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2016.06.15

특집 | 불통 정부, 교육독재

빼앗긴 캠퍼스에도 봄은 오는가

총장 임명권으로 쥐락펴락, 예산 삭감으로 압박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6-10 17: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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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가 다소 지체했지만 결단해준 데 대해… 글쎄… 고맙다고 할까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참 좋습니다. 직선제로 뽑힌, 능력과 비전이 있는 우리 총장님이 학교 발전을 잘 이끌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병학 부산대교수회 회장(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은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6월 9일 전호환 신임 부산대 총장이 공식 취임한 데 대한 촌평이었다. 전 총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맞바람을 향해 돛을 펴는 범선처럼 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진행된 축하공연 ‘배 띄워라’에 대해 부산대 측은 “넘실대는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부산대의 미래를 축원하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부산대 앞에 몰아치는 ‘맞바람’과 ‘파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총장이 대통령 임명장을 받아 이 배를 이끄는 선장이 되리라 예상한 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산대는 현재 전국 국립대 가운데 유일하게 직선제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학교다.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2012년 간선제로 학칙을 고쳤다 지난해 되돌렸다. 이후 지속적으로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아왔다.



    부산대 총장 임명에 환호하는 까닭

    ‘우리의 선택에 다 함께 책임질 때, 우리는 당당해질 것입니다.’



    1월 8일 안홍배 당시 부산대 총장직무대리가 학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부산대가 총장직선제 유지 대가로 예산 18억7000여만 원을 삭감당했음을 알리는 글인 만큼, 마디마디 절박함이 묻어났다.

    교육부는 2014년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총장직선제 개선 완료 여부를 지원액과 연계하고 △지표평가 시 관련 배점을 2.5점으로 하며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학교라도 지정된 유예기간까지 총장선출제도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배정액의 50%를 삭감한다고 밝혔다. 이미 부산대에 배정됐던 지원금이 깎인 건 이 영향 때문이다.

    부산대는 지난해 6월에도 국립대혁신지원사업(PoINT) 대상에서 제외돼 9억3000만 원을 놓친 일이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당시 평가에서 부산대는 지역거점국립대 가운데 1위를 했다. 하지만 ‘총장직선제를 개선하지 않은 대학은 사업 선정을 취소하거나 사업비를 지급하지 않고, 이미 교부된 사업비는 전액 환수한다’는 해당 사업 기본계획의 벽에 막혀 고배를 마셨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안 총장직무대리가 교수들에게 편지를 띄운 것이다.

    학교의 재정위기를 막고자 부산대 교수들이 선택한 건 모금이었다. 1190명이 인당 120만 원씩 추렴해 13억5000만 원을 마련했다. 전병학 교수에 따르면 “누구 한 사람 싫다고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박찬호 부산대교수회 부회장(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이에 대해 “교육부 예산 삭감 결과가 당장 장학금 축소, 교육 여건 개선 중단, 해외 파견 기회 감소 등 학생 피해로 이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피해는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는 얘기다. 이런 교수들의 움직임에 동문회와 부산시민들도 힘을 보탰다. 십시일반 학교발전기금이 쌓였다. 안 총장직무대리는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은다면 머지않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정면 돌파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5개월여가 지난 5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전호환 교수를 제20대 부산대 총장으로 임명했다.

    현행법상 국립대 총장은 대학 추천을 받아 교육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부산대는 지난해 11월 직선제 투표를 통해 전호환, 정윤식 교수를 총장 후보 1·2순위로 선출해 교육부에 추천한 상태였다. 이후 반년가량 묵혀두던 인사를 정부가 뒤늦게 단행한 것이다. 왜 그동안 부산대 총장 자리를 공석으로 뒀는지, 그리고 왜 지금 임명장을 줬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하지만 부산대는 들떴고, 다른 국립대도 마찬가지였다. 정민걸 공주대교수회 회장(환경교육과 교수)은 “전호환 총장 임명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다. 부산대 교수들에게 축하인사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대학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 일찌감치 총장으로 선출된 후보를 정부가 뒤늦게 임명한 것이 왜 기뻐하고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더군요. 우리나라 국립대가 처한 비상식적인 상황이 새삼 느껴져 씁쓸했습니다.”

