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2002.07.18

“2억원 웃돈 주고 교통지옥에 산다”

서울 도곡동 초고층 주거단지 도로 북새통 … 최악의 ‘교통 대란’ 우려 지점

  • < 안영배 기자 > ojong@donga.com

    입력2004-10-15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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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억원 웃돈 주고 교통지옥에 산다”
    지난 7월4일 오후 6시30분경 서울시 강남구 도곡2동 매봉터널 앞 교차로. 언주로를 따라 분당으로 이어지는 왕복 8차선 도로와, 남부순환로인 대치역과 양재역 구간의 왕복 8차선 도로는 매봉터널 교차로(구 현대체육관 앞) 부근에서부터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교차로에서 수신호를 하는 교통경찰은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바쁜 모습이었다. 사정은 한 블록 떨어진 도곡역 교차로에서도 마찬가지. 선릉로를 따라 개포동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이 교차로 역시 차량의 흐름은 거북걸음보다 느렸다.

    강남 압구정동 사무실에서 분당의 아파트로 퇴근하는 자가용 운전자 박모씨(38·회사원). “언주로를 따라가다 영동세브란스 병원을 거쳐 매봉터널을 만나면서부터는 습관처럼 정신을 가다듬게 된다. 매봉터널이 ‘지옥의 문’이라면 매봉터널 교차로는 사람의 인내를 시험하는 지옥훈련소쯤 되는 것 같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연신 혀를 내두른다. 영동세브란스 병원 앞길에서 남쪽으로 1km 남짓한 영동3교까지 통과하는 데 30분 이상은 허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

    이곳의 교통 혼잡은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상이다. 매봉터널 교차로 부근에서 19년째 구두닦이업을 해오고 있는 손모씨는 “러시아워 때 교통경찰의 수신호마저 없다면 손쓸 방법이 없을 정도”라고 밝힌다.

    손씨는 또 “(교차로 건너편의 한 블록을 가리키며) 저곳에 4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선 이후부터 교통이 더 복잡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손씨가 가리킨 곳은 도곡2동의 명물로 부상한, 이른바 ‘마천루 타운’이라는 블록이다. 매봉터널 교차로에서 영동3교 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왼쪽으로 거대한 초고층 건물군이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곳이다.

    삼성 1499가구도 올 10월 입주



    “2억원 웃돈 주고 교통지옥에 산다”
    마천루 타운이 생겨나면서부터 이곳의 교통량이 증가했다는 것은 서울경찰청의 교통량 조사자료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서울 도심을 제외한 주요 간선도로(26개 주요 교통지점 대상) 중 2000년에 비해 교통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곳은 모두 4개 지점. 수서IC(39.0% 증가)가 교통량 증가율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신대방동 보라매 타운 앞 상도터널(35.2%), 총신대 입구(21.7%), 그리고 도곡동 마천루 타운 앞 매봉터널(16.2%)이 2~4위를 기록했다. 이들 교통지점은 모두 아파트 재개발 혹은 신축으로 인한 인구 증가를 교통량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천루 타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천루 타운과 마주보고 있는 도곡동 우성4차 아파트 주민 김모씨(53·여)는 “지금도 교통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 아파트 코앞에 63빌딩보다 높은 건물들이 또 들어선다는 말을 듣고 이곳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고 말한다. “이제는 정신이 사나워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마천루 타운은 이름에 걸맞게 공룡 같은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는 우성캐릭터빌(지상 26층 규모, 아파트 47가구·오피스텔 126가구), 우성캐릭터199(지상 23∼31층 규모, 아파트 199가구·오피스텔 434가구), 대림아크로빌(지상 46층 규모, 아파트 466가구·오피스텔 290가구), 현대비전21(지상 27층 규모, 아파트 232가구·오피스텔 162가구) 등 주상복합건물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 올 하반기 이후에는 지금 건물들보다 훨씬 규모가 큰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속속 들어설 예정이다.

    한 개 동의 층수가 어림잡아 50층을 훌쩍 뛰어넘는 건물들이 주인을 맞기 위해 마무리 공사에 한창인 모습도 눈에 띈다. 삼성이 초고층 주거복합단지(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 상가 등)로 내세운 삼성타워팰리스 1차 건설 현장이다. 이곳에는 대지 1만여평에 63빌딩보다 높은 4개 건물(최고 66층 규모)이 들어서, 1499가구가 올 10월에 입주하게 된다.

    삼성이 야심작으로 내놓았다는 이 주상복합건물은 분양 때부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상 262m 높이의 이 아파트에서는 서쪽으로 인천이, 동쪽으로는 하남 미사리가 보인다. 진도 6.0 규모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와 초속 35m의 강풍을 이겨내는 내풍설계를 갖추었다. 헬스클럽,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의 스포츠시설 제공은 물론 클럽하우스, 게스트룸, 실버하우스 등 부대시설로 분양권자들의 구매 의욕을 북돋워놓기도 했다.

    “2억원 웃돈 주고 교통지옥에 산다”
    분양 방식도 독특했다.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살 수 있도록 서구식 상류사회 시스템을 구축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 특유의 귀족적 이미지를 주거문화에도 도입한 셈이다.

    삼성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마천루 타운’ 건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타워팰리스 1차에 이어 바로 인근에 세워지고 있는 타워팰리스 2차(55층 규모 2개 동, 957가구)는 내년 2월 입주 예정이고, 그 다음해인 2004년 5월 경에는 타워팰리스 3차(69층 규모 1개 동, 610가구)가 입주 바통을 잇는다.

