 넘게 장기 상영되고 있는 샌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 주연의 ‘투 윅스 노티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영화’지만 환경주의자인 변호사 켈슨(샌드라 블록 분)의 당당함이 빛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유서 깊은 구민회관을 철거하려는 부동산업체 사장 조지 웨이드(휴 그랜트 분)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 켈슨이 자신의 고문변호사를 맡아주면 구민회관을 유지하겠다는 바람둥이 웨이드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엮어간다.

‘베터 댄 섹스’는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하룻밤 상대’로 생각하고 잠자리를 함께한 남녀가 진정한 사랑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방백 형식으로 처리된 두 사람의 속마음이 사랑과 섹스에 임하는 남녀의 생각 차이를 잘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멜로 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나 극장 안을 한숨으로 가득 차게 한다. 옛날 멜로 드라마에는 신분상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이 파국을 맞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주로 병이나 전쟁 등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장벽으로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신분상의 차이가 사랑에 큰 장애요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진 탓이라고 풀이했다.

국화꽃 향기

소설가 김하인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국화꽃 향기’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다. 대학 영화서클에서 만난 여자 선배(장진영 분)를 짝사랑하는 방송국 PD (박해일 분)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된 그 선배와 비련의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은 어렵게 사랑을 이루지만 여자가 결혼 4년 만에 임신을 한 상태에서 위암 통보를 받는다. 이후 여자가 죽어가는 과정과 아이의 탄생 과정, 남편의 헌신적인 병간호 등 애틋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늘 정원

‘하늘 정원’도 여주인공의 스키루스(위암 말기)라는 중병이 사랑의 장애요인이다. 주변을 늘 환하게 만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주(이은주 분)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당찬 성격의 소유자. 그 성격 탓에 회사에서 해고된 영주는 우연히 호스피스 병원의 의사 오성(안재욱 분)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오성은 영주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질투는 나의 힘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질투는 나의 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신인작가상을 받았고, 올해 로테르담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질투는 나의 힘’은 드물게 여성보다는 남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다. 로테르담 심사위원단은 이 영화에 대해 “단호함과 섬세함이 어우러진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주인공 이원상(박해일 분)은 자신의 직장상사인 유부남 한윤식(문성근 분)에게 애인을 두 번이나 빼앗기지만 단순히 질투의 감정만 갖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망한다. 한윤식은 이원상에게 “난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게 딱 두 가지야. 문학, 그리고 여자. 이젠, 로맨스가 남은 내 인생의 목표지”라고 말한다. 이원상은 자신을 총애하는 한윤식 앞에서 머뭇거린다.

스크린에 사랑이 영글다

'그녀에게'

‘스페인의 국보급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는 재미있고(코미디) 섹시하고 열정적이며(드라마) 로맨틱하다.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영화’인 이 영화는 두 남자의 조건 없는 사랑을 그렸다. 조금 덜떨어져 보이는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 분)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알리샤(레오노르 발팅 분)가 식물인간이 됐지만 정상인처럼 대한다. 또 다른 남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띠 분)와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 분)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옛 연인을 잊지 못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다 투우사인 리디아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마르코는 절망한다.

이 영화에는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가 직접 공연한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 7분 분량의 흑백 무성영화 ‘애인이 줄었어요’, 그리고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가 카에타노 벨로소가 들려주는 ‘쿠쿠루쿠쿠 팔로마’ 등이 나와 영화의 매력을 한껏 더한다. ‘마주르카 포고’는 4월 중순 한국에서도 공연된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

‘5월 중순쯤 공개될 ‘화성으로 간 사나이’도 코미디와 멜로가 섞인 영화다.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인 시골마을의 순박한 우체부 승재(신하균 분)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도시생활에 적응하며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소희(김희선 분)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이처럼 다양한 로맨스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배경에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존재한다. 수입 영화는 차치하더라도 국내의 경우 적은 예산으로 탄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탓에 로맨스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즉 지난해 영화제작비에 거품이 많아 극도로 위축된 투자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전략으로 다시 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 줄거리만 재미있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로맨스 영화가 계속 흥행가도를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간동아 2003.04.03 378호 (p94~95)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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