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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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정계 복귀 … 옛 실력 나올까

  • 윤양섭/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lailai@donga.com

    입력2002-12-04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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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나이 79세인 노정객이 다시 워싱턴 중앙무대에 돌아왔다. 1970년대에 국무장관을 지내며 미 현대 외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헨리 키신저가 공직을 떠난 지 25년 만에 복귀, 세인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1월27일 9·11 테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법에 서명하고 키신저 전 장관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부시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온 키신저는 9·11 비극의 정황과 사실 관계를 조사할 초당파 위원회의 장 자격으로 중앙무대에 서게 된 것에 매우 흡족해하는 듯했다.

    그는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는 모든 사실을 밝혀낼 것이며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제 키신저 위원장은 공화당과 민주당 위원 5명씩으로 구성되는 특위를 이끌며 미국이 왜 9·11 테러를 막지 못했는지, 또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어떤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지 등을 18개월 동안 조사하게 된다. 특위는 행정부 내의 누구도 소환,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은퇴 후에도 큰 영향력 … 9·11 테러 특위 위원장 맡아



    새 자리는 키신저에게는 딱 맞는 일로 보인다. 한때 공화당의 보수적인 외교·안보 정책의 뼈대를 만들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로서는 새로운 일이 21세기 안보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부시의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키신저는 언론 등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북핵문제 등 미국의 외교정책 전반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해왔다.

    지난해 3월 미국과 중국의 항공기 충돌사건으로 양국 간 위기가 고조됐을 때 그는 중국 인맥을 총동원해 위기 진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으며, 9·11 테러 이후에는 연일 언론에 나와 테러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부시를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또한 9·11 테러 직후 뉴욕 방문객이 크게 줄자 로버트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과 함께 뉴욕 홍보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북 핵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그는 강경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한 방송에 나와 “군사 능력 면에서 보자면 북한은 이라크보다 더 큰 위협”이라면서 군사적 행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키신저가 특위 위원장으로 발탁된 배경에는 인권이나 민주 등의 가치보다 미국의 국익을 앞세우는 키신저의 접근 방법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는 이미 국방부 내 최고위 정책자문 그룹인 국방정책위원회(DPB) 위원을 맡아왔다.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 보수파로 분류되는 전직 고위관리와 전문가 29명이 그 멤버. 이 그룹은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의 중동정책의 한 축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버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경력은 냉전에서 데탕트로 넘어가던 과정의 미 외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23년 독일 바이에른 주 퓌르트의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나치의 탄압을 피해 38년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그는 31세의 나이에 하버드대학 교수로 임명됐으며, 미 외교위원회(CFR)에 관여하던 50년대 말부터 저명한 외교안보 전문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회의와 국무부 고문 등을 거쳐 리처드 닉슨 대통령(1969∼74)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1974∼77) 시절 국무장관(1973∼77)을 지냈다. 73∼75년에는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기도 했다.

    국무장관 시절 ‘핑퐁외교’를 통한 중국과의 수교, 월남전 종전, 군축협정 등 굵직한 미국의 주요 정책 결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그는 73년에 월남전 종전협정을 이끈 공로로 베트남 협상 대표인 레둑토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73년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살바도르 아옌데 좌파정권을 유혈 쿠데타로 전복시키는 데 연루됐다는 주장이 나와 ‘전범’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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