    당연히 분양가도 비싸다. 다양한 평형(최저 35평형에서 최고 101평형)을 갖춘 타워팰리스 1차 분양가는 최저 2억5000만원에서 최고 17억6000만원. 같은 평형이라도 층이 높을수록 분양가가 더 비싸진다. 이곳에서 타워팰리스 분양권을 주로 취급하는 부동산 관계자는 “분양가에다 2억원에서 3억원 사이의 웃돈(분양권)이 얹어져 거래되고 있는데, 그나마 지금은 매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분양권 거래는 타워팰리스 1차분보다 내년 2월 입주 예정인 타워팰리스 2차와 그 다음해인 2004년 5월에 입주 예정인 3차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부동산 업계의 평가다. 특히 건물 외양이 선풍기 날개 모습처럼 꾸며진 타워팰리스 3차의 경우 최고급 스포츠시설도 갖추게 되는데, 최고 로열층으로 통하는 68평형 남향은 웃돈이 3억원을 넘어 거래된다고 한다.

    아무튼 삼성의 도곡동 타워팰리스 프로젝트는 각종 신기록을 내고 있다. 총 2만3000여평 대지에 평균 63빌딩 높이의 건물 7개 동 3066가구가 들어서는 삼성타워팰리스(1∼3차)는 한 지역(단일 블록) 안에 들어서는 단일 브랜드 주상복합아파트로는 국내 최대 규모. 인구 수로는 이 블록 안에 자리잡은 주상복합아파트 4000여 가구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이곳의 교통문제는 어떻게 될까. 타워팰리스의 한 가구당 자동차 보유 수를 1.5대로만 잡더라도 모두 4600대에 이르는데, 웬만한 강남 아파트 주거민의 자동차 보유 수는 평균 2대 이상이다. 여기다가 인근 주상복합 입주자 차량에다 오피스텔 입주자 차량까지 얽힐 경우 ‘집 앞 정체’로 주차장에서 빠져나오기조차 힘들 거라는 게 교통 전문가들의 경고다.

    “2억원 웃돈 주고 교통지옥에 산다”
    문제는 마천루 타운 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당연히 교통 상습정체 지역인 인근 도로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도곡단지 개발계획에 따른 유발 교통량’ 자료(아래 표 참조)에 따르면 그 심각성이 극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천루 타운으로 대표되는 도곡단지는 현재 6개 건물이 준공돼 있는데 2005년까지 삼성타워팰리스를 비롯해 라성프라자, 도곡동 현대빌딩(구 현대체육관 부지), 삼성엔지니어링 사옥, 도곡동 재건축 주공아파트 등이 준공 예정 혹은 건설 중에 있다. 모두 12개의 이들 고층건물은 대규모 교통유발 시설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교통영향평가 대상에 해당된다.

    2005년 유발 교통량 조사 자료에 의하면 이들 건물 전체에서 일으킬 수 있는 교통량은 첨두(peak time) 시간대인 오후 6시에서 7시를 기준으로 할 경우 시간당 4239대(pcu/h, 이하 단위 생략). 6개 새 건물 중 타워팰리스(1∼3차)만 2992대로 전체의 70.6%를 차지한다.

    흥미로운 점은 2005년까지 새 건물들이 들어서지 않았을 경우와 새 건물들이 완전히 들어섰을 경우의 ‘소통 수준’ 분석 결과(표 참조).

    먼저 건물신축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자연증가)의 2005년 교통량 상황. 매봉터널 교차로(구 현대체육관 앞)에서의 유발 교통량은 총 차량 1만2660대에 차 한 대당 지체시간은 161.9초. 가로구간으로 따질 경우 남부순환로인 매봉터널 교차로에서 숙명여고 앞까지(550m)의 평균 통행속도는 18.1(km/h), 언주로인 구룡초등학교에서 매봉터널 교차로까지(900m)는 15.7(km/h)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2005년에 새 건물이 완공됐을 경우 교통량은 현저히 악화된 상황으로 측정된다. 매봉터널 교차로의 유발 교통량은 총 차량 1만4740대에 차량 지체시간은 273.8초. 무려 2분이나 더 지체된다. 또 가로구간의 경우 매봉터널 교차로에서 숙명여고까지 평균 통행속도는 17.0(km/h), 구룡초등학교에서 매봉터널교차로까지는 8.0(km/h)로 계산된다. 정체가 심한 구간에서는 무려 2배 가까이 속도가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추정 계산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마천루 타운 일대는 서울 강남지역에서 최악의 교통대란 지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교통영향평가 전문가는 “이 지역의 경우 도로를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등 교통대란에 대한 대안을 전혀 마련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교통영향평가로만 따진다면 서울시가 도곡2동에 지속적으로 초고층건물이 들어서도록 허가했다는 게 무리수였다”고 말한다. 또 익명을 요구한 교통정책 전공 대학교수는 “도곡지역 마천루 타운의 경우, 개별 시설물에 대한 교통영향평가가 아닌 서울시 전체의 교통정책으로 평가할 때는 (건축 허가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저층 아파트 지역 한복판에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숲이 신기루처럼 솟은 마천루 타운에 대해 인근 지역 아파트 주민들은 지금도 붉은 글씨로 쓴 현수막을 내걸고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심각해진 교통난 등을 호소하며 삼성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타워팰리스에 대한 입주 열기 또한 식지 않은 상태다. 입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빌딩 안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교통 불편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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