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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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術 코리아’ 검은 대륙 가다

한방의료봉사단 에티오피아서 봉사활동 … 환자 2천여명에 침과 뜸, 사랑의 진료

  • < 글·사진/ 아디스아바바=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04-10-15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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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術 코리아’ 검은 대륙 가다
    6월29일 오전 10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블랙라이언 국립병원. 터크레이 아크멜드씨(40)가 네 살배기 소년 칼리드의 손을 잡고 김부환씨(41·한의사)의 진료실에 들어왔다. ‘허준의 후예’ 한의사들이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는 장소였다. 터크레이씨는 이 나라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아들의 병을 치료해 달라”며 눈물부터 쏟았다.

    소년의 질환은 선천성 청각장애. 아버지는 간절한 눈길로 동양에서 온 ‘신기한 의사’를 바라보았다. 김씨는 자신에 대한 이 맹목적인 믿음을 저버릴 수도, 그렇다고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김씨는 자신이 여섯 살 때 척추결핵을 앓아 등뼈가 썩어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맡겨졌던 당시를 떠올렸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는 화장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옆에서 통역하던 국제협력단원 박세문씨도, 김씨를 돕고 있던 블랙라이언 병원의 간호사 매스펜씨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을 닦고 온 김씨는 담담해졌다. 그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짧은 시간에 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소년에게 보약을 지어주었다. 소년의 청각장애를 치료해 주지는 못했지만 한 가닥 삶의 희망을 준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거듭 고마움을 표시하고 병실 문을 나섰다.

    4일간 고된 일정에 탈진하기도



    ‘仁術 코리아’ 검은 대륙 가다
    “의료봉사의 1차 목적은 치료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의 봉사를 통해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조차 없던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면 그들도 새 방법을 찾아나설 것이고, 결국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김씨는 “비록 내 등은 곱사등이 되었지만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빚을 갚기 위해 해외의료 봉사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에티오피아 봉사단장 진선두) 소속 한의사 9명과 자원봉사자 안상명씨 등 10여명은 이곳에서 6월26일부터 4일간 모두 2537명(재진환자 1000여명 제외)의 환자에게 희망의 의술을 전했다.

    돈과 시간을 희생하며 봉사활동에 나선 한의사들의 진료현장은 감동 그 자체. 피부병에 걸린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비닐장갑도 끼지 않고 약을 발라주던 박경미씨(34·한의사), 긴장된 상태에서 진료에 집중하느라 마지막 날 밤 결국 탈진하고 만 김윤희씨(29·한의사)와 안현주씨(25·한의사), 대학 때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던 진상해씨(43·한의사)와 최단시간에 가장 많은 해외봉사를 하겠다는 김길섭씨(37·한의사), 봉사 자체를 즐긴다는 김동욱씨(41·한의사) 등도 몸을 아끼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진료실은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혼잡을 막기 위해 미리 2000장의 진료권을 나눠주었는데 이를 돈 받고 되파는 이들도 있고, 진료권을 받지 못한 이들이 병원으로 와 무조건 치료해 달라고 애원해 추가로 500여명을 진료해 주었다. 국영 에티오피아 텔레비전(ETV) 등 몇몇 미디어에서는 열띤 의술의 현장을 상세히 보도했다.

    ‘仁術 코리아’ 검은 대륙 가다
    이번 의료봉사 기간에 찾아온 환자들 가운데는 호흡기와 소화기 계통의 질환을 앓는 이가 많은 점이 특이했다. 에티오피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이 600달러에 불과한 빈국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또한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500m의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천식 환자가 많을 뿐 아니라, 주식인 인젤라가 신맛인 데다 함께 먹는 소스가 매워 위장병 환자도 많은 편.

    다행히 이 계통의 질환은 침과 뜸 치료만으로도 금세 호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6개월간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렸던 아베베씨(70)가 코의 통증이 심하다고 호소하자, 진선두 단장(45)은 먼저 맥을 짚은 뒤 사탕 1개를 건넸다. 체력이 너무 약한 사람이 침을 맞으면 어지럼증이 올 수 있는데, 사탕은 링거를 맞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아베베씨의 코와 머리 쪽에 침을 놓고 10여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눈물과 콧물이 멎었다. 아베베씨는 고맙다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봉사활동이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다. 의료봉사활동을 앞두고 이곳 정부는 KOMSTA의 한약재 반입을 거부했다. 97년 KOMSTA의 두 번째 방문 때 한약을 받은 한 환자가 시장에서 ‘신비한 약’이라고 내다팔아 그것을 사먹은 이가 설사한 것이 당국에 보고됐기 때문. 결국 세 번째 방문인 2001년에는 한약재를 갖고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김창수 주(駐)에티오피아 대사가 보건당국자를 설득, 한약재 반입을 허가받아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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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 현장인 블랙라이언 병원, 대사관 관계자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 것은 짧은 봉사 기간과 치료기구 미비 때문에 근본치료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더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현지 한방병원이나 정부의 지원을 통해 한의사가 상주하면서 지속적인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 KOMSTA는 이런 점을 감안해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 한방병원을 설치해 운영중이다. 이들 병원에 한의사 1명 이상을 파견, 1회성 의료봉사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경우 법률적 미비 등 여러 가지 여건상 당분간 병원 설립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곳 보건당국이나 지식인들이 한의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선 아직도 치료의 70~80%를 주술과 전통 약초에 의존하고 있어 전통의약을 현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는데 그 모범 케이스를 한의학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

    현지에 한방병원 건립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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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MSTA 진료실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이자 아디스아바바대 약대학장인 네구수 메코넨 교수(45)는 “한국 방문 후 치료현장을 보고 한의학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면서 “한의학을 모범 삼아 우리 고유의 전통의학도 현대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2회나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온 임일규 KOMSTA 이사장(66)은 “해외 의료봉사를 하려면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 언어 장벽, 생소한 음식, 낯선 분위기, 환자들의 역겨운 냄새를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면서 “마음을 열면 낯선 그들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KOMSTA는 지난 93년 네팔과 베트남 등 어려운 지역을 대상으로 모두 33차례의 봉사를 펼쳐왔다. 단원은 모두 600명, 이중 한의사는 300명 정도. 나머지는 일반 회원들이다. KOMSTA는 올해 7월 말 라오스를 비롯해 고르노 알타이, 인도네시아 등 5개 지역에 의료봉사단을 추가로 파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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