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3월의 눈’은 올 3월 국립극단 최고령 원로 배우인 백성희, 장민호 주연으로 초연해 큰 호평을 받았다. 5월 초 시작한 리바이벌 공연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한 백성희 대신 더블캐스트였던 박혜진이 할머니 이순 역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던 감동은 여전히 살아 있다.
막이 오르고 가장 먼저 관객 눈에 들어오는 것은 꼼꼼하게 짠 한옥. 이 집에는 백발 할아버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조만간 한평생을 보낸 이 집을 비워야 한다. 손자 놈의 빚을 갚아주려고 집을 팔았던 것. 이 집을 사는 사람은 마루며 기둥을 분해해 ‘앤티크 가구’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아직 할아버지가 살고 있음에도 성질 급하게 마룻바닥을 뜯어간다.
할아버지는 반쯤 헐린 집에서 아내의 혼령, 혹은 기억 속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가 아내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과거 기억이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드러난다. 그 기억에는 노부부의 러브 스토리 등 개인사뿐 아니라 6·25전쟁 같은 근대사가 뒤얽혀 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아내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아내가 뜨다만, 팔 한쪽이 없는 스웨터를 입고 쓸쓸히 요양원으로 향한다. 그렇게 그가 집을 떠나자 3월의 눈이 내리는 어느 날 한옥집이 마구잡이로 헐린다.
이 작품은 힘없이 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한 깊은 애상을 전해준다. 세월의 질감을 고스란히 간직했지만 무참히 헐려나가는 한옥은 노부부의 삶 그 자체다. ‘3월의 눈’이라는 제목 역시 ‘내리자마자 얼마 안 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세상의 뒤안길로 떠나야 하는 것은 비단 할아버지만이 아니다. 구제역으로 가축을 살처분한 후 그 충격에 생계를 접고 노숙자가 된 황씨도 마찬가지다. ‘살겠다고 기를 쓰고 올라오는’ 돼지를 구덩이에 쳐넣고 생매장한 기억은 황씨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시대의 몹쓸 행태에 개탄의 소리를 던진다. “그 죄가 다 어디로 가겠나. 세상 죄 갚음은 죄진 놈이 아니라 착하고 순한 놈들이 한다….”
조명, 소리, 무대 등 모든 것이 정제됐다.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가 밀도 높게 전해졌다. 특별한 무대장치는 필요치 않았다. 노배우의 연기는 80 평생을 무대에서 살아온 세월의 두께를 느끼게 했다. 그가 내뿜는 작은 숨소리와 시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공기 흐름을 바꾸며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6월 5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문의 02-3279-2233.
막이 오르고 가장 먼저 관객 눈에 들어오는 것은 꼼꼼하게 짠 한옥. 이 집에는 백발 할아버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조만간 한평생을 보낸 이 집을 비워야 한다. 손자 놈의 빚을 갚아주려고 집을 팔았던 것. 이 집을 사는 사람은 마루며 기둥을 분해해 ‘앤티크 가구’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아직 할아버지가 살고 있음에도 성질 급하게 마룻바닥을 뜯어간다.
할아버지는 반쯤 헐린 집에서 아내의 혼령, 혹은 기억 속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가 아내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과거 기억이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드러난다. 그 기억에는 노부부의 러브 스토리 등 개인사뿐 아니라 6·25전쟁 같은 근대사가 뒤얽혀 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아내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아내가 뜨다만, 팔 한쪽이 없는 스웨터를 입고 쓸쓸히 요양원으로 향한다. 그렇게 그가 집을 떠나자 3월의 눈이 내리는 어느 날 한옥집이 마구잡이로 헐린다.
이 작품은 힘없이 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한 깊은 애상을 전해준다. 세월의 질감을 고스란히 간직했지만 무참히 헐려나가는 한옥은 노부부의 삶 그 자체다. ‘3월의 눈’이라는 제목 역시 ‘내리자마자 얼마 안 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세상의 뒤안길로 떠나야 하는 것은 비단 할아버지만이 아니다. 구제역으로 가축을 살처분한 후 그 충격에 생계를 접고 노숙자가 된 황씨도 마찬가지다. ‘살겠다고 기를 쓰고 올라오는’ 돼지를 구덩이에 쳐넣고 생매장한 기억은 황씨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시대의 몹쓸 행태에 개탄의 소리를 던진다. “그 죄가 다 어디로 가겠나. 세상 죄 갚음은 죄진 놈이 아니라 착하고 순한 놈들이 한다….”
조명, 소리, 무대 등 모든 것이 정제됐다.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가 밀도 높게 전해졌다. 특별한 무대장치는 필요치 않았다. 노배우의 연기는 80 평생을 무대에서 살아온 세월의 두께를 느끼게 했다. 그가 내뿜는 작은 숨소리와 시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공기 흐름을 바꾸며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6월 5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문의 02-3279-2233.