    정 교수의 말이다. 그가 ‘비상식적인 상황’을 인식하기 전 축하부터 한 건 “부산대 총장 취임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교수가 몸담고 있는 공주대는 2014년 3월부터 지금까지 총장 자리가 비어 있다. 대학 구성원이 일찌감치 신임 총장 후보로 선출한 김현규 교수에 대해 교육부가 임명제청을 거부한 탓이다. 김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 임명제청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총장 공석 상태는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직선제를 고수한 부산대와 달리 우리 학교는 교육부 요구대로 간선제 방식을 통해 총장 후보를 선출했다. 그런데도 아무 설명 없이 임명제청을 거부한 이유를 모르겠다. 총장 공석 사태 때문에 공주대는 그동안 중·장기적인 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했고 대학행정도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고 답답해했다.

    현행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르면 대학 총장이 임기 중 사고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면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60일 이내에 대학이 2인 이상의 총장 후보자를 교육부 장관에게 추천해야 한다.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장 자리가 600일 넘게 공석인 대학이 공주대를 포함해 3곳이나 있다. 경북대,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등 다른 대학도 모두 2014년 총장 후보를 선출해 교육부에 추천했으나 임명제청이 거부됐다. 후보자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승소했으나 교육부가 항소했고, 현재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에 대해 조흥식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상임회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과거 정부는 대학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총장 선거를 치러 1, 2순위 후보를 추천하면 보통 1순위를 총장에 임명했다. 예외적으로 임명제청을 거부할 때는 그 이유를 알려줬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아무 설명도 없이 총장 임명제청을 거부하고 있다. 아예 임명제청을 거부할지 말지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차일피일 시간만 끄는 사례도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월 총장 후보를 교육부에 추천한 전주교대의 경우가 후자에 속한다. 이 대학은 지금까지 총장 공석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앞의 세 대학과 달리 교육부로부터 명시적인 ‘거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교수회 등의 문의에 대한 답변은 ‘진행 중’이라는 게 전부라고 한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그동안 다른 대학에서 임명제청 거부 통보를 받은 후보들이 행정소송을 내고, 법원이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반복되니 교육부가 수를 낸 것 같다. ‘절차 진행 중’이라는 핑계로 아무 처분도 하지 않으니 대학으로서는 더욱 손쓸 방법이 없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면 결국 교수들이 나가떨어지리라고 여기는 것 아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행정 공백 피해 배상하라”

    그렇다면 정부는 이처럼 일부 국립대 총장 임명을 지연함으로써 뭘 얻는 걸까. 이에 대해 최근호 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는 “대학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답했다. “대학이 추천한 총장 후보를 계속 거부하다 보면 결국 대학총장을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정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교수가 그 사례로 꼽은 것이 한국체육대(한국체대)다. 교육부는 2013년 이래 연거푸 4번 한국체대의 총장 후보 임명제청을 거부했다. 약 2년에 걸쳐 후보 8명을 내친 뒤 선택한 인물은 경북 구미지역에서 3선을 한 전직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다. 이에 대해 한 대학교수는 “해당 후보는 체육계 경력조차 일천했다. 결국 정권과 친한 정치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그동안 후보로 추천된 수많은 명망가에게 수모를 주고, 우리나라 최고의 체육대학을 혼란에 빠뜨린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총장 임명제청이 거부될 때마다 새로운 후보를 추천한 한국체대와 달리, 기존 후보 총장 임명을 요구 중인 다른 대학은 ‘낙하산 총장’을 피한 대가로 장기간의 행정 공백을 감수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 없는 대학’ 재학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2014년 9월부터 21개월째 총장 공석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경북대의 경우 교육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진 중이다. 법조동문회와 대구지역변호사회 등의 자문을 받아 5월 25일 소송인단 모집을 시작했는데, 6월 1일 이미 3160명이 모여 당초 목표 인원을 초과했다. 박상연 경북대 총학생회장(물리교육과 10학번)은 “법적 절차를 밟고자 일일이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최소 1000원 이상씩 소송비용도 부담하게 했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 21개월이면 군대 갔던 남자친구도 돌아올 시간 아닌가. 그 긴 시간 동안 총장 없이 지내며 경북대의 교육환경과 각종 지표가 크게 후퇴한 걸 모두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총학생회장에 따르면 현재 경북대의 전임교원 확보율은 9개 거점대 가운데 8위에 불과하다. 취업률도 3년 연속 하락했다. 학생들이 느끼는 정신적 상처도 크다.   

    “경북대 학생들은 몇 년째 ‘총장직무대리’ 도장이 찍힌 졸업장을 받고 있어요. 취업 면접장에서 ‘총장이 없는데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느냐’는 질문도 받고요. 이 과정에서 올해로 개교 70주년을 맞은 학교의 위상과 명예가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박 총학생회장의 말이다. 그는 “이미 법원은 우리 학교를 비롯한 각 대학총장 후보자들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뽑힌 총장 후보에게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명제청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며 “법원이 밝힌 ‘부당한 행정절차’로 대학 구성원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는 게 우리 측 요구”라고 밝혔다. 김동호 공주대 총학생회장(컴퓨터공학부 09학번)도 “우리 대학은 전국에서 최장기간 총장 공석 상태가 이어져 학생 1만5000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망가지고 있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걸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소송의 특성상 학생들의 움직임이 바로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민걸 교수도 “그동안 국교련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성명도 발표했지만 정부가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변화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경북대, 방송대 교수들과 함께 대법원에 ‘되도록 빨리 판결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로서는 그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대의 직선제 총장 취임은 정부가 처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다. 정부는 6월 7일 그동안 공석으로 있던 강원대, 경상대 총장도 임명했다. 두 대학 모두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했으나, 수개월간 교육부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명제청을 미뤄오던 곳이다. 대학가에서는 정부가 이처럼 변화한 계기가 20대 총선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영철 전남대교수회 회장(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대학의 자율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각종 지원금을 통해 교수사회를 좌지우지하려 하며 ‘총장 임용은 행정부 권한이니 우리 뜻에 따르라’는 모습만 보이던 교육부가 갑자기 유연해진 건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여소야대 국회, 변화의 출발점 될까

    이번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국립대 총장 선출 시 대학구성원들의 자율권 보장’을 공약했다. 정의당도 ‘교육공무원법 개정으로 대학구성원의 자율적인 총장 선출 보장’을 약속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가 당내 토론 자리에서 ‘교육부 폐지’를 언급하고,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동의하는 등 야권 안팎에서 ‘교육부 권력 통제’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출신으로 20대 국회에 진출한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은 “현재 교육부가 대학의 총장 선출 방식, 입시전형 등 세세한 부분까지 관장하는 것이 대학 발전을 막는다는 의견이 많다”며 “20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교육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약 반년간 총장직무대리 체제를 유지하다 신임 총장을 맞게 된 경상대의 경우 교육부가 대학 추천 1순위 후보 대신 2순위 후보를 총장으로 임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와 총장 임명을 두고 법적 분쟁 중인 대학들의 문제도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정준영 방송대교수회 회장(문화교양학과 교수)은 “2년 넘게 총장 공석 사태가 이어지면서, 현재 총장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부총장 임기가 만료될 시기가 됐다. 그 후 대학행정을 누가 맡아야 할지, 교육부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해 6월 둘째 주 교수회의를 열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흥식 국교련 상임회장은 이에 대해 “결국 모든 문제는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소통을 시작해야 풀릴 수 있다. 경상대 사례의 경우 2순위 후보를 임명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면 대학 측에 설명해주면 된다. 다른 대학도 총장 임명제청을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밝히고, 없다면 이제라도 임명하면 풀릴 일이다. 명색이 고등교육기관인데 언제까지 초등학교 다루듯 할 수는 없지 않나. 부산대 총장 취임이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존중하는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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