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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함정

풍선효과로 수학학원만 북적…영어 만만히 봤다가는 입시에서 낭패, 학교 수업도 변해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함정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함정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 절대평가와 관련해 문제 유형과 난이도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학생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동아일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고교 2학년 김모 양은 얼마 전 큰 결심을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녀온 영어학원을 과감히 끊은 것. 이유는 자신이 치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바뀌기 때문이다. 김양은 “중학생 때부터 영어는 늘 만점 가까이 받았기 때문에 90점(1등급)은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영어 공부를 할 시간에 다른 과목을 챙기는 게 나을 것 같아 영어학원을 끊었다”고 밝혔다.  

4월 27일 교육부 산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영어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없애고 사교육비도 경감하겠다는 취지로 2018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 절대평가 도입을 발표했다. 대학입학전형은 크게 정시모집과 수시모집으로 구분된다. 그중 정시는 수능 점수와 내신으로 선발하는데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영어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2015년 10월 교육부가 영어 절대평가 관련 기본 계획을 발표하자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더는 영어 공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특히 김양처럼 평소 영어 성적이 상위권일수록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기는 현 방식대로라면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상위 4% 이내에 들어야 하고, 만점자가 4%를 넘으면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 이하로 미끄러진다. 결국 1등급에 들려면 무조건 만점을 받아야 하는 구조였다. 그에 비해 절대평가는 90점 이상을 받으면 누구나 1등급으로 인정되니 수험생들은 한결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표 참조).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함정

영어 수준 하향평준화 우려

영어 절대평가 도입 이후 영어학원 수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986곳이던 영어학원이 지난해 871곳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 자리한 영어 전문학원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치동 영어학원 한 관계자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 방안이 발표된 이후 학원 매출이 20~25% 줄었다. 물론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이 중요해지다 보니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는 수강생이 반짝 늘기도 하지만 내신 영어 대비는 기간이 길어봤자 한 달이어서 장기적으로 학원 운영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영어학원 관계자도 “고교생 대상의 수능 대비 여름방학 영어특강을 중학생 대상으로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은 교육부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해도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영어 대신 수학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사교육시장의 무게추도 영어에서 수학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교육부와 통계청이 전국 1244개 초중고교 학부모 4만3000명을 대상으로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고등학생의 경우 수학 사교육비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전년 대비 인당 4000원 올라 전체 상승분의 66.7%를 차지한다. 그에 비해 영어는 초등학생의 경우 전년 대비 7.3% 감소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아이들이 수학 공부에서 느끼는 고통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영어학원을 끊은 대신 수학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는 영어의 변별력 부담이 국어와 수학 등 다른 과목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의 발생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학생들 사이에서 ‘수능 영어는 쉽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애 샤론코칭 앤드 멘토링 연구소 대표는 “만점을 받아야 했던 때에 비해 다소 수월해졌을 뿐 난도가 낮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능 영어가 마냥 쉬울 거라는 생각에 완전히 손을 놓았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상위권은 실력 유지를 위해 꾸준히 공부할 필요가 있고, 중·하위권 역시 수준 향상을 위해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에 대한 관심이 줄자 전문가들은 “절대평가로 영어 실력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절대평가로 바뀐 수능 영어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교육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수능이 가진 문제점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기·쓰기 실력도 향상돼야

먼저 EBS 연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현재 수능 영어와 EBS 교재 연계율은 70~80%에 이른다. 게다가 영어 지문까지 똑같이 출제되다 보니 애써 영어 지문을 해석하느니 아예 EBS 한글 번역본을 통째로 외워 시험을 보는 학생이 상당수다. 서울 반포에 사는 한 학부모는 “중간·기말고사 영어도 수능 스타일로 출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도 시험기간만 되면 교과서를 달달 외운다”고 말했다.

만약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영어 실력의 질적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서울대는 201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영어 영역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했다.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영어 변별력이 떨어지리란 예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서울대는 수능 영어 변환점수를 2등급부터 각각 0.5점씩 감점하는 입시안을 택했다.

그렇다고 모든 대학이 영어가 가진 변별력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만 잘하면 영어는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연세대는 영어 영역의 등급별 점수 차를 대폭 늘려 영어 변별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세대의 영어 영역 등급에 따른 환산점수 차는 5~20점으로, 등급별 세부 환산점수를 보면 1등급 100점, 2등급 95점, 3등급 87.5점, 4등급 75점…8등급 12.5점, 9등급 5점이다. 1등급과 9등급 간 환산점수 차는 95점에 달한다.

결국 목표 대학이 확실한 경우를 제외하고 학생 대부분은 수능 영어 점수에 맞춰 대학별 입학전형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입학전형은 대학 자율사항이다. 영어가 상대평가였을 때도 반영 비율 등은 대학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절대평가 도입으로 대학별 반영 방법이 달라 차이가 부각돼 보일 뿐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을 계기로 공교육의 영어교육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길영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과도한 점수 경쟁을 지양한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가 있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영어교육의 궁극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영어교육의 본질인 의사소통 능력 향상과 영어 격차 줄이기에 무게를 실으려면 학교 영어 수업부터 바뀌어야 한다. 절대평가 도입으로 문제풀이식 시험에 대비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말하기와 쓰기를 포함한 전반적인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수업이 가능하도록 교수법과 관련해 별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6.06.15 1042호 (p44~45)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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