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2016.06.15

셀프 메이드 맨

하루 만에 뚝딱 모험놀이터

‘놀이터 만들기 놀이’에 빠지다

  • 김성원 적정·생활기술 연구자 coffeetalk@naver.com

    입력2016-06-13 14: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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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놀이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아이들이 ‘놀이’를 만드는 놀이터다. 불을 사용하거나, 땅에 구멍을 파거나, 나무에 오르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판자와 재활용품으로 아지트나 나무집을 짓는 등 낙엽과 진흙 같은 자연 소재를 이용해 국자와 망치와 냄비로 아이 자신이 ‘해보고 싶은’ 놀이를 실현하는 놀이터다. 다양한 놀이가 벌어지고 끊임없이 변하는 놀이터다. 금지하기보다 격려하는 놀이터다. 부모는 멀리서 지켜보다 간혹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다가가고 안전에 주의하게 할 뿐이다. 안전문제로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위험과 모험은 성장에 필수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실컷 놀면서 아이들이 ‘사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이들 스스로 놀게 하라

    세계 최초 모험놀이터(Adventure Playgrounds)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덴마크 코펜하겐 교외에 만들어졌다. 덴마크 조경사인 쇠렌센(C. Th. Sϕrensen)이 폐자재놀이터를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쇠렌센은 관찰 끝에 깔끔한 놀이터보다 쓰레기가 널려 있는 공터에서 아이들이 더 즐겁게 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건축가 단 핑크(Dan Fink)가 디자인하고 초대 플레이 리더(Play Leader)인 존 베르텔센(John Berthelsen)과 어린이들에 의해 최초 모험놀이터가 만들어졌다.

    1945년 이 놀이터를 방문한 영국 앨런(Allen) 부인이 깊은 감명을 받아 폭격으로 철거된 런던 공터에 모험놀이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은 모험놀이터는 발상지인 덴마크로 역수입됐고 1950~70년대 스웨덴, 스위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호주로 퍼져 나갔다. 이후 ‘플레이파크’라는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 보급돼 현재 1000개 정도의 모험놀이터가 있다. 일본에서는 오무라 겐이치·아키코 부부가 1973년 앨런 부인이 쓴 ‘도시의 놀이터’를 번역해 소개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켜 일본 전역에 모험놀이터가 만들어졌고, 특히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원이나 대다수 마을놀이터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고 관리한다. 안전사고와 각종 민원 때문에 놀이기구에서 모험적 요소는 점점 사라지고 아이들은 더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놀이기구 업자들이 만든 그네, 미끄럼틀, 철봉, 시소 등 플락스틱과 금속으로 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조합놀이시설이 놀이터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북유럽의 모험놀이터, 생태놀이터, 자연놀이터 사례를 접한 젊은 부모들의 요청에도 행정 당국은 각종 규제와 절차를 이유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부모들이 자율적으로 놀이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주 ‘컨템퍼러리 디자인 플레이 DIY(Contemporary Design Play DIY)’, 애리조나 주 ‘셀프빌트 어드벤처 플레이그라운즈(Self-Buit Adventure Playgrouds)’ 등 세계 곳곳에서 놀이터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5월 28일 경기 안산 벚꽃사2(사    2동)에서 가제트공방의 이광익 씨가 상호지지구조 만들기 놀이 워크숍을 개최했다. 광주에서는 하정호 씨와 놀이활동가들이 재활용 재료와 자연재료, 간단한 목공기술과 적정기술을 이용해 저비용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을 기획 중이다. 서울에서는 ‘문화로놀이짱’이란 청년단체가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다. 다들 처음 해보는 거라 아직 멋지고 세련된 놀이시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른들도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워크숍이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터 만들기 놀이’다. 다행히 ‘플레이그라운드 아이디어스’(www.playgroundideas.org)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로 놀이터를 만드는 150여 가지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하루 만에 뚝딱

    미국 오하이오 주 콜레인에는 기적처럼 만들어진 놀이터 5개가 있다. 이들 놀이터는 짓는 데 닷새 걸린 메가랜드공원을 제외하고 모두 하루 만에 완공됐다. 2008년 스카이라인공원, 2009년 클립파드공원의 바운드리스 놀이터, 2011년 WERT가족공원놀이터, 2012년 팜공원이 단 하루 만에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업체 제품으로 만든 조합놀이시설을 설치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시민이 기본 디자인에 참여하고 함께 시공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이러한 활동을 주도한 것은 콜레인 지역놀이위원회다. 지역놀이위원회는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디자인에 반영하고 놀이터 조성 기금을 마련했으며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했다. 무엇보다 이 위원회는 설계사무소, 조경회사, 건축회사 등이 시민과 함께 놀이공원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했다.  

    독일 베를린의 AKIB는 1994년 10월 설립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놀이단체로, 도시에서 모험놀이터를 만들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대지 확보인데 텃밭에 부대시설로 모험놀이터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물론 독일과 우리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도쿄 플레이(Tokyo Play)’란 단체가 있다. 본래 놀이학습회였던 조직이 영국 ‘런던 플레이(London Play)’의 영향을 받아 2010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재조직했다. ‘런던 플레이’의 표어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수도’인데 도쿄 플레이 역시 ‘모든 어린이가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도쿄’를 목표로 정했다.

    이제 놀이조차 돈을 주고 소비해야 하는 사회를 돌아볼 때다. 부모 세대는 어린 시절 놀이터가 없어도 골목과 공터, 운동장에 모여 신나게 놀았다.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모험과 위험을 즐길 공간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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