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2016.06.15

사회

가난, 수치심이 빚은 ‘생리대 대란’

가족과 소통 불화, 사용법 교육 부족도 원인…“무상 지원이 또 다른 상처 되지 말아야”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6-10 17:14:0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중학교 2학년 김소정(14·가명) 양은 생리기간 중 편하게 잘 수 없다. 밤에 장시간 착용하는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없기 때문. 생리양이 많은 날은 이불에 생리혈이 묻을까 봐 눕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앉아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일어나면 온몸이 무겁지만 김양은 매달 며칠씩 똑같은 고생을 감수한다.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인 김양은 대형 생리대를 마음껏 쓸 수 없다. 어머니는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로 월 100만 원 내외를 번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와 김양, 두 여동생까지 총 4명이 매달 생리를 한다. 어머니는 “대형 생리대보다는 다소 저렴한 중형 생리대를 아껴서 쓰라”고 딸들에게 일렀다. 김양은 동생들의 생리대가 부족할까 봐 생리양이 적을 땐 휴지로 대체한다. 매달 겪는 생리가 김양에게는 끔찍한 악몽이다.



    집 안에 ‘여자 많을수록’ 치솟는 생리대 비용

    ‘생리대 살 돈이 없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공론화되면서 생리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생리대를 사지 못해 학교에 못 가고, 휴지와 신발 깔창으로 대체한다는 등의 사연이다.

    한 달 생리대 비용이 얼마가 들기에 소녀들은 맘 편히 생리도 못하는 걸까. 대형마트인 농협유통 하나로클럽마트 서울 서대문점에서 생리대 가격을 알아봤다. ‘화이트’ 중형 36개입(9000원대), ‘위스퍼’ 대형 18개입(6000원대), ‘바디피트’ 대형 20개입(1만 원대), ‘건강한 예지미인’ 대형 26개입(7000원대) 등이 있었다. 대형 생리대는 낱개당 280~540원에 팔리는 셈이다. 인근 편의점에서는 ‘좋은느낌’ 대형 16개입이 9900원으로 낱개당 600원이 넘었다. 여성 한 명이 한 달에 5~7일간 생리를 하고, 생리양에 따라 대형, 중형, 팬티라이너 등을 써가며 하루 5~7개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매달 1만~2만 원의 생리대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면 일부 소녀는 1만~2만 원이 없어 생리대를 충분히 못 사는 걸까. 황은숙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은 “그렇다”고 답한다. 가족 중 생리를 하는 여성이 많으면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고, 생계유지조차 힘든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생리대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것. 황 회장은 “저소득층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차상위계층이 생리대 문제로 곤란한 경우가 많다. 빈곤계층이지만 복지혜택은 기초생활수급자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들은 식비와 교통비 등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형편이기에 생리대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저소득층 한부모가정은 자녀가 만 12세 이하일 경우 월 10만 원씩 양육비를 지원받는데, 아이가 생리를 시작할 무렵인 만 13세부터는 이 지원이 끊겨 생리대 공급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생리대 가격은 계속 고공행진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리대 가격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24.59%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9.81% 상승한 것과 비교해 훨씬 높은 수치다. 최근 ‘좋은느낌’ 등 생리대를 판매하는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가격을 8~2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 인상안을 철회했다.

    생리대 부족에는 또 다른 원인도 있다. 소녀들에게 사용법을 일러주는 교육이 부재한 경우다. 학교 성교육시간에 생리대 사용법을 알려주지만, 처음 생리를 시작하는 만 10~12세 소녀가 학교 수업만으로 완벽히 알기란 어렵다. 따라서 어머니나 언니 등 동성의 가족이 생리대 부착, 교체 및 처리 방법을 알려주는 ‘보충 교육’이 이뤄져야 소녀들은 비로소 생리대에 적응한다. 이런 교육이 부재하면 생리대를 불필요하게 많이 써 부족한 경우가 생긴다.

    대학생 김혜진(19·가명) 씨는 “생리를 시작한 중학생 시절, 어머니는 내 초경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만큼 바빴다. 따라서 어떤 종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 초경 때 ‘오버나이트’ 생리대 한 통을 이틀 만에 다 썼다. 생리혈이 샐까 봐 두려워 1~2시간마다 갈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생리대가 모자라 어머니에게 말하기가 부끄러워 친구들한테 빌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보건교사 박고은(35·가명) 씨도 “생리대 부족이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교육과 돌봄 부재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빈곤계층이 아닌데도 ‘생리대가 없다’며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아가는 여학생이 더러 있다. ‘왜 못 샀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많이 써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중 대다수는 조손가정이거나 부모와 소통이 불충분한 경우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들이라 남에게 묻지 못하고 사용 방법을 혼자 깨우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경인데…” 사용법 가르쳐줄 어른 없어

    생리대 부족을 혼자 해결하려는 아이는 인터넷으로 대체 요법을 검색하거나, 비위생적인 방법을 사용하다 병원에 가기도 한다. 조수아(24·가명) 씨는 “중학생 때 용돈이 부족해 생리대를 적게 쓰는 방법을 궁리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수건을 작게 접고 그 안에 휴지를 뭉쳐 넣으면 생리대가 된다’고 해서 며칠간 쓰다 염증이 생겼다. 그 후 산부인과에 오랫동안 다니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박은정(23·가명) 씨는 “어릴 때 생리대 아끼는 법을 검색하다 ‘피임약을 복용하면 생리를 안 한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그런데 피임약 가격이 생리대보다 비싸서 허탈했다”고 말했다.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는 생리대 사기가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을 6만~7만여 명으로 추산한다. 이 단체는 소셜벤처기업 ‘이지앤모어’와 함께 한부모가정 청소년 600여 명에게 우선적으로 6개월 치 생리대를 지원할 예정이다. 황 회장은 “여학생들이 가난이나 생리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원할 것”이라며 “현재 일부 정치인이 ‘학교에서 생리대를 나눠주게 하자’고 제안하는데, 이를 잘못 시행하면 특정 학생이 ‘생리대를 지원받는 애’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생리대 지원은 학교에서 이뤄질 것이 아니라, 지원받는 당사자만 알 수 있도록 가정으로 배송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백혜정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학교 밖 아이들(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을 위해 지역 주민센터나 보건소 등에 신청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백 연구위원은 “학교 밖 청소년 가운데 생리대조차 살 수 없는 빈곤층을 위해 학교가 아닌 지역 관공서에서 생리대를 공급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