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8

2003.04.03

종전 후 이라크 美 뜻대로 될까

1단계 군정, 2단계 친미파에 정권 이양 계획 … 중동 내 미국 패권주의 더욱 거세질 듯

  • 금상문/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입력2003-03-26 14: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은 개전 이후 최첨단 무기를 총동원해 마치 고양이가 쥐를 공격하 듯 이라크를 몰아붙이고 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함으로써 이라크전쟁은 끝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의 경우처럼 현실정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은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요원으로 일한 바 있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후 매장량 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제2대 산유국인 이라크의 석유를 확보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러한 ‘석유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식 자본주의 세계질서와 중동질서를 공고히 할 수 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세계와 중동은 미국식 자본주의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식 자본주의로 양분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운영방식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는 대규모 금융시스템과 주식시장에 중점을 두는 반면 유럽식 자본주의는 소규모 금융시스템과 노사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 강요 … 미국산 물품 잠식할 듯

    이러한 미국식과 유럽식 자본주의가 중동 내에서 양분되어 있었지만 대다수 아랍 지도층은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에 반발해 심정적으로 유럽식 자본주의에 기울어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함으로써 그동안 반전(反戰)을 내세우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오던 프랑스와 독일의 유럽식 자본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무릎을 꿇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라크전 종전 후 미국은 러시아를 가상의 적으로 하는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강요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발 신자유주의는 확산될 것이고 미국산 물품들이 이라크 시장을 잠식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라크인들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복종과 이라크인들의 생활양식이자 신념체계인 이슬람에의 복종이라는 두 가지 명제 앞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국민들은 한편으로는 과거 이란의 호메이니와 같은 인물의 출현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종전 후 이라크 내에서 이슬람 지도자의 출현을 경계하는 한편, 미국식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토양을 확산시킬 전략을 단계별로 세워두고 있다. 그 첫번째 단계는 이라크에 대한 군정 실시다. 즉 미국은 이라크를 바그다드와 남부지역, 북부지역의 3개 구역으로 나눠 군정을 실시할 예정이다. 전 예멘 주재 미국대사인 바바라 보우딘이 바그다드를 맡고, 전직 미군 장성들이 남부와 북부지역을 각각 맡을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비역 중장이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친구이기도 한 제이 가너가 이들을 총지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 번째 단계로 미국은 군정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친미성향인 이라크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후세인 정부 이후 이라크 국민들이 이라크 정부 형태를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미국은 이라크 과도정부의 틀을 짤 ‘정파회의’ 구성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이라크 내에는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북부의 쿠르드족이 있고 이라크 안팎의 사담 후세인 반대파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은 이러한 각 정파를 이용하면서 아울러 신정부 각 부처에 고문관을 둘 예정이다. 또 해외망명파 인사와 국내 출신 인사들이 반반씩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일련의 정책에 개입할 테지만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는 이슬람에서 말하는 ‘슈라(이슬람식 민주주의)’와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슬림이 대부분인 이라크 국민들은 종파에 관계없이 이슬람의 정체성을 부르짖는 강력한 이슬람 지도자의 등장을 원할 것이다. 물론 미국은 제1차 이라크 응징 결의안을 제출할 때 유엔이 이라크 재건의 중심을 맡는 계획을 함께 세운 바 있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이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의해 부결되자 유엔을 불신하게 된 미국은 제2차 이라크 결의안의 유엔 제출 자체를 철회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91년 걸프전 직후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도 이라크 국민들의 생활을 위해 석유 수출을 허용한 유엔의 결정을 존중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이라크와의 전쟁 후 유엔을 배제하면서 패권적 중동질서를 만들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유럽식 자본주의 체제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영국을 비롯하여 이라크 공격을 지지한 한국 일본 등의 국가들에게도 미국식 질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인 국가들에게는 미국이 이라크로부터 얻게 될 이권의 ‘부스러기’가 나누어질 전망이다.

    한편 그동안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일파의 출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협력기구(GCC) 국가들도 자발적으로 미국 주도의 중동질서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이들 국가는 후세인에는 반대하지만 이라크 국민과 무슬림을 위해서 유엔의 제재 조치를 해제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또한 종전 이후 미국이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그들 국가의 군주정(君主政)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2001년부터 전쟁 발발 전까지 후세인 정부와 무역협력관계를 강화해왔던 이집트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지만 종전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미국식 중동질서에 순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무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의 운명도 관심거리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와 통치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레바논 내의 합법조직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테러단체로 낙인찍은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 역시 미국 중심의 중동질서 구축을 위해서는 ‘손봐야 할’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란의 안위 역시 불안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이라크전이 끝난 후 그동안 느슨해진 미국 중심의 중동질서를 한층 강화하면서 이 지역에서 더욱 강력한 패권을 행사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분자’로 불리는 중동 내 이슬람 부흥주의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질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