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2003.01.16

개혁을 대통령에게만 맡길 텐가

  • 진재혁 / 케냐 나이로비 국제신학대학원 교수·리더십 문화인류학

    입력2003-01-08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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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을 대통령에게만 맡길 텐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해 일본을 경유했다. 일본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섰는데 뒷줄에서 그리운 한국말이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돌아보니 회사원으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청년 둘이 서 있었다.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모양새다. 그런데 줄을 선 청년이 줄을 서지 않은 청년에게 “왜 그러고 있느냐”며 핀잔을 주자 대번에 “뭘 그래, 이제 한국에 다 왔는데”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마치 한국에서는 질서나 도덕을 지키지 않고 대충 넘어가도 괜찮다는 이야기처럼 들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늘 이렇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개혁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선거의 화두는 개혁이었다. 모든 후보가 개혁에 대한 의지와 정책을 피력했고 그중 개혁의 가능성을 가장 강력히 제시한 노무현 후보가 결국 당선됐다. 한쪽에서는 안정보다 개혁을 선택한 한국 국민의 승리라며 기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확 바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 누구도 개혁의 당위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개혁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개혁은 바로 ‘나’부터 … 손해보더라도 正道 지켜야

    개혁은 단지 구세대의 퇴장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구세대가 사라진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법과 원칙이 우선하는 나라가 되지도, 성실하게 노력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국민이 되지도 않는다. 비록 20, 30대의 신선한 등장이 경이롭기는 하나 50, 60대의 동조 없이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개혁의 주도권을 쥔 젊은 세대가 구세대보다 더 순수하고 도덕적이며 원칙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신세대들 사이에서도 한국에서는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개혁 나와라, 뚝딱!” 하면 저절로 나라가 바뀌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개혁을 요구하지만 정작 남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중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제도와 행정상의 변화가 자신에게 현실적인 손해와 생활 속의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해도 기꺼이 원칙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들의 생존과 출세로 이어지는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진실로 국민과 나라를 위한 바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 3년 동안 케냐 나이로비 국제신학대학원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리더십을 가르치며 개혁이라는 화두를 놓고 고민했다. 식민주의와 미신적 운명론에 찌들어 남들의 도움만 바라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개혁과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한때 백인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미개한 부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선진 기계와 기술을 도입하고 농사법을 가르쳐 그들을 문명화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밖으로부터의 개혁과 변화가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선교사가 떠나면 그들은 부족 고유의 삶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온 비주류는 문제를 쉽게 파악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변화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개혁과 변화는 결국 그 사회의 주류들(이노베이터)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개혁은 ‘우리’가 아닌 ‘나’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의 개혁의지는 표명되었다. 이제는 나부터 행동할 차례다. 괴롭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돌아서 가더라도 바른 길을 찾으며, 왕따를 당하더라도 독야청청할 수 있는 나와 당신이 돼야 한다.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개혁이 지칠 대로 지친 삶의 현장에서 잠시 위안이 되는 막연한 바람이 아닌, 그동안 짓눌리고 당한 것에 대한 한풀이가 아닌, 새롭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위한 개혁